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 전투와 논개
논개(論介) _ 변영로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아리땁던 그 아미/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 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맞추었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흐르는 강물은/ 길이길이 푸르리니
그대의 꽃다운 혼/ 어이 아니 붉으랴.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남강 쪽으로 내려가면 왜장 게야무라 후미스케(毛谷村文助)를 껴안고 강물로 뛰어들었다는 의암(義岩)이 있다. 세월은 흘러흘러 한 기생의 아리따운 모습은 햇볕에 바랜 역사가 되었고 그 의로운 기상은 달빛에 젖어 신화가 되었다.
논개는 진주목의 관기(官妓)로 계사년 1593년(선조 26) 임진왜란 이듬해 진주성이 일본군에게 함락되자 왜장을 유인하여 순국한 의기(義妓)로 알려져 있다.
200년 후 진주성을 찾은 다산 정약용(丁若鏞)은 ‘촉석루 회고’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 불렀다.
오랑캐의 바다를 동으로 바라보며/ 숱한 세월 흘러/ 붉은 누각 우뚝이/ 산과 언덕을 베고 있네/
그 옛날 꽃다운 물위론/ 가인의 춤추는 모습 비추었고/ 단청 매긴 기둥엔/ 길이 장사가 남아 있네/
전장 터로 봄바람 불어/ 초목을 휘어감고/ 황성에 밤비 내려/ 안개 낀 물살에 부딪히네/
지금도 영롱한 영혼이/ 남아 있는 듯/ 삼경에 촛불 밝히고/ 강신제를 올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