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 이순신 다시 쓰는 징비록-여성소비자신문
장군은 왜 417년 만에 깨어났는가? 혼용무도(昏庸無道)의 한국 사회를 꼬집다
[여성소비자신문 김희정 기자]
혼용무도(昏庸無道). ‘온 세상이 마치 암흑에 뒤덮인 것처럼 어지럽고 무도하다’는 이 말은 현재 한국사회에 대한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19세기와 20세기 초 한국이 겪었던 어려움들은 21세기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에도 그 모습을 바꾸어 여전히 우리에게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금수저’와 ‘흙수저’로 대변되는 양극화와 빈부격차, 정치권과 재벌을 포함한 기득권층의 갑질, 북한과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 사이에서 살얼음판처럼 쪼개져 흘러가는 동북아 정세까지, 도무지 어디하나 마음 편한 곳이 없다.
이러한 상황은 그러나 역사적으로 낯설지만은 않다. 과거 16세기 후반 임진왜란 때 명나라와 왜국은 조선땅에서 전쟁을 치렀고, 구한말에도 청나라, 일본, 러시아, 미국, 그 외의 다른 유럽 국가들까지 다 쓰러져가는 조선땅을 삼키기 위해 갖가지 분쟁을 일으키곤 했다.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됐고 물질은 풍요로워졌다지만 이 땅에서 일어나는 작금의 현상을 보건대 언젠가 어디에서 본 듯한 느낌, 기시감(旣視感)에 문득 놀랄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이는 중국 대륙과 태평양을 잇는, 동북아의 요해처로서 열강들의 주목을 받는 우리의 지정학적 숙명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대륙과 해양세력의 발판으로서 한국은 끊임없이 고통 받았고, 그 고통은 물론 고스란히 평범한 사람들에게까지 미치곤 했다.
더구나 오늘날 동북아시아는 세계의 화약고가 되어가는 형세다. 경제를 바탕으로 대륙굴기(大陸崛起)하는 중국은 군사 부분에서 미국과 맞짱을 뜰 기세로 달려들고 있다. 중국과 일본과의 군사적 마찰, 중국을 방어하고 북핵 공포를 없애겠다는 일본은 해외 군사작전을 할 수 있는 군대를 가지게 되었다. 내부의 혼란과 외부의 압력 앞에서 우리는 또다시 굴복하고 고통받을 것인가?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과거를 먼저 살피고 그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 반성하고 자강(自强)하려는 의지를 확고히 갖지 않는 이상, 슬픈 역사가 반복될 뿐이다.
되살아난 이순신, 다시 찾는 징비(懲毖) 정신
다행히 그 힘겨웠던 시간들 속에 오롯이 슬픔과 고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모든 역사의 한 자락에는 그 시대의 무게와 괴로움을 견디고시대의 변화를 이끌었던 이들이 존재했다. 그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친숙하고, 아마도 가장 위대한 인물은 임진왜란의 영웅 이순신일 것이다.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이고 유혈이 바다를 이뤘던 대참극의 임진왜란 시대, 명나라와 왜국의 전장이 되어버린 조선반도에서 이순신 장군이 이룬 23전 23승의 불패신화는 그야말로 오랜 가뭄 끝의 단비 같은 낭보(朗報)가 아닐 수 없었다.
이는 단순히 전투의 승리가 아니며, 남해안의 제해권을 지킴과 더불어 왜군의 서해진출, 한강, 임진강, 평양의 대동강으로의 침입을 막는, 외세로부터 조선이 살아남았을 수 있었던 유일무이한 성과였다. 실로 전행(天幸), 아니 준비된 자에게 하늘이 내려준 은혜로운 자비(慈悲)였다. 당시 ‘전시재상’ 겸 도체찰사로 조선 8도를 누빈 류성룡 대감은 7년 전쟁을 반성하는 회고록인 『징비록』(懲毖錄)에서 징비의 뜻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예기징이비후환(豫其懲而毖後患) 미리 (전날을)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하고 지행병진(知行竝進) 알면 행하여야 한다. 즉 유비무환 (卽 有備無患) 그것이 곧 유비무환 정신이다.
류성룡의 징비정신은 이순신 장군의 필사즉생(必死卽生)의 유비무환으로 오롯이 승화되었으며, 임전무퇴(臨戰無退), 선공후사(先公後私),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정신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징비(懲毖)정신은 채 30년도 안 되어 잊혀졌다.
이후 후금(이후 청나라)이 조선을 공격했고, 곧이어 청나라도 조선을 짓밟았다. 남한산성에서 빠져나온 인조는 송파 삼전도에서 청태종에게 굴욕적인 항복의 예를 올렸다. 냄비처럼 들끓다가 이내 잊어버리는 급망증으로 나라의 안위는 무너졌고, 그 여파는 구한말의 처참함으로, 일제식민치하로 이어지게 된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이순신 그리고 류성룡의 재조산하(再造山河)의 뜻이 이뤄졌다면, 최소한 그들의 뜻을 귀 기울이고 이어갈 수 있었다면 많은 것이 달라졌을 것이다.
게다가 이순신은 단순히 뛰어난 무인에 그치지 않는다. 용의주도한 전략전술, 공정하고 확고한 인간관계, 둔전경영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애민(愛民) 정신과 '난중일기'와 시조가락에서 살필 수 있는 문무겸전(文武兼全)의 섬세한 감수성까지… 이순신의 업적과 그 성과를 이룰 수 있었던 인성(人性)의 핵심 DNA는 우리에게 새로운 길을 살필 방향성을 제시해 줄 것이다.
