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수안역 동래읍성 임진왜란 박물관 해자에서 발견된 유골. 2005년 부산 동래구 수안동을 지나는 지하철 수안역 공사 중, 조선 전기 때의 동래읍성 해자(垓字)가 발견됐다. 해자(垓字)는 성 외곽에 땅을 파고 그곳에 물이 흐르게 한 도랑 형태로 적의 침입을 막는 방어시설이다. 동래읍성 해자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으로만 남아 있던 것이라 역사적으로 더욱 중요한 가치를 지녔다. 발굴이 진행되자, 이번에는 동래읍성 해자에서 임진왜란 당시의 많은 무기와 유골들이 출토됐다. 임진왜란 유적이 발굴된 최초의 순간이었다. 그 위치는 부산도시철도 4호선 수안역 안. '동래읍성 임진왜란 역사관'이란 이름으로 전국에서 유일하게 지하철 역 안 박물관이 2011년 1월 28일 문을 열었다. 해골 머리의 구멍은 조총이나 기타 둔기로 맞아 뚤어진 것으로 보인다. 출토.. 답사기행문(포토) 8년 전
부산 동래성 충렬사 부산 동래성 송상현 부사의 영혼을 모신 충렬사. 부산진성 첨사 정발과 그 휘하 장졸들은 1592년 4월 13일 임진왜란 발발 개전 초 고니시 유키나가의 왜군 1만 8천명의 공격을 받고 장렬하게 전사했다. KBS 역사저널 그날 사진 캡쳐 동래성 전투도. 부사 송상현은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가 가도입명(假道入明) 즉 명나라 들어가는 길을 빌려달라고 하자, 아래와 같이 전사이 가도난(戰死易 假道難)이란 답으로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는 팻말을 보였다. 그러자 왜군은 물밀듯이 들이닥쳐 송상현 부사와 휘하 장졸들은 장렬하게 전사했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송상형 부사에게 싸우려면 싸우고 싸우기 싫다면 나의 길을 빌려달라는 전즉전의(戰即戰矣) 부전즉 가아도(不戰即 假我道)라는 팻말을 보였다. 송상현 부사는 .. 답사기행문(포토) 8년 전
부산 자성대, 왜성, 영가대 부산 자성대성안 진남대 부산진 지성 서문 금루관(金壘關) 남요인후(南徼咽喉) 나라의 목에 해당하는 남쪽 국경 서문쇄약(西門鎖鑰) 서문은 나라의 자물쇠와 같다. 부산 진성의 자성 자리에 왜장 모리테루모투가 쌓은 왜성의 흔적. 아래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비스듬히 쌓은 게 특징이다. 사진 맨 위 꼭대기 평편한 모습은 천수각이 사라진 왜성의 잔해모습이다. 자성대 성안의 민가인 전통 초가집. 영가대는 조선통신사가 일본으로 출발하는 시발점이다. 부산진성 아래 민가촌. 초가집들이 일본식 건물(오른쪽 위)과 섞여있다. 부산 자성대 아래 영가대. 일본으로 가는 조선통신사 일행이 이곳에서 출발했다. 옆은 매립지로 아파트건물이 들어섰다. 부산의 옛모습. 자성대성과 그 바깥 민간의 초가. 조선통신사 행렬도 부분. 일본 항구에 .. 답사기행문(포토) 8년 전
진주성 박물관 진주성 안에 거치된 천자총통. 천자총동에서 대장군을 발사했다. 주로 이순신 장군이 지휘하는 조선수군에서 사용되었다. 진주성 박물관 경내 이순신 장군의 장계 내용. 신기전을 장착한 화차. 화약을 달은 화살을 오늘날 다연장 로켓같이 연속적으로 발사했다. 16세기 지도. 명나라는 광활하게, 조선은 보다 넓으면서 상세하게, 일본은 제주도 남쪽 방향에 조그맣게 그렸다. 중국을 세계의 중심에 놓고 조선과 일본은 손톱보다 작게 그려놓았다. 중화(中華) 사상이 물씬 풍긴다. 계사년인 1593년 6월 20일에서 29일까지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조선군과 의병은 패했고 수많은 백성들은 왜군에게 도륙을 당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차 진주성 전투에서 왜군이 패하고 물러서자 설욕전을 감행한 것이다. 수만 명 백성들의 귀와 코.. 답사기행문(포토) 8년 전
