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철칼럼] 의사자(義死者)의 살신성인(殺身成仁)
2016/10/27 13:11 등록 (2016/10/27 13:11 수정)
김동철 기자 (youth@babytimes.co.kr)
▲ 김동철 베이비타임즈 주필·교육학 박사 / ‘환생 이순신, 다시 쓰는 징비록’ 저자
그는 지난 9일 새벽 4시쯤 서울 마포구 서교동 5층 빌라에서 불이 나자 4층 자신의 방에서 1층 밖으로 뛰쳐나와 119에 신고했다. 그리고 빌라 건물을 몇 차례 올려다보더니 잠시 머뭇거리다가 건물 안으로 뛰어올라갔다. 나중에 그는 5층에서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쓰러진 채 발견됐다. 유독가스에 질식해 뇌사 상태에 빠진 안씨는 20일 숨지고 말았다.
불은 동거녀의 이별 통보에 격분한 어느 20대 남자가 홧김에 질러 3층에서 시작됐다. 안씨는 방마다 초인종을 누르고 소리를 질러 이웃들을 대피시켰다. 안씨 덕분에 21개 원룸이 있는 건물에서 다른 사망자는 없었다. 3층에서 불이 났으면 4~5층은 연기가 자욱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안씨는 5층까지 올라가 이웃들을 탈출시키느라 뛰어다니다 쓰러지고 말았다.
안씨는 성우 지망생이었다. 성우 학원에 다니려고 지난 6월 빌라 원룸으로 이사 왔다고 한다. 장애인 봉사활동도 하겠다고 신청했는데 안씨가 쓰러진 후 소식이 없자 봉사 담당자가 수소문 끝에 병원에 찾아와 눈물을 흘렸다.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은 수백 명 학생이 물속에 가라앉는 상황에서 배를 버리고 자기들만 살겠다고 도망쳐 나왔다. 그런 개인 이기주의가 팽배하고 탐욕이 봇물을 이루는 사회에서 안씨의 의로운 행동 소식을 접했을 때 처음엔 가슴 먹먹하다가 곧 진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안씨의 의로운 행동은 이 시대 살신성인(殺身成仁)의 표상이다. 메마르고 척박한 이 세상에서 그가 던져준 메시지는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같이 살아가자’는 외침으로 되돌아 온다. 이 ‘초인종 의인’은 곧 ‘명예성우’가 된다. 한국성우협회는 “성우 지망생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누구보다 값지게 쓰다 생을 마감한 고인의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명예회원으로 선정하겠다”고 밝혔다. 연말에 열리는 ‘2016 KBS 성우연기대상’ 시상식에서 고인의 어머니에게 명예회원을 인증하는 ‘명예성우’ 패가 전달될 예정이다.
또한 정부와 여당에서는 의사자(義死者) 지정여부를 곧 심의하겠다고 한다. 정부 규정상 의사자는 자신의 직업과 상관없이 타인의 생명, 신체 재산상 위해(危害)를 구제하다 숨진 사람을 말한다. 의사자 유족에게는 약 2억원의 보상금이 지급된다. 또 의사자의 배우자, 자녀, 부모, 형제 등은 의료급여 대상자가 돼 건강보험료를 내지 않고 병원 치료비 일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유족이 신청해 대상자로 결정되면 의사자는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있다.
교육부는 최근 제정된 인성교육진흥법을 시행하고 있는 중이다. 인성교육의 주요항목을 살펴보면 예(禮), 효(孝), 정직(正直), 책임(責任), 존중(尊重), 배려(配慮), 소통(疏通), 협동(協同)이다.
안씨의 의로운 행동은 이 가운데 인성의 여러 요소와 연결가능하다. 119에 화재신고를 한 것은 사람의 고귀한 생명에 대한 예의, 존중과 책임의 실천이다. 불이 난 건물에 다시 뛰어가 일일이 깨우는 행위는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의 발로이다. 또한 모르는 이웃이라도 같이 살아가야한다는 소통과 협동의 의식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이기주의와 탐욕이 판치는 시대에 인성교육의 모델로서 추앙받아 마땅할 것이다. 이런 살신성인의 자세는 곧 이순신 장군의 정신과 맥이 통한다.
옳을 의(義)를 해자해 보면 양(羊)과 나 아(我)자가 조합된 모양이다. 자기의 위의(威儀)를 뜻한다. 즉 예법에 맞는 몸가짐이다. 의로움을 실천함으로써 인간의 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행의이달기도(行義以達其道)이다.
공자는 의자 의야(義者, 宜也), 즉 ‘의란 사람이 지켜야 할 마땅함’이라고 말한다. 의란 인간이 행해야 할 마땅한 도리인데 그것을 이루기가 그리 쉽지 않음은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 이순신 장군 동상
왜적의 침입으로 나라가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처했던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은 자신의 목숨을 바침으로써 나라를 구하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을 완성했다.
1593년 10월 27일 한산도 진영에서 진중음(陣中吟)을 읊었다.
서해어룡동(誓海魚龍動) 바다에 맹세하니 어룡이 알아듣고
맹산초목지(盟山草木知) 산에 맹세하니 초목이 알아주네
수이여진멸(讐夷如盡滅) 원수를 모조리 섬멸할 수 있다면
수사불위사(雖死不爲辭) 죽을지라도 내 마다하지 않으리라
절체절명의 국난극복을 위한 장군의 위국헌신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이순신 장군은 맡은 바 책무를 다하고 사람의 도리를 다하고자 항상 나라에 대한 충정(忠情)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국왕과 백성을 위한 나라사랑은 충으로, 부모에 대한 사랑은 효로 나타났다.
군자행기효 필선이충(君子行其孝 必先以忠) 군자는 효를 실천함에 있어 반드시 나라에 대한 충을 먼저 이룬다.
이순신 장군은 난중일기에 노모에 대한 언급이 107번이나 나올 정도로 극진한 효심을 가진 효자였다. 그런 효자는 곧 나라에 대한 충성을 다하는 진충보국의 위인이 되었다. 수많은 모함과 질시가 따라다녔음에도 그는 오로지 나라사랑, 부모사랑, 이웃사랑의 정신을 한번도 잊어버린 때가 없었다. 있는 힘을 다 바쳐 죽음을 불사하겠다는 그의 곧은 자세는 곧 살신성인의 정신이다.
부하들의 어려움을 남의 일로 여기지 않고 배려한 것은 곧 이타심(利他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보통 사람이 흉내내기조차 힘든 것이 아닐 수 없다.
이순신 장군은 평소 일심(一心)이란 수결을 자주 사용하였다. 처음과 끝이 같은 한결같은 한 가지 마음이다. 제갈량은 장수가 지녀야할 사욕(四欲) 중 하나가 “마음을 한결같이 하는 것(心欲一)”이라고 했다. 평소 제갈량을 닮고자 숭상했던 이순신 장군의 일심 수결은 여기서 나온 것일지 모른다.
<김동철 주필 약력>
- 교육학 박사
- 이순신 인성리더십 포럼 대표
- 성결대 파이데이아 칼리지 겸임교수
- 문화체육관광부 인생멘토 1기 (부모교육, 청소년상담)
- 전 중앙일보 기자, 전 월간중앙 기획위원
- 저서 : ‘환생 이순신 다시 쓰는 징비록’ ‘무너진 학교’ ‘밥상머리 부모교육’
▲ 김동철 베이비타임즈 주필·교육학 박사
김동철 주필 youth@baby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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