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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효의 달과 이순신 장군

지난 4월 28일은 이순신 장군 탄신 471주년 기념일이었다. 5월은 어버이날, 어린이날, 부부의 날, 성년의 날, 스승의 날 등 가정의 달이다. 6월은 의병의 날, 현충일이 있는 호국보훈의 달이다. 생각해 보니 마침 이때가 나라사랑 충(忠)과 부모사랑 효(孝)의 달이기도 하다.

또 4월 총선으로 3개의 정당이 생기고 새 얼굴의 국회의원들이 뽑혔다. ‘국회의원’ 하면 민생 법안 처리에는 직무유기로 일관하면서 당리당략에 억대 세비만 챙기는 ‘갑(甲)질의 원조’라는 느낌이 떠오른다. 냄비처럼 뜨겁게 달구어 분노하다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곧 식어버리고 마는 망각(忘却)은 우리 국민 특유의 습성이다. 아무튼 백성은 부지런히 피땀 흘려 세금 잘 바치면 국회의원들이 어련히 알아서 잘 할 것이 아니냐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그저 여의도를 바라만 보고 있을 따름이다.

충(忠)과 효(孝)! 이런저런 상념이 떠오를 때 생각나는 사람이 바로 이순신 장군이다.

 

해남 우수영 이순신 장군 벽화.

나라사랑 충과 부모사랑 효의 달에 생각나는 인물은 바로 이순신 장군이다. ⓒ김동철

장군의 ‘절대 고독’에 꽂혀서 남해안 유적지를 탐방한 게 벌써 세 번째다. 카메라와 배낭을 둘러메고 혼자서 장군님 만나러 전라도, 경상도 남해안 전적지와 유적지를 찾아다녔다. 부산, 통영, 진해, 진주, 한산도, 거제도, 남해, 여수, 광양, 진도, 해남, 순천, 노량의 23전 23승 전적지에서 필자는 그의 정신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전략가였고 경세가였으며 전쟁의 와중에서 홀어머니를 사랑한 효자였다.

정치인이나 기업인이나 어떤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 언필칭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임하겠다”는 결의를 비친다. 그 말의 진정성은 차치하고서라도 장군의 사즉생(死卽生) 정신은 우리가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볼 가치가 있다. 필자는 현지 탐사를 통해 장군과 대화를 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의 자세를 배울 수 있었다.

‘필히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 것’이라는 필사즉생(必死卽生)의 정신은 장군의 시퍼런 칼날 끝에서 번득인다.

 

세 번의 파직, 두 번의 백의종군

이순신 장군(1545~1598)의 삶은 파란만장으로 점철된다. 세 번의 파직과 두 번의 백의종군! 이것만으로 그의 관직 생활은 평지풍파의 연속이었다. 조정은 동-서 붕당에서 남인-북인, 서인으로 쪼개져 사사건건 물고 늘어졌다. 당리당략에 사로잡힌 조정의 동인과 서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를 만나고 돌아온 두 통신사의 상반된 의견, ‘왜란이 일어날 것 같다’와 ‘아니다. 그런 기미를 볼 수 없었다’를 놓고 편을 갈라 싸우다가 ‘아니다’ 쪽으로 결론지었다. 절대 오판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네가 옳아도 우리 편이 아니면 아니다’이다. 그래서 왜군 20만여 명이 부산포에 상륙한 지 20일 만에 파죽지세로 한성을 무혈점령했다. 무인지경에 빠진 백성들은 약탈되고 도륙되었다. 임금은 멀리 피난가고 나라는 콩가루가 되어 율곡 이이(李珥)가 이미 말했던 ‘기국비국(其國非國)’ 이것은 정말 나라도 아니었다.

장군의 좌우명은 두 말 할 것도 없이 위국헌신(爲國獻身)의 충(忠)이었고, 그 실천 방법은 두 자루 칼에 새겨졌다.

