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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세계 도시를 걷다

category 세계도시여행 2016. 12. 27. 11:50

전체메뉴 18세기 세계 도시를 걷다

도쿄토박이 에도코의 성격과 지혜

요약
17세기부터 일본의 수도가 된 도쿄는 무사 정권의 중심지답게 남성적 강인함이 드러나는 곳이었다. 도쿄에서 삼대 이상을 산 토박이를 에도코()라고 부르는데, 그들은 과거나 미래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에 충실한 성격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은 또 고집이나 반항으로 해석되는 ‘하리(り)’를 가지고 있다고도 하는데, 도쿄 시정인들은 무사 지배층에게도 지혜롭게 반항했다. 그들의 지혜는 기술 개발과도 연결되는데, 에도시대 도쿄의 기술자는 옷, 신발, 가구, 액세서리, 문구 등 여러 곳에서 자신의 기량을 발휘했다.
세계 최고 높이(634m)를 자랑하는 일본 도쿄 스카이트리(Skytree)

세계 최고 높이(634m)를 자랑하는 일본 도쿄 스카이트리(Skytree)원본보기

들어가며

여자: 어젯밤에 어디에 있었어?
남자: 지난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아.
여자: 오늘밤에 만날까?
남자: 앞일은 모르겠어.

이 대사는 미국 영화 <카사블랑카>(1942)에서 험프리 보가트가 연기한 주인공 릭이 여자와 대화한 부분이다. 이 유명한 대사를 인용한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나는 이 대화를 처음 들었을 때 험프리 보가트가 도쿄토박이 아닐까 생각했다.

<카사블랑카> 포스터

<카사블랑카> 포스터

도쿄토박이는 ‘에도코()’라고 부르는데, 에도는 도쿄의 옛 명칭이니 도쿄사람이라는 말이다. 한국으로 말하자면 ‘서울내기’와 같은 말이다. 보통은 삼대가 도쿄에서 살아야 에도코로 불릴 수 있다고 하며, 주로 ‘도쿄 사람의 기질’을 가진 남성을 가리킨다. 도쿄 여자()는 왈가닥이나 말괄량이의 뜻을 지닌 ‘오캰(, おきゃん)’으로 불렸다. 에도코는 ‘하룻밤 넘긴 돈은 가지고 있지 않다’는 말을 듣는다. 가진 돈은 그날로 다 써버리고 남겨두는 법이 없다는 말이다. 과거와 미래에 얽매이지 않고 지금 사는 것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에도코이다.

 

도쿄 가부키쵸의 밤 풍경

도쿄 가부키쵸의 밤 풍경

사실은 필자가 에도코였다. ‘에도코였다’라고 말한 이유는 할아버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도쿄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지금은 도쿄에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왕년의 에도코가 도쿄의 매력에 대해 짧게 말하고자 한다.

교토, 오사카 그리고 도쿄

에도시대는 임진왜란 이후 수도를 도쿄로 옮긴 이후부터 메이지 유신 이전의 시대를 가리키는 것이니, 17세기 초부터 19세기 중반까지의 시기이다. 이때 일본은 도쿄를 비롯하여 교토, 오사카의 세 도시가 번영했는데, 흥미로운 점은 이 세 도시의 성격이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에도시대 교토에서부터 도쿄로 들어오는 간선도로 끝에 위치한 다리인 니혼바시 다리의 풍경

에도시대 교토에서부터 도쿄로 들어오는 간선도로 끝에 위치한 다리인 니혼바시 다리의 풍경

 

먼저 교토는 문화도시였다. 헤이안시대부터 이어진 귀족문화를 중심으로 다양한 전통문화를 육성하는 동시에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간 도시였다. 그리고 교토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오사카는 경제도시였다. 파랑이 적은 내해()인 세토나이카이()를 끼고 전국의 항구를 연결하여 유통의 중심지가 되면서 상업도시가 될 수 있었다. 일본 전국의 물건이 다 들어오고 돈만 있으면 어떤 명품이라도 얻을 수 있었으니, ‘천하의 부엌’으로 불렸다.

