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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은 짧고 직업은 길다?

‘세렌디피티(Serendipity)’

이 말은 ‘뜻밖의 발견이나 우연한 발명’을 뜻한다. 일찍이 영국사람 뉴튼(1642~1727)이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우연히 만유인력을 발견한 것이나 심장병 약을 연구하다가 의외의 발기부전치료제인 비아그라가 탄생한 것이나, 플레밍이 푸른곰팡이에서 항생물질인 페니실린을 발견한 것도 그 한 예이다. 또 3M사의 포스트 잇 메모지도 접착제는 항상 붙어 있어야 된다는 고정관념을 깨트림으로써 전혀 새로운 물건이 태어났는데 이것이 전 세계로 퍼져 대박을 쳤다.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튼은 “만약 내가 더 멀리 볼 수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섰기 때문이다”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발견이나 발명은 어느 날 갑자기 무(無)에서 유(有)가 창조되는 것은 아니다. 항상 호기심을 가지고 관찰하고 공부하는 자세, 이 열린 마음의 소유자만이 세렌디피티라는 놀라운 기적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교사나 공무원이 퇴직 후 사학연금이나 공무원연금으로 넉넉한 노후대책을 할 수 있는 ‘꿀 보직’이라는 소문이 퍼지자 너도나도 몰리는 쏠림현상이 심하다. 공무원 연금 월평균 수령액은 242만 원, 사학연금 수령액은 280만 원대이다. 모두 다 달디 단 꿀을 찾아가면 “소는 누가 키운다는 말인가?” 서울대 졸업생이 9급 공무원에 합격했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슬픈 대한민국의 자화상(自畵像)을 볼 수 있었다. 대통령은 입만 열면 ‘청년구직! 창조경제!’를 외치지만 담당 공무원들은 복지안동(伏地眼動), 납작 엎드려 눈동자만 굴리는 형세다. 갑(甲)인 정규직(공무원)과 을(乙)인 비정규직(5년 단임 대통령)의 극명한 차이다.

 

교사나 공무원 등 넉넉한 연금이 나오는 직업으로 몰리고 있다. 대부분의 시니어는 노후준비를 제대로 못해 노후가 두렵다. ⓒ김동철

교사나 공무원 등 넉넉한 연금이 나오는 직업으로 몰리고 있다. 대부분의 시니어는 노후준비를 제대로 못해 노후가 두렵다. ⓒ김동철

인생 2막을 맞이한 712만 여명의 대한민국 베이비부머 동지(同志)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독일의 철학자 이마뉴엘 칸트(1724~1804)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행복의 조건은 첫째 어떤 일을 할 것, 둘째 어떤 사람을 사랑할 것, 셋째 어떤 일에 희망을 가질 것!”

어느새 머리카락에는 하얗게 서리가 내리고 이력서 낼 곳은 점차 없어지는 상황, 집에서 마눌님 성화에 쫓겨나와 갈 곳 없는 거리의 미아(迷兒) 신세는 아닐는지. 아침에 일어나서 갈 곳이 있다는 것은 일단 행복이다. 내 주변 친구들은 칸트의 말대로 사랑하는 가족을 위하여 희망찬 새벽에 일어나 일자리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내 친구 범생이들의 인생2막 이야기

오래전부터 한 가지 의문점이 있었다. 학창시절 ‘범생이’들의 인생2막은 어떨까하는 것이었다. 잠깐 여기서 다음과 같은 경우는 제외하려 한다. 할아버지나 아버지를 잘 만나 빌딩 주인으로 세입자들로부터 꼬박꼬박 월세를 받는 자와 프랑스 보르도산(産) 레드와인에 캐비어 안주를 씹으면서 가엾은 북한 인민들을 동정하는 ‘강남 좌파’는 논외로 친다.

다음은 내가 아는 몇몇 동지들의 인생2막 터닝포인트를 어떻게 맞고 있는지에 대한 미니 보고서다.

#1. P는 대기업 임원(임시 직원?)을 마치고 50대 초반에 희망퇴직했다. 말이 희망퇴직이지 돈 몇 푼 더 주고 나가라는 ‘강퇴’다. 어느 날 갑자기 허허벌판에 내던져졌을 때의 당혹감은 부정(否定), 반항, 복수심을 거쳐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순응, 인정의 단계로 발전한다. 이 외롭고도 씁쓸한 터널을 지나가야 하는 것은 누구나 한번쯤은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일는지 모른다. 그는 흔들리는 마음을 잡으려고 마음공부를 했다. 삐뚤빼뚤한 마음을 가다듬으며 번뇌를 끊으려는 불가의 수련법인 선(禪) 명상(Zen Meditation)이 우리 곁 가까이에 있음은 또한 행복이다. 사람은 남으로부터 인정(Acknowledgement)을 받고자하는 욕구가 저 밑 잠재의식에 깔려 있다. 가까운 사람한테 상처를 받고 멀어졌다 다시 만나고 싸우고 헤어지고, 그러면서도 인간세계를 떠날 수 없는 것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몇 년 동안 아는 친구들 만나 술을 마시며 세상 주유(周遊)를 마친 뒤 미군부대 경비직으로 들어갔다. 영어 토익 550점 이상에 55세 이상은 제한되고 월급은 300만원 정도로 황금직장이었다. 그곳에는 은행 지점장출신, 야간에 대학강사로 뛰는 투 잡의 박사 등 동료가 있었다. 지금은 미군부대를 나와서 또 다른 일을 하고 있다.

