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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두문자가 오가는 자리다툼 

나는 젊었거늘 서서 간들 어떠리– 버스 표어

파릇한 새싹이 불붙은 봄꽃 사이로 헤치고 돋아나는 그린(green)의 계절이다. 살랑살랑 봄바람, 따사로운 봄볕에 기분이 마냥 좋아지는 건 분명 비타민 D가 생성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절로 휘파람이 나오는 봄날의 어느 아침 땅속 지하철에서 할아버지와 젊은 여자의 고함과 맞고함, 비명이 연거푸 터져 나왔다. 자리다툼이다. 이 영역다툼은 이미 오래전부터 내가 예상했던 것이었다. 이른바 ‘노청(老靑)전쟁’이다.

지하철은 각양각색의 남녀노소가 한 공간에 모임으로써 사람들의 민낯을 똑바로 들여다 볼 수 있는 곳이다. 나아가 그 지역의 민도(民度)까지도 한눈에 훑을 수 있는 인간 체험의 공간이다. 때론 흐뭇한 모습에 감동을 하지만 때론 눈살 찌푸리는 추태(醜態)가 벌어지기도 한다.

자리다툼의 역사는 꽤 오래됐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더 잘 살기 위해서 절대로 나의 것을 남에게 양보하지 않는 원시적 DNA가 뼛속까지 박혀 있다.

싸움이 원래 그렇듯이 위아래가 없는 것은 기본이고 윤리고 도덕이고 양심이고 체면이고 모두 내던진 상태에서 전개되는 법이다. 이 추태(醜態)는 일단 완력이 받침된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것으로 끝난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기 때문이다.

 

지하철 에티켓을 나타내는 표. 에티켓을 지키지 않는 승객을 동물로 표현한 것이 재미있다. ⓒ김동철

지하철 에티켓을 나타내는 표. 에티켓을 지키지 않는 승객을 동물로 표현한 것이 재미있다. ⓒ김동철

 

출퇴근 시간에 ‘지옥철’로 불리는 곳은 9호선만이 아니다. 아침 7시 30분쯤 3호선 연신내역. 앉을 공간은 적고 앉고자 하는 사람은 많다보니 자연히 자리다툼 경쟁이 치열해진다. 열차가 도착하기 전에 문밖 창문을 통해 찜해둔 자리에 ‘용감한 아줌마는 가방을 먼저 던진다’는 속설은 씁쓸하다.

특히 출퇴근 때 지하철에서는 기싸움, 말싸움, 몸싸움이 벌어진다. 임산부, 노약자, 장애인이 앉는 특별보호구역에서는 더욱 치열한 각축전이 일어난다.

발 디딜 틈조차 없는 공간에서 마침 비어있는 한 자리가 있었다. 그 노약자석에 한 젊은 여성이 겨우 비집고 가서 어렵사리 앉았다. 그리고 그녀는 피곤한 듯 이내 눈을 감았다. 다음 역에서 탄 한 남자 노인이 그 젊은 여성 앞에 바짝 다가가 “일어나!”라는 손짓을 보냈다. 눈을 감고 있던 젊은 여성의 태도가 더욱 괘씸했던지 노인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마도 힘 있을 때 ‘갑’으로 살았던 사람 아니면 안하무인(眼下無人)의 ‘진상’으로 추정된다.

“이봐 아가씨!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앉아?”

그 고압적 목소리에 젊은 여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다시 노인의 강권에 젊은 여자는 “나 임산부란 말이에요!”라고 거칠게 항변했다. 그러자 노인이 일반석의 임산부석을 가리키며 “임산부면 저쪽으로 가! 그리고 임산부라는 증거를 대봐”라고 고함을 질렀다. 사람들의 시선이 잠시 몰렸다가 이내 자기들 핸드폰으로 되돌아갔다. 두서너 정거장을 가는 동안 노인은 젊은 여자의 코앞에서 계속 불평을 털어놓았다.

“요즘 젊은 것도 싸가지가 없어.” “어른을 몰라보고, 가정교육이 엉망이란 말이야.”