 

18세기 후반 교토 산주산겐도(三十三間堂)의 모습

18세기 후반 교토 산주산겐도()의 모습

 

한편 도쿄는 무사가 중심이 된 남성의 도시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에 의해 슨푸(駿)에서 도쿄로 이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만든 도시였다. 도쿄는 일본 최대의 평야를 끼고 있는 비옥한 땅 위에 세워졌지만 크고 작은 하천이 범람하는 위험한 곳이기도 했다. 이런 땅을 대규모 토목공사로 새로 조성하여 거대한 도시를 만들었다. 현재 천황의 거처가 있는 도쿄성을 중심으로 그 부근에 전국 각지에서 온 지방의 번주()들이 서울에서 머물 집을 지었고, 이 근처에 도시를 지탱하는 상인과 기술자들이 살았다. 무사와 상인 그리고 기술자들이 흥성거리는 남성적인 도시가 도쿄였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도쿠가와 이에야스

 

17세기 말 교토와 오사카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저명한 소설가 이하라 사이카쿠(西)는 이 세 도시를 아주 잘 알고 있었는데, 이들 도시의 성격을 유곽()을 들어 다음과 같이 압축했다.

교토의 뛰어난 유녀()들에게 도쿄 유녀들이 지닌 ‘하리(り)’를 갖게 하면, 그리고 그들을 오사카의 호화로운 유곽에서 만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호색일대남()』
유녀들

유녀들

 

유녀의 전통은 교토에서 시작되었다. 무로마치(室町)시대부터 전국(戰國)시대에 걸쳐 유랑하거나 흩어져 있던 유녀를 모아 유곽을 만들어 활동하게 한 것은 교토의 상공업자들이었다. 이들 상공업자들은 귀족에 뒤지지 않는 교양을 지녔는데, 와카()와 렌가() 그리고 꽃과 차()를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켰다. 이들은 유녀들에게 그런 예술에 정통할 것을 요구했으니, 교토 유녀는 자연 우아함을 지닐 수 있었고, 이로써 뭇 남성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우아함은 온순함으로 보이기도 해서 한편으로는 시시하게 여겨질 수도 있었다.

이에 비해 도쿄의 유녀는 남성적인 굳셈이 있었다. ‘하리’는 긴장, 야무짐, 생기, 활력, 의욕, 오기, 기개 등의 뜻을 지닌다. 도쿄는 교토나 오사카에 비해 무사와 남성이 많이 거주하는 도시였기 때문에, 유녀도 자연히 그런 분위기를 몸에 익혔던 듯하다. 부드럽고 온순한 여성도 좋지만, 가끔은 뜻이 굳고 야무진 여성에게 당해도 좋다는 것이 동서고금 남성의 공통된 욕망이다. 이렇게 둘을 다 갖춘 유녀를 경제도시 오사카의 화려한 유곽에서 만나고 싶다는 것이 인용문의 뜻이다. 에도시대 일본의 한량들은 교토의 유곽인 시마바라()에 사는 예술과 교양을 익힌 유녀가 도쿄의 유곽 요시와라()에 사는 유녀의 굳센 성격을 갖추기를 바라면서, 동시에 그런 유녀를 오사카의 화려한 유곽인 신마치()에서 만나 놀기를 바란 것이다.

 

18세기 도쿄의 요시와라 유곽

18세기 도쿄의 요시와라 유곽

도쿄의 ‘하리’

사이카쿠의 세 도시에 대한 평가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것이 도쿄의 ‘하리’이다. 험프리 보가트는 과거는 물론 미래도 생각하지 않고 지금의 시간만 줄곧 고집하고 있는데, 이런 것도 ‘하리’의 한 모습이다. 에도코는 ‘지금’에 전력을 다한다. 그런 에도코 사이에서 유행한 문학장르로 센류()가 있다. 센류는 하이쿠가 통속화한 것으로 가라이 센류(, 1718~1790)가 시작했다. 아래는 가라이 센류가 편찬한 『하이후야나기다루()』(1765)에서 뽑은 여섯 개의 구절로 역시 ‘지금’을 그린 것들이다.

① 아이가 생겨 ‘천()’ 자 모양으로 자는 부부
② 자루를 위협하는 구실은 먼 곳
③ 호통 치며 꾸짖으려 아버지는 자지 않는다
④ 궁합은 묻고 싶고 나이는 숨기고 싶고
⑤ 방귀를 뀌고도 부끄러울 것 없는 홀몸
⑥ 울고불고 하면서도 많은 돈을 받고자 하는 상속

①은 아버지, 자식, 어머니 세 명이 자면 ‘천()’ 자 모양이 된다고 한 것이다. 화목한 가정 풍경을 그리고 있다. ②의 자루는 어머니를 가리킨다. 어머니는 보통 자식에게 엄하지 않다. 그래서 자식이 이를 알고 먼 곳으로 가겠다며 어머니를 협박하며 돈을 요구한다. 옳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자식들은 곧잘 이런 행동을 한다. ③에서 보는 것처럼 어머니와 달리 아버지는 자식에게 엄하게 대한다. 꾸짖으려고 자식이 집에 돌아올 때까지도 자지 않고 기다리고 있다.