남해 충렬사, 이락사, 이순신 전사도. 노량 관음포 해전 1598년 11월 19일 노량해전이 벌어진 관음포에서 이순신 장군은 왜군의 조총 탄환을 맞고 전사했다. 전방급 신물언아사(戰方急 愼勿言我死)! 이순신 장군의 유언. "전투가 한창 급하다.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마라." 이락사(李落祠). 이씨 성을 가진 이순신 장군 별이 바다로 떨어진 곳에 세워진 사당이라는 뜻이다. 글씨는 1965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썼다. 그 안쪽 이충무공유허비각의 현판 이름은 대성운해(大星隕海)다. 큰 별이 바다에 떨어졌다는 뜻인데 이 글씨도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내린 친필휘호다. 남해 관음포 앞바다 남해 관음포 첨망대. 이 망루에 올라 바라본 앞바다가 바로 노량해전이 벌어졌던 관음포 현장이다. 남해대교 아래가 노량. 양안의 사람들은 하동 노량, 남해 노량이라고 각각 부른다. 남해.. 답사기행문(포토) 8년 전
아산 현충사 이순신기념관 임진왜란 주요 해전도 조선과 일본 수군의 전선 이순신 장군의 창의 실용정신이 반영된 거북선. 군관 나대용 등이 힘을 합쳤다. 일본수군의 대선인 아타케 부네(안택선 安宅船). 대장선이나 지휘선으로 쓰였다. 일본 함선은 삼나무로 만들어져 조선 수군의 소나무 판옥선에 부딪히면 쉽게 깨졌다. 또 일본 함선은 바닥이 뾰족한 첨저선으로 물을 가르는 속도는 빠르나 회전 반경이 넓어서 쉽게 방향을 바꾸지 못했다. 또한 쇠못을 써서 바닷물에 부식되었다. 일본 수군 중선 세키부네(關船) 충무공의 두 자루 장검. 1594년 4월 한산도 진중에 있을 때 태귀련과 이무생이 만들었다. 칼의 길이가 197.5cm이고 무게는 4kg이 넘어 전장에서 실제 쓰인 칼이 아니라 곁에 두고 마음을 가다듬으려 했던 것이다. 아래의 검명에서 장.. 답사기행문(포토) 8년 전
현충사, 이순신 생가, 묘소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정신과 위업을 선양하기 위한 곳이다. 1706년(숙종 32) 아산 지역 유생들이 조정에 청하여 허락을 받아 세운 사당이다. 1707년 숙종이 현충사(顯忠祠)라는 현판을 내렸다. 4월 28일 충무공 탄신일은 국가기념일로 다례행사를 거행한다. 장우성 화백이 그린 이 충무공 표준영정. 이순신 장군이 살던 고택. 21세 장인 방진(전 보성군수)의 무남독녀 외동딸인 상주 방씨와 혼인한 뒤 물려받아 32세 무과급제하기까지 살던 집이다. 이순신 가계도 고택 부근의 정려(旌閭). 충신 효자 열녀가 났을 때 마을 입구에 세워 임금이 하사한 편액을 걸어 후세 사람들에게 본받게 하였다. 이곳에는 충무공과 공의 조카 완, 4대손 홍무, 5대손 봉상 등 네 분의 충신과 8대손 효자 제빈까지 모두 다섯 분의.. 답사기행문(포토) 8년 전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이순신 남해 이락사 부근 비각의 현판은 대성운해(大星隕海)다. 커다란 별이 바다로 떨어졌다. 관음포 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은 전사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친필휘호이다. 남해 충렬사 이순신 장군 가묘 뒤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5년 식수한 나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 액자 답사기행문(포토) 8년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