#2. 한국에서 신학대학교를 나와 목사 안수를 받은 J는 30년 전 미국 뉴욕으로 파송되어 교포사회에서 개척교회를 열었지만 신도가 안 모이는 통에 목회를 접고 장삿길로 접어들었다. 어려서부터 사업수완의 싹이 보였던 그는 서양인을 상대로 생선초밥, 일본식 스시를 팔기 시작했다. 일식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지자 미국에서도 날생선 요리에 관심을 두기 시작할 때였다. 매장을 하나, 둘, 셋으로 늘려가던 그는 서울에 사는 친척들을 불러들여 맡기고 자신은 홀로 카라반을 트럭에 달고 멕시코 동쪽 카리브해 연안 칸쿤이란 휴양지로 떠났다. 멕시칸들이 차이나 푸드, 중국음식을 좋아한다는 데 착안한 것이다. 만두 튀긴 것과 야채를 듬뿍 섞은 요리 등 아무튼 우리나라의 짜장면, 짬뽕은 아니었다. 커다란 포장마차 같은 곳에서 차이니즈 푸드를 즐기러 온 수많은 멕시칸 가족들은 주급(週給)을 거의 모두 쏟아놓고 갔다. 나는 난생 처음으로 ‘돈을 가마니에 주워 담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10여 년 전 일이다. 나에게 같이 장사를 하자는 제의가 있었지만 송충이는 소나무를 파먹고 살아야 하는 법. “미안해, 노 쌩큐(No thank you)!” 지금은 감감무소식이다.

 

베이비부머 직업탐색 가이드. 인생2막, 새로운 직업을 준비해야 한다. ⓒ김동철

베이비부머 직업탐색 가이드. 인생2막, 새로운 직업을 준비해야 한다. ⓒ김동철

#3. ‘공부가 취미’인 친구 H. 그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KS마크 출신으로 S그룹에서 50대 초반에 나온 뒤 보험회사를 전전하다가 다 때려치우고 공부에 푹 빠지고 말았다. 물론 그의 부인이 교사이기 때문에 생활비 걱정은 안 해도 되는 해피한(?) 가장(家長)이었다. 50대 중반에 지방대 박사과정에 입학했고 동시에 한국방송통신대(학점 따기가 아주 까다로운 곳)에 입학해 일어, 영어, 역사 등 3개 학과 출석부에 이름을 올렸다. 그야말로 주독야독(晝讀夜讀)의 삼매경에 빠졌다. 60대에 대학 강단에 서있는 모습이 보고 싶은데 요즘 통 소식이 없다.

#4. 또 한 친구 G. 그도 학창시절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의 성적 우수자였다. 당연히 KS마크를 달았고 S그룹에서 50대 초반에 나왔다. 스펙이 화려하다보니 헤드헌팅회사에서 중소기업 여러 곳을 소개해서 다녔지만 롱런하지는 못했다.

“나는 시골서 농고를 나왔는디 말여 사장이고, 당신은 최고 대학 경영학과 나왔는디 왜 내 밑에 있는거여? 그 참 이상타!”라는 반복되는 질문에 그만 때려치우고 나왔다. 또 다른 회사에서는 노사갈등으로 시끄럽게 구는 노조원 간부들과 만나서 다독이라는 명을 받았다. 그러나 당시 그는 술을 잘 마시지 못했다. 돈을 주는 사람은 그 이상의 것을 원하기 때문에 ‘공짜 점심은 없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때 단련된 뿌리 깊은 생명력은 지금 여지없이 발휘되고 있다. 한 때 보험을 팔기도 했던 그는 어느 날 미니트럭을 한 대 구입해서 용달업무에 나섰다. 친구들은 ‘우리 나이의 변신은 무죄(無罪)’라면서 그의 용감한 결단을 축하해주었다.

 

100세 시대, 대학 졸업장만으로 살 수 없다

최근 조선일보 와이드 인터뷰 ‘Why?’에 소개된 한 인물이 잊히지 않는다. 가구업체 퍼시스 S회장(68)은 명문 경복중학교를 졸업하고 경기공업고등전문학교(현 서울과학기술대)에 진학, ‘하고 싶은 일을 해서 꿈을 이룬 성공인’으로 등장했다. “성공하려면 남과 다른 길을 가는 게 좋고 대기업이 아닌 조그만 회사가 더 좋다”는 인생 멘토링이 기억에 삼삼하다.

‘세상은 평등한 것인가?’ 어렸을 적 구로공단이나 평화시장 등 공장에 다니던 또래 ‘공돌이’ 중에서 한 우물을 판 결과, 자기 사업체를 가지고 ‘범생이’들보다 훨씬 더 (경제적으로)여유있게 사는 경우도 많이 봤다. 또 쳐다보지도 않았던 공무원(행정, 사법, 외무고시는 빼고)이란 직업이 오늘날 그렇게 ‘신(神)의 직장’이 될 줄이야 누가 알았나. 군대에 가면 보통 군 생활 수십 년을 한 새까맣고 주름살 넉넉히 있는 상사(上士) 계급이 인사계를 맡아 안살림을 담당하는데 대학 재학 중인 졸병들은 그를 그다지 부러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화이트칼라들이 마냥 웃고 즐기는 가운데 세상은 변하고 변하여 그 상사 출신 인사계 아저씨가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100세 시대다. 지난 20대 대학졸업장 하나 달랑 가지고 인생 1막을 잘 살았다면 앞으로 재충전의 피나는 공부를 하지 않는 이상, 살아남기 어렵게 됐다. 인생 2막에서는 최소한 3~4개의 직장을 옮길 각오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버나드쇼의 묘비. ⓒ김동철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버나드쇼의 묘비. ⓒ김동철

“우물쭈물하다 내 그럴 줄 알았다(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는 아일랜드의 극작가 버나드 쇼(1856~1950)의 묘비명(墓碑銘)은 그 하나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