④는 사랑을 원하는 아가씨의 마음을 절묘하게 그리고 있다. 상대 남성에게 궁합은 묻고 싶지만, 자신의 나이는 감추고 싶다. ⑤에서 보는 것처럼 방귀는 부끄러운 일이지만, 독신이 되니 방귀를 뀌어도 부끄러울 일이 없다는 것이다. 적막한 과부의 모습이다. ⑥은 아버지가 죽어 유산 상속을 의논하는 장면이다. 아버지의 죽음은 슬프지만 그 와중에도 가능한 한 많은 돈을 받고 싶어 하는 자식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어떤 일이라도 돈이 필요하다’는 최근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어진 만화 <사채꾼 우시지마>에 나오는 말이 실감나는 장면이다. 위의 센류의 구절들은 에도코가 겪는 일상의 장면이다. 특별히 아름다울 것도 없고, 그렇다고 비극적이지도 않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순간을 5, 7, 5조의 정형적 언어 속에 응축시키고 있다.

 

에도시대 도쿄 니혼바시 부근의 저잣거리

에도시대 도쿄 니혼바시 부근의 저잣거리

 

하리에는 또한 ‘억지 부림’, ‘고집 부림’을 포함하여 맞선다는 뜻도 있다. 무언가를 당겨 팽팽한 긴장이 절정에 달한 그런 고집과 맞섬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타인에 대한 반항을 포함하기도 한다. ‘화재와 싸움은 에도의 꽃’이라고 말할 정도로 에도코는 소동과 싸움을 좋아했다. 상대가 누구든 날카로운 어조로 얼굴을 맞대고 몰아세우며 반항했다.

도쿄 시정인들은 곧잘 ‘니홍자시(し)가 무서워 메자시(メザシ)를 먹을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니홍자시’는 칼 두 자루를 차고 있는 사람 곧 무사이고, ‘메자시’는 생선구이다. 시정인들은 칼을 한 자루밖에 찰 수 없는데, 그런 그들이 무사가 무서워 흔한 생선구이라도 제대로 먹겠느냐고 말했다는 것이다. 일반인이 싸움의 전문가이자 권력자인 무사를 이길 수는 없다. 그렇지만 반항심이 강한 에도코는 이런 말을 하면서 보이는 데서 또는 보이지 않는 데서 무사에게 반항했다.

에도시대에는 ‘사십팔차백서()’라는 말이 있었다. 에도시대 중기부터 후기에 걸쳐 무사들은 부자 시정인들을 억압하기 위해 복기령()이라고 하는 화려한 복장을 금하는 법률을 몇 번이나 되풀이하여 내놓았는데, 도쿄의 시정인들이 이에 반항하여 내놓은 것이 ‘사십팔차백서’이다. 사십팔이나 백이나 모두 많은 수를 가리키는 것이고, 차와 서는 녹갈색과 회색을 뜻한다. 두 계열의 색을 수없이 많이 만들었다는 것이다. 복기령을 어기지 않는 범위 내에서 화려해 보이지 않으면서도 다채롭고 호화로운 색을 수없이 많이 만들어냈다는 말이다.

 

18세기 도쿄 우에노 도에이잔 풍경, 가츠시카 호쿠사이(葛飾北斎) 작.

18세기 도쿄 우에노 도에이잔 풍경, 가츠시카 호쿠사이() 작.

 

또한 시정인들은 겉에 고소데()라고 하는 소매통이 좁은 평상복을 입었고, 여기에다 하오리()라고 하는 방한과 방진()을 위한 외투를 입어 수수하게 보이지만, 속에는 화려한 주반()을 입었다. 이렇게 하리를 가진 에도코는 정치적 실권을 잡은 무사의 명령에 무작정 저항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참지도 않으면서 지혜롭게 반항했다.

마이크로의 세계

에도코의 지혜는 고도의 기술 개발과 연결되었다. 도쿄에 모여 살던 기술자들은 화려하고 거창한 세계가 아니라, 눈에 띄지 않는 수수하고 작은 세계에 힘을 쏟아 멋진 마이크로(micro) 세계를 만들어 냈다. 앞에서 서술한 옷은 물론 짚신과 게타() 등 신발도 그렇고, 장롱과 대형 나무 화로 등의 가구, 책, 도장과 붓 등의 문구, 허리춤 장식인 네츠케(け)와 부채 등 신변()의 모든 것에 이르렀다.

아래 사진은 1829~1842년에 간행된 류테이 다네히코() 소설 『니세무라사키 이나카겐지()』의 표지로 우키요에() 판화이다.

