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리더십] 오만과 편견, 그리고 진실
국내외로 심란한 일들이 많은 요즘, 우리는 갈피를 못 잡고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리고 있다. 이순신은 임진왜란 7년 내내 일기를 썼다. 전쟁 중 쉬지 않고 써 내려간 그의 일기가 갖는 의미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대선의 계절을 맞아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답답하다 못해 참담하다. 누군가는 국민 개개인에게 수백만원씩 나눠주겠다고 하고, 누군가는 북한의 돈줄인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겠다고 한다. 또 몇몇 국회의원들은 한반도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를 놓고 중국 가서 물어보고 답을 찾고자 한다. 대중에게 영합하려는 무모한 인기주의는 곧 나라의 살림을 거덜나게 만드는 지름길이다. 전세계가 북핵의 골칫거리를 놓고 북한의 돈줄죄기에 나서고 있는 마당에 정작 북핵의 직접 위해(危害) 당사자인 대한민국의 대통령 후보라는 사람이 북한의 숨통을 터놓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앞뒤가 안 맞는 모순(矛盾)이다. 아니 북핵을 발전시키는데 일조하는 이적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 모든 게 다 나라 안위에는 나 몰라라 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대권만 잡으면 된다는 ‘대통령병 환자’들의 보신, 무사안일 정책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박 대통령 문제가 검찰과 헌법재판소에 넘어가 있는 국가 리더십 실종 상황에서 촛불과 태극기로 나뉘어 치고받는 분열의 혼란상은 구한말 스스로 무너져 내린 망조(亡兆) 정국을 방불케 한다. 나라밖으로 눈을 잠시 돌려보자. 스텔스 기능을 가진 미국의 최신예 전폭기와 항공모함이 한반도 주변으로 몰려들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국방장관이 한국을 제일 먼저 찾았다. 그리고 북한은 트럼프를 시험이라도 하듯이 미사일을 쏘아올렸다. 중국 전투기들은 대한해협을 무단 통과했다. 일본은 독도와 종군위안부 문제로 각을 세우고 있다. 일본 아베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은 서로 안보와 경제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밀회를 즐겼다. 나라 밖은 정말 뭔가 긴박하게 흘러가고 있는 것 같은데 나라 안으로 눈을 돌리면 무사태평의 한가한 소리들만이 어지럽게 춤을 추고 있다.
G2인 미국과 중국의 용호쟁투(龍虎爭鬪)로 동북아에서 긴장의 파고가 높이 일고 있다. 그 중심에 대한민국이 있다. 대한민국의 지리적 위치를 살펴보자. 지도를 펴놓고 보면 한반도는 대륙과 해양세력에 의해 포위된 ‘섬’이다. 수천년 동안 우리가 조공(朝貢) 바쳐왔던 중국은 한 때 지도상에서 대한민국을 지워버리려고도 했다. 중국은 지금도 종주국인 중화(中華)로 착각하고 그 옛날 조공국(朝貢國)이었던 대한민국에게 “사드 배치하면 재미없을 것.”이라며 노골적으로 압박과 공갈을 일삼고 있다. ‘북극곰’ 러시아는 그 속내를 좀체 드러내지 않는 크레믈린 궁전과 같다. 구한말 조선의 고종이란 임금은 러시아 공사관을 스스로 찾아가 몸을 숨겼다. 이른바 1896년의 아관파천(俄館播遷) 사건이다. 러시아도 이런 추억을 상기하면서 한반도에서 자신들의 지분을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의 후견인으로 UN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미국과 영국, 프랑스와 각을 세운 대척점에 서 있다.
독도를 품은 동해는 태평양과 일본 열도에 의해 가로막혀 있다. 역사상 한반도는 이민족의 지배를 두 번 받았다. 그 첫 번째가 고려 때 몽골족이 세운 원나라의 간섭기(1270~1351년)였고 두 번째가 일본의 조선강점기(1910~1945년)이었다. 일본은 이보다 앞서 1592년 임진왜란, 1597년 정유재란을 일으키며 조선을 정복하려 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信秀吉)가 풀지 못한 ‘한(恨)’은 19세기 정한론(征韓論)의 부상으로 조선은 일본의 먹잇감이었다. 이렇듯 역사는 언젠가 다시 반복될 수도 있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던진다.