삼척서천산하동색(三尺誓天山河動色)

 

일휘소탕혈염산하(一揮掃蕩血染山河)

삼척서천산하동색은 ‘세 척 길이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과 강도 빛이 변하도다’란 뜻이다. 즉 북로남왜(北虜南倭), 북방의 여진 오랑캐와 남쪽의 왜구를 상대해야 했던 장군은 강토를 침범한 원수들을 가만두지 않겠다는 맹서를 하늘에 알리니 천지산하가 움직이며 감응(感應)했다는 것이다. 또 일휘소탕혈염산하(一揮掃蕩血染山河)는 ‘크게 한 번 휩쓰니 피로써 산과 강을 물들인다’는 뜻이다. 무단 침입한 오랑캐들에 대한 나라와 백성의 원수를 갚아주고야 말겠다는 결연한 결기가 담겨 있다. 역시 무장으로서의 그의 좌우명은 오로지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는 충성보국(忠誠保國)으로 귀결된다. 그는 단순히 칼을 휘두르는 무장이 아니었다. 문인 못지않은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시조(時調) 작가였고 전쟁기록 문학의 대가였다.

 

KBS 드라마 중 한 장면.

이순신 장군은 효심 또한 깊었다. <난중일기>에 홀로 계신 어머님을 그리는 대목이 많이 나온다.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중 한 장면. ⓒ김동철

장군의 효심(孝心) 또한 어떠한가. 7년 동안의 전쟁기록, <난중일기>에는 저 푸른 망망대해의 바다를 보면서 수루에 홀로 앉아 칠순 노모 안부를 걱정하며 눈물 짓는 기록이 107군데나 나온다.

 

충이 빠진 인성교육진흥법

매일 신문을 보면서 이 나라의 형세를 살펴온 필자로서 오늘날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은 인성교육이 부재했기 때문이라고 한탄한다. 마침내 국회에서 2014년 여야합의로 ‘인성교육진흥법’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강자가 약자를 먹어버리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정글의 링 법칙이 인간 세상에서 버젓이 일어나는 이 현실! 그것은 인성을 잃어버린 짐승의 수성(獸性)과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그래서 ‘사람냄새’가 나는 나라를 만들자면서 ‘인성법’이라는 것을 세계에서 유일하게 만들었다. 늦었지만 여기까지는 좋다. 이 인성진흥법에는 예절, 효도,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 등의 8개 핵심가치가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나라사랑 충(忠)의 항목은 찾아볼 수가 없다.

‘나라가 없고서야 다른 핵심가치가 무슨 소용이 있을 터인가’

법을 만들 때 참여한 여야의원들은 대체 무슨 생각에서 충(忠)을 빼놓고 법안을 합의 처리, 통과시켰다는 말인가. 이것은 일개 실수가 아니라 국시(國是)의 혼란을 가져올 만한 ‘실패작’이라 아니할 수 없다.

개인과 가정과 사회의 안위를 지켜주는 나라의 틀이 없고서야 어찌 외세의 비바람과 북한의 핵위협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인지 통탄해 마지않는다. 오호 애재(哀哉)라!

대한민국의 1번지, 광화문에서 불철주야 나라를 지키는 수문장인 장군의 눈물은 그래서 마를 날이 없을 것 같다.

 

광화문 광장의 이순신 장군 상.

충이 빠져 있는 한 장군의 눈물은 마를 날이 없을 것 같다. ⓒ김동철

‘웃으면 복이 온다’고 SNS에서 태평하게 문자질하는 사람들은 필자가 왜 이 대목에서 소리를 높이고 목 놓아 울고 싶은지 그 뜻을 헤아릴 수 있을까. ‘이순신의 충효(忠孝) 리더십’과 ‘이순신의 핵심정신 DNA’를 연구하고 교육하는 필자로서 앞으로 인성교육진흥법에서 충(忠)의 복원에 대해 온 힘을 바쳐 작으나마 위국헌신(爲國獻身)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