이어지는 노인의 ‘잔소리 폭탄’에 젊은 여자는 마지못해 일어났다. 찌그러진 얼굴에는 짜증이 줄줄 흘렀다. 그런데 일반석에 마련된 임산부석에도 나이 지긋한 남성 노인이 앉아 있었다. 젊은 여성은 또 다른 봉변을 당할까 두려웠던지 잠자코 한쪽 편에 서있었다. 서너 정거장을 갔을까, 여성이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이 날카로운 소리를 질렀다.

“이~씨, X나 재수없네.”

그리고는 쏜살같이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그 소리를 들은 노인은 “뭐, 이 씨XX!” 하면서 벌떡 일어나 여자 가방을 붙잡으려고 했으나 이미 전철문은 닫히고 있었다. 자칫 가방이나 옷깃이 전철 문에 끼였더라면 큰 사고가 일어날 뻔 했다.

 

비상경계령 해제된 지하철 여담

노인이나 젊은이나 입에서 육두(肉頭)문자가 쏟아져 나왔다. 차마 보기도 듣기도 민망한 상황이었다. 순간 나는 고인이 된 소설가 박경리 선생의 토지의 한 대목을 떠올렸다.

“나잇살이나 처묵으문서 씰데 없이 아가리 놀리지 마라고, 내 입에서 나올 거라곤 육두문자밖에 없인께.” “거 말 조심하라구. 내 입에서 육두문자가 나가기 전에.”

사람들은 여전히 핸드폰에 머리를 박은 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노인이 종로 3가역에서 내리고 나서야 일단 비상경계 해제가 됐다. 대학생인 듯한 젊은이가 친구에게 말했다.

“우리나라 노인들 아무리 공짜 지하철이라지만, 이 바쁜 시간에 왜 돌아다니는 거야.” “그러게. 돈 내고 탄다면 나오지 않을 걸.” “나이 먹은 게 무슨 벼슬인가. 임산부나 쫓아내고.”

주변에 있던 또래의 젊은 여성 몇몇이 동조한다는 듯이 입을 삐죽거렸다. 한 여성이 친구에게 나지막이 귀엣말을 했다.

“지공족(지하철 공짜인 65세 이상 노인) 때문에 적자가 크대. 노인 때문에 우리만 피 보는 거야.”

 

지하철 내 불쾌감을 주는 행위들을 나타낸 순위. 내리지도 않았는데 타는 사람이 1순위다. ⓒ김동철

지하철 내 불쾌감을 주는 행위들을 나타낸 순위. 내리지도 않았는데 타는 사람이 1순위다. ⓒ김동철

노인도 피곤하고 젊은이들도 매한가지다. 나이를 불문하고 인생은 본질적으로 피곤한 것이다. 런던 지하철도 노약자는 무료인데 오전 9시 이후와 주말, 공휴일에만 무료다. 피크타임에는 본인 부담이고 오프 타임에는 무료인 셈이다. 파리의 경우도 비슷하지만 저소득층 노인들에게 한정하는 선별적 복지시스템을 운영한다.

5~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도시철도공사는 2006년 683억 원에서 2013년 1599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는 보도자료를 내보냈다. 또 5~8호선 무임승객은 하루 평균 27만 5000명으로 전년 대비 1.7% 증가했다고 밝혔다.

고령사회(65세 인구가 전체의 14% 이상)에 접어드는 상황에서 지난 날 만들었던 전철의 노약자석은 터무니없이 적다. 노인들이 이미 일반석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객차 하나에는 총 54개의 좌석이 있다. 일반석이 42개(6열 각 7개씩), 노약자석이 12개(4열 각 3개씩)다. 이 12개의 자리를 놓고 노인, 임산부, 장애자는 물론, 얌체족(앉자마자 눈감고 자는 척하는 사람)과의 밀고 당기는 신경전은 여전하다.

 

분노조절 안 되는 사회의 축소판, 지하철

또 한 번은 여자 노인과 남자 노인이 맞붙었다. 남자 노인이 여자 노인에게 “민증(주민등록증) 까봐. 어린 게 대선배에게 양보도 안 하고 싸가지 없이.”