 

『니세무라사키 이나카겐지(偐紫田舍源氏)』의 표지

『니세무라사키 이나카겐지()』의 표지

 

아래 사진은 소설의 표지를 확대한 것인데 여성의 머리털 부근은 겨우 1mm 크기 안에 5~6가닥의 머리털이 그려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정도의 세밀함은 붓으로 쓰기도 어려운데, 이것은 나무판에 새겨 먹물을 먹여 인쇄한 것이다. 실로 경이로운 세밀함이다.

『니세무라사키 이나카겐지(偐紫田舍源氏)』의 표지를 확대한 모습

 

『니세무라사키 이나카겐지()』의 표지를 확대한 모습

 

마찬가지로 놀라운 것이 아래 사진의 네츠케이다. 네츠케란 돈과 도장 등을 넣던 작은 주머니에 단 액세서리이다. 이것을 줄 끝에 달고 허리띠 위에 차면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다. 아래의 네츠케는 상아로 만들어져 있는데 크기가 폭 4.5cm이다. 이 작은 상아에 온갖 꽃잎이 정밀하게 새겨져 있다.

 

네츠케(根付け)

네츠케(け)『세밀 세공의 모든 것(くし)』 ( , 1989)

『시타마치 로켓』과 도쿄의 기술자

이케이도 준()의 소설 『시타마치 로켓(ロケット)』(2008)은 우주개발 연구원이었던 주인공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중소기업의 사장이 되어 사원들과 함께 분투하는 이야기다. 이 소설에 나오는 회사는 로켓 자체가 아니라 로켓 엔진의 부품인 밸브 시스템을 개발하는 곳이며, 정교한 부품 제작에 온 힘을 다하여 기술력에 바탕을 두고 주문을 따낸다. 바로 여기에 이 작품의 흥미소가 있다. 작품의 후편은 심장수술에 사용하는 인공 밸브 개발에 몰두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이 회사가 위치한 곳이 도쿄의 시타마치()로 바로 에도시대의 기술자들이 앞에서 본 인쇄물과 네츠케를 만들어낸 장소다. 에도시대에는 책과 액세서리를 만들었고, 현대에는 로켓과 인공심장의 부품을 만들어, 만드는 물건은 바뀌었지만 정밀한 물건을 만들어 낸 기술자의 기질은 바뀌지 않았다.

 

도쿄 우에노 시타마치 풍속자료관에 꾸며놓은 상점 모습

도쿄 우에노 시타마치 풍속자료관에 꾸며놓은 상점 모습

 

나는 곧잘 외국인들에게 도쿄의 어디를 구경하면 좋은지 질문을 받는다. 프랑스 파리라면 샹젤리제가 떠오르고, 미국 뉴욕이라면 맨해튼의 초고층 빌딩이 생각나며, 중국 베이징이라면 자금성이다. 서울이라면 창덕궁이나 북촌의 한옥마을을 추천하지 않을까. 도쿄는 근년에 개장한 야경이 멋진 스카이트리고쿄()와 메이지신궁()도 좋지만, 아사쿠사()와 아키하바라()의 시타마치로 가서 골목 안 작은 가게에 늘어선 자질구레한 물건을 보거나, 스미다() 구와 오타() 구에 있는 작은 공장으로 견학을 하는 것도 좋다. 그곳에는 에도시대 도쿄 기술자들의 솜씨와 혼이 여전히 살아 있다.

 

도쿄 아사쿠사의 작은 가게들이 있는 거리

도쿄 아사쿠사의 작은 가게들이 있는 거리

출처
18세기, 세계 도시를 걷다 표제어 전체보기
한국18세기학회가 세계 각 지역 전문의 인문학자를 초청하여 18세기 동서양 도시를 구석구석 안내한다. 도시라는 공간과 그곳에 모여든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문화를 두리번두리번 산책하며 도시가 새롭게 만들어낸 인간과 사회에 대해 알아보자.
저자
소메야 도모유키 | 일본 이바라키그리스도교대학 교수
에도시대 일본소설 연구자로 한국 고전소설과의 비교 등을 통해 동아시적 시각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모험(冒険), 음풍(淫風), 괴이(怪異) - 동아시아 고전소설의 세계>(2012, 일문(日文)), <사이가쿠(西鶴) 소설론小説論 - 대조적 구조와 ‘동아시아’에의 시계(視界)(2005, 일문(日文)) 등이 있고, 편서로 <한국의 고전소설>(2008, 일문(日文))이 있다.
옮김
신철우 | 서울대 국문과 대학원 석사과정

[네이버 지식백과] 도쿄토박이 에도코의 성격과 지혜 (18세기, 세계 도시를 걷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