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탐방- 길상사의 세 사람
길상화, “내가 시주한 천억 원이 백석 시 한 줄만도 못해, 다시 태어나면 시를 쓸거야.”
1000억 원대 재산 무주상보시한 길상화 보살, 끝내 백석을 못잊어 백석시 곁에 남아
‘무소유’ 법정 스님, “주어진 가난은 우리가 이겨내야 할 과제이지만, 선택된 맑은 가난, 즉 청빈(淸貧)은 삶의 미덕이다.”
삼각산 남쪽 끝자락, 서울 성북동 길상사(吉祥寺)에는 세 사람이 운명처럼 얽혀져 있다.
‘무소유’를 갈파한 법정스님(1932~2010), 그 무소유 철학에 깊이 매료된 ‘대원각’ 안주인 김영한 여사(1916~1996, 불명 길상화, 吉祥華), 그리고 김 여사와 20대 때 인연을 맺었던 시인 백석(1912~1996)의 자취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우선 김영한 여사의 삶의 궤적이 드라마틱하다. 16세에 금하(琴下) 하규일 문하에 들어가 기생 진향(眞香)이 된다. 조선어학회사건으로 함흥형무소에 구금된 혜관 신윤국 선생(김 여사의 일본유학을 도왔던 사람)의 면회를 위해서 함흥 권번 소속이 된다. 진향은 일본유학 후 조선일보 기자로 있다가 함흥 영생고보 영어교사로 있던 백석과 한 모임에서 첫눈에 반하는 운명적인 만남을 갖는다. 그리고 깊은 사랑에 빠진다.
1939년 백석은 함흥에서 동거하던 진향에게 자야(子夜)라는 아호를 주고 함께 만주 신경으로 갈 것을 권했으나 자야는 혼자 경성으로 돌아온다. 기생과 사귀는 것과 관련, 백석 집안의 반대가 심했고 그의 앞날에 걸림돌이 될 것을 염려한 나머지였다.
백석과 헤어지고 8.15광복, 6.25 전쟁으로 남북은 허리가 잘려 오도 가도 못하게 됐다. 자야는 1953년 만학으로 중앙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선가 하규일 선생 약전’을 저술했다. 1955년에는 계곡물이 흐르는 성북동 배밭골에 음식점(청암장)을 차린다. 그리고 3공화국 시절 고관대작, 정객들이 드나들던 장안 3대 요정(삼청각, 청운각) 중 하나인 대원각으로 키웠다.
일흔이 넘은 그녀는 1987년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깨달은 바 있어’ 7천여 평의 대원각 터와 40여개 부속건물(시가 1000억 원 호가)을 절로 만들어주길 청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1938년. <여성> 3권 3호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그녀는 어느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시주한 천억 원이 백석 시 한 줄만도 못해, 나는 다시 태어나면 시를 쓸거야.”
월북문학가로 금기시되던 백석이 1988년 해금되자, 그녀는 1989년 수필집 ‘백석, 내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을 발표했고, 1995년 ‘내 사랑 백석’을 펴냈다. 그리고 사재 2억 원을 들여 백석문학상 제정에 도움을 줬다.
마침내 법정 스님이 그녀의 뜻을 받아들여 1997년 대원각 터가 길상사로 ‘맑고 향기롭게’ 태어났다. 첫날 법회에서 그녀는 법정스님으로부터 염주 한 벌과 ‘길상화(吉祥華)’라는 불명을 받았다. 그리고 수많은 참석자 앞에서 “저는 죄많은 여자입니다. 저기 보이는 저 팔각정은 여인들이 옷을 갈아입는 곳이었습니다. 저의 소원은 저곳에서 맑고 장엄한 범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나 죽으면 화장해서 눈이 많이 내리는 날 길상헌 뒤뜰에 뿌려 주시오”라는 유언을 대로 1999년 11월 그녀의 유골은 뿌려졌고, 공덕비가 세워졌다. 바로 옆에는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고즈넉이 지켜서있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라는 백석의 싯귀와 달리 기생 진향은 서울에 정착해서 많은 돈을 벌었다. 그리고 모두 다 주고 떠났다. 법정 스님은 자신이 입적한 곳인 진영각에 예사롭지 않은 유언장을 남겼다.
“앞으로 내 이름의 책은 세상에 내지 말아라.” 그리고 “내 머리맡에 있는 서적들은 신문을 배달하는 사람에게 전해주어라.”
이렇듯 세 사람은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갔지만 마침내 길상사에서 하나로 만났다.
길상사 중심의 극락전에는 미래불인 아미타불이 모셔져 있다. 현 세상에서 이루지 못한 백석과 자야의 애틋한 사랑이 극락세계에서 이루질 것인지, 법정스님의 말대로 무소유를 실천한 김여사의 또 다른 소원이 내생에 이뤄질 것인지...
경내에는 조각가 최종태씨가 만들어놓은 성모상을 닮은 관세음보살상이 독특하고 모 기업가가 종교간 화합을 위해 쌓아놓은 불탑이 유독하다. 아무리 봐도 맑고 향기로운 도심 속 ‘명상도량’으로서 손색이 없어 보인다.
시야를 가리는 높은 담, 으리으리한 성채 같은 성북동 집들로 둘러싸인 길상사를 나오면서 ‘무소유’의 법정스님 말씀이 죽비(竹篦)처럼 들려온다.
/글, 사진 김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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