이 말을 들은 여자 노인은 발끈해서 “이 영감탱이가 치매들렸나. 니네 마누라한테 가서 그렇게 말해, X끼야”라며 되받아쳤다. 남자 노인도 질세라 “이 개XX야!”라며 소리를 버럭버럭 질러댔다.

분노(忿怒)의 사회다. 감춰진 분노는 어떤 방아쇠에 의해서 분출된다. 그 1차 방아쇠가 무엇인지는 모른다. 다만 화약에 불이 붙기만 하면 여지없이 죽기 살기로 붙어보자고 달려든다.

분노조절에 실패한 사람은 일단 건드리면 터지는 클레이모어 폭탄과도 같다. 2003년 대구지하철 방화사건처럼 사회에 불만을 품은 묻지마 사건은 그렇게 생긴다. 인간은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에 더 가까운가? 순자의 성악설(性惡說)에 더 가까운가? 아니면 존 로크의 백지설(白紙說)처럼 환경에서 더 영향을 받는 것일까?

지하철 노선이 우리보다 훨씬 많은 일본에서는 노약자석에 핸드폰의 전원을 꺼달라는 안내문구를 붙어놓고 있다. 대개의 노약자들은 이를 지키거나 무음진동으로 해놓는다. 공공장소에서 규칙을 지키려는 일본 지하철 풍경이다. 일본 초등학교에서 가장 먼저 가르치는 말이 “남에게 메이와쿠(迷惑), 폐를 끼치지 마라”가 습관화돼서 그런 것인가. 지진이 일어나 생사의 기로에 서 있어도 물 배급이나 슈퍼 이용할 때 줄 서기를 습관적으로 하고 있다. 지진이 일어나 집과 가재도구를 모두 잃었으니 국가가 배상하라고 떼를 쓰는 장면은 없다. 언론에서는 이들의 인내하는 모습을 ‘높은 공공의식’ 또는 ‘성숙함’으로 표현한다.

최소한 일본 지하철에서는 다리 벌리고 앉거나 큰 소리로 통화를 하는 꼴불견은 찾아보기 힘들다. 또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 “예수천당! 불신지옥!” 하는 전도자의 모습은 아예 없다.

“어르신들이여, 이 시대 비정규직 젊은이들도 역시 힘들다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아량을 베풀어주시길. 헛기침을 하면서 ‘왜? 의당 내가 앉아야 할 자리에 앉는데 누가 뭐라고 그래’ ‘너희들도 늙어봐’ 하는, 자칫 허세(虛勢)로 비쳐지는 모습에 젊은이들은 더욱 민감합니다.”

 

'너희들도 늙어봐! '라는 노인들의 허세에 젊은이들은 민감해 한다. 아이들이 희망이라는 걸 나타내는 공익 포스터. ⓒ김동철

‘너희들도 늙어봐!’라는 노인들의 허세에 젊은이들은 민감해 한다. 아이들이 희망이라는 걸 나타내는 공익 포스터. ⓒ김동철

SNS에 올라온 글 가운데 ‘뒷방 노인네가 왜 나와’라는 제목에 “노인들 지하철 타고 시청 앞 광장에 와서 시위하지 못 하게 계단을 1~2m 폭으로 높여야”라고 빈정거리는 글이 있다.

노인들이 자기 입으로 말 안 해도 오늘날 대한민국의 성장과 발전에 초석을 다진 산업역군이었다는 것을 젊은이들은 다 알고 있다.

“어르신들이여, 지하철에서 멍하니 앞사람만 쳐다보지 말고(그러다 자칫 ‘왜 째려보느냐?’는 봉변을 당할 수도 있다) 그 옛날 바빠서 미처 보지 못했던 책 한 권이라도 읽거나 뜨개질이라도 하는 게 어떨는지요? 서서 책을 읽고, 뜨개질하고 있는 노인에게 자리 양보 안 하는 젊은 사람들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