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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왜교성

category 답사기행문(포토) 2016. 9. 29. 15:53

 순천 왜교성 .1598년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철군하기 전 웅거했던 왜성으로 복원되어 있다. 이순신 장군은 명나라 수군도독 진린과 연합함대를 이뤄 고니시를 포위했다. 그러나 이순신은 고니시를 구원하러 오는 일본 수군이 남해 하동 부근 노량으로 온다는 정보에 따라 이들을 무찌르려고 그곳으로 출동했다. 일본수군과 전투가 한창 치열해지는 사이 고니시는 작은 배를 타고 유유히 순천 왜성을 빠져나가 부산포를 거쳐 일본으로 귀국했다. 이순신 장군은 노량해전에서 최후의 전투를 벌였고 왜군의 조총에 맞아 장렬한 죽음을 맞았다. 그것은 살신성인(殺身成仁)이었다.  


확실한 방어를 위해서 기역 자로 꺾어서 성을 쌓은 게 특징이다.


천수각 터. 왜성의 맨꼭대기 천수각이 세워졌던 성터. 이 천수각 터에 오르면 사방이 훤히 보여 탐방의 기능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중국화가가 그린 정왜기공도. 순천왜성 전투도이다. 왼쪽 명나라 군선의 모습은 보이나 조선 수군 판옥선의 모습은 자취를 감췄다.

1598년 11월  당시 바닷가에는 이순신과 명나라 수군도독 진린이 연합함대로 에워싸고 있었다. 육지에서는 명나라 제독 유정과  도원수 권율의 조명연합군이 견제했지만 끝내 고니시 유키나가는 혼란한 틈을 타서 일본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유정은 고니시로부터 뇌물을 많이 받고 퇴각로를 열어주자는 주장을 했고 진린도 같은 주장을 했으나 이순신 장군의 편범불반(片帆不返), 단 한 척도 돌려보내지 않는다는 주장에 이끌려 조명수군연합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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