최순실 사태를 만난 종편 TV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한껏 달아올라 시끄러운 노이즈(noise) 마케팅을 선사하고 있다. 그 출연자들의 면면을 보더라도 여야 국회의원, 정치평론가, 교수, 의사, 변호사, 연예인, 언론인 등 다양한 직업군이 나와서 침을 튀기는 것까지는 좋은데 진실을 찾으려는 노력(finding fact)에서 실패하는 경우가 종종 보인다. 이들의 검증되지 않은 열성 발언은 자칫 세상물정 잘 모르는 사람들을 현혹시키기에 충분하다. 자신의 생각과 느낌, 그리고 귀동냥해 주워들은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는 ‘카더라.’ 통신이 많다는 이야기다. 영혼 없이 부활한 시체인 좀비(zombi)들의 말장난처럼 들릴 때 그 발언의 무책임한 결과는 곧 나라를 좀먹는데 일조할 뿐이다.
그 발언의 진의를 살펴보건대 불교에서 말하는 세 가지 삼독(三毒)인 탐(貪 탐욕), 진(嗔 성냄), 치(痴 의심)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순실과 그 일당도 마찬가지다.
말이 많다 보니 정작 쓸 말은 별로 없고, 그렇다보니 거짓말이 사실을 압도하는 탈진실(post-truth)의 양상이 되고 만다. IT 강국인 우리나라에서는 스마트 폰을 이용한 SNS 메시지 전달이 아주 쉬운데 따라 거짓정보와 페이크 뉴스(fake news)가 판을 치고 있다. 촛불과 태극기 민심 중 과연 어느 쪽이 진실을 말하는 것인지는 일단 사법기관의 판단에 맡겨야 할 것이다. 그런데 내 생각과 다르면 곧장 육두문자에 죽일 듯이 달려든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매체이다 보니 애 어른 할 것 없이 치고받는다.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내 생각과 다르면 적이고 같으면 동지라는 이분법에서는 합리적으로 생각할 제3의 사고가 들어갈 틈이 없다. 요즘 공공연하게 퍼지고 있는 괴담은 오만과 자아도취인 휴브리스(Hubris)에 가깝다.
이런 마당에 ‘더러운 잠’이란 제목의 패러디 그림 하나가 국회의원 회관에 전시되었다. 외국화가의 유명 작품으로 평화롭게 누워있는 나체 여인의 얼굴을 박 대통령의 얼굴로 둔갑시켰다. 그 옆에는 검은 색 얼굴의 하녀인 최순실이 꽃다발 대신 주사기 다발을 들고 있다. 임신한 듯한 배위에는 사드 미사일이 있다. 작가는 표현의 자유를 말하고 있고 이 그림을 본 예비역 해군 제독은 그림을 뜯어 바닥에 던져 재물손괴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
세 사람의 말이 호랑이도 만든다는 삼인성호(三人成虎), 즉 거짓말도 여러 사람이 하면 곧이들리게 마련이다. 언론의 자유가 무르익었음일까. 자유의 지나침은 방종으로 연결되고 그 실체적 진실을 외면한 채 대중 영합주의, 포퓰리즘으로 흘러가고 있다. 기자는 사실을 쓰고 말하려는 노력 하에서 존재하는 역사의 기록자이다.
우리는 좀 더 차분해져야 한다. 그리고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려는 사법기관의 결과를 기다리고 그 판결에 승복하는 어른다운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7년 내내 일기를 썼다. 전쟁 중이었음에도 거의 매일 일기를 썼다는 것은 경이롭다. 물론 아주 바쁠 때는 날짜와 날씨, 그리고 간단한 사실만 한 줄로 적어놓기도 했다. 책상 앞에 똑바로 앉아 마음을 쉬면서 정좌식심(正坐息心)의 자세로 글을 쓰는 모습, 그럴 때 옳고 그름과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에 대한 명징한 생각이 들 것이다.
때론 달빛 아래서, 때론 호롱불을 밝혀 오롯이 붓을 놀려가는 모습에서 오만과 거짓이 나올 리가 없을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남긴 난중일기와 전쟁기록을 담은 임진장초, 그리고 친척들에게 보낸 편지인 서간첩 등은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76호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난중일기는 2013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세계가 인정하고 알아주는 전쟁기록문학이 된 것이다.
친필 일기에 담긴 구절마다 나라를 걱정했고 진정으로 부하와 가족을 사랑했던 그 진면목을 찾아볼 수 있다. 왜수군과의 23전 23승이라는 치열한 전투, 명나라 장수들의 오만방자함에 대한 대항과 설득, 선조의 질시와 서인세력의 탄핵 규탄이라는 고초를 겪으면서도 틈틈이 지필묵을 준비해 쓰고 또 썼다. 그 정신은 충(忠), 효(孝), 애민(愛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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