한국 사회의 현재를 되짚는 역사적 다큐멘터리
물론 이순신 장군이 뛰어난 인물이라는 사실에 우리는 매우 익숙하다. 그의 영웅담은 그의 필체로, 때로는 소설이나 드라마로, 최근에는 영화로까지 회자되고 있으며 또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의 기록과 발자취로부터 현재 우리 사회를 직접적으로 대면하려는 시도는 없었다. 그렇기에 이 책은 과거를 위한 기록이나 영광으로서의 '징비록'이 아닌, 현재와 미래를 위한 계기로서 새로이 만들어가는 『다시 쓰는 징비록』이다.
이순신 장군이 광화문 거리에 되살아나 우리 사회를 보았을 때, 그의 눈에 비친 한국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그는 자신의 시대였던 임진왜란의 혼란을 그대로 느끼는 것은 아닐까? 이 독특하면서도 흥미로운, 동시에 서늘하고 슬픈 가정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단순한 위인전이나 복기서가 아니다. 이는 현시대의 사회적 비판을 수용하는 역사적 다큐멘터리라 할 수 있겠다. 국내 유일무이의 이순신 전문 연구 포럼 대표로서 저자는 7년 동안의 계획과 3년간의 사적답사와 문헌 탐색을 통해 이순신 리더십을 연구했고, 그 결과물을 원고와 사진으로 엮어 한 권의 책으로 만들었다.
이 책은 좀 더 넓은 시야로 우리나라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지정학적 환경을 이해하려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필요할 정치, 인문, 역사책이라 할 것이다. 40여 개의 주제들 속에서 저자는 기록과 분석‧비판을 오가며 과거의 지혜를 발견함으로써 현재의 우리가 나아갈 길을 제시하려 한다. 평생을 전문 기자이자 편집자로서 활동한 저자의 분명하고 열정적인 어조는, 과거 문헌에서부터 실 사적지와 미디어 자료까지 활용하는 다양성과 깊이와 더불어 한국사회에 대한 성역 없는 반성에 호소력을 더하고 있다.
추천사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미국 해군 제독이자 역사가인 앨프레드 마한(Alfred Mahan, 1840~1914)의 이 말은 근대 세계사의 핵심을 짚어주는 말이다. 15~16세기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등은 해군력을 바탕으로 ‘바다의 왕자’를 자처했던 열강들이었다. 오늘날 중국은 동북아에서 일본, 남중국해에서 미국과 해양패권을 다투고 있다. 1999년 제1차 연평해전을 완승으로 이끈 당사자로서 바다는 우리가 꼭 지켜야할 삶의 터전이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이고 수출, 수입의 99%가 이 바닷길을 통해서 세계로 이어진다. 그래서 우리에게 바다는 생명줄이자 생존의 길이기도 하다. 지정학적 위치와 자강(自彊)하지 못한 우리는 역사적으로 해양과 대륙세력 사이에서 끊임없이 침탈을 당해왔다. 그 대표적인 것이 7년 전쟁 임진왜란이다. 이순신 장군은 남쪽 바다에서 23전 23승의 불패의 신화를 만들면서 왜군의 서해진출을 봉쇄해 제해권을 장악했다.
40년 가까이 해군생활을 한 나는 지금도 난중일기를 손에서 놓지 않고 있다. 읽을 때마다 그분의 인간적인 고뇌를 절감한다. 갖은 역경을 극복한 그 분의 위국헌신, 살신성인 정신에 고개가 절로 숙여질 뿐이다. 오늘날에 우리는 그 정신을 꼭 본받아야 할 것이다. 특히 공직자들은 선공후사의 청렴한 공직관을 지녀야 한다. 누란(累卵)의 위기에서 나라를 지켜낸 충무공 이순신의 고뇌를 표하려는 필자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송영무 (제 26대 해군참모총장, 2006~2008년 (예) 해군대장)
나라 안팎이 시끄러운 내우외환의 시대를 맞아, 우리는 ‘경세가’ 류성룡 대감과 ‘전략가’ 이순신 장군의 피와 땀과 눈물의 지혜를 모아야할 것이다. 바로 이런 때에 『다시 쓰는 징비록』은 망전필위(忘戰必危)의 안보의식을 높여주는 시의적절한 책이다. 저자이자 ‘평생 기자’인 김동철 박사의 예리한 세상 바라보기와 역사 속에서 교훈을 찾으려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지혜를 엿볼 수 있음은 다행이다.
원혜영(5선 국회위원, 국회외교통상위원회 위원)
지도를 펴보면 우리나라는 대륙과 일본열도에 갇혀있는 ‘고립된 섬’과 같다. 대한민국-미국-일본과 북한-중국-러시아가 동북아 패권을 놓고 힘을 겨루는 형세이다. 이 누란(累卵)의 위기를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고 현명하게 극복해야 할 것인가? ‘평생 기자’로 활동해온 김동철 박사가 이순신 장군의 필사즉생(必死卽生) 정신을 오늘날에 되살리려는 그 열정과 충정에 박수와 응원의 환호를 보낸다.
이수흥((주)화인홀딩스 회장, 2018 평창동계올림픽 고문)
김희정 기자 penmoim@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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