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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와 망전필위(忘戰必危)

category 칼럼/이순신 전략과 리더십 2017. 7. 4. 15:18

사드와 망전필위(忘戰必危)

 

지금 우리나라는 샤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와 관련, “된다” “안 된다”로 엇갈려 적전분열 양상을 띠고 있다. 광화문 광장에서는 어린이들을 내세워 “우리는 전쟁을 싫어하고 평화롭게 살고 싶어요. 사드배치 절대 반대!’의 피켓 시위가 있었다. 또 경북 상주 청소년들의 음악회에 ‘평화, 사드배치 반대’의 현수막이 걸렸다.

 

 

국내에 배치될 예정인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진=김동철 제공

 

그렇다. 우리는 사랑하는 가족과 오순도순 평화롭게 살기를 원한다. 전쟁은 절대 반대한다. 일찍이 임진왜란, 병자호란, 6.25 한국전쟁 등으로 백성들의 삶의 터전은 콩가루가 됐음을 현장 체험을 통해서 겪어 봤다. 어린 학생들의 바람대로 이 땅에서 전쟁은 절대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더 더욱 사드를 배치해야 한다. ‘평화는?’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이 말한 대로 ‘공포의 자식’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공군의 런던 폭격으로 수많은 희생을 치르면서 내린 결론이다. 국제정치학에서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은 한쪽이 심하게 기울어졌을 때 전쟁은 반드시 일어나고 패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북한이 연이어 미사일을 쏘아대는데다 핵무기 소형화까지 시험하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무기 개발은 누구를 겨냥하기 위해서일까. 이 우문(愚問)에 대한 답은 바로 우리를 겨냥한다는 것이다. 말로는 미국을 겨냥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봉남통미(封南通美)의 꿍꿍이속 전략이다. 즉 남한을 고립시키고 미국과 직접 담판을 벌여 한반도 영구평화를 위한 미군철수를 완결시키려는 음험하기 짝이 없는 책동이다. 그 목표의 종착점은 공산주의 적화(赤化)통일이다.

1975년 4월 30일 공산주의자였던 호치민의 월맹에 의해 자유 베트남은 적화되고 말았다. 월남전 동안 미국의 절대적 지원과 주월한국군들이 고귀한 피를 흘렸음에도 베트남은 패망했다. 미군의 원조무기를 베트콩에게 넘겨주는 등 군인과 공직자들의 기강이 무너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박약했으므로 공산당에게 먹힌 것이다.

우리도 한국전쟁 때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3일만에 서울이 점령당했다. 그리고 낙동강 전선까지 적화되었다가 9월 15일 맥아더 원수의 인천상륙작전으로 북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중공군 100만명이 꽹과리 치고 피리를 불면서 압록강을 건너왔다. 이로 말미암아 1.4후퇴를 하면서 서울을 다시 공산당에게 내주고 말았다. 그리고 오늘날 휴전선(DMZ)과 해상 경계선(NLL)이 그어진 것이다. 그 이후 청와대 피습사건, 천안함 폭침 등 북한의 도발은 끊임이 없었다.

 

 

 

UN군 사령관 맥아더 장군은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개시한다. 사진=김동철 제공

 

공산당 운운, 웬? 이 시대에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하느냐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현대사를 잘 모르는 사람이다. 아니면 자생적 좌파가 되어 공산당 운운하는 사람을 ‘수꼴’로 매도(罵倒)하는 자들일 것이다. 오늘도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강물은 엄중한 사실을 품고 있으되 말이 없다. 말이 없다고 역사가 부정돼서야 쓰겠는가. 자라나는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제대로 가르쳐야 할 의무가 우리 기성세대에게 있다.

어린 학생들은 남침과 북침의 개념 이해에서 헷갈린다. 그래서 6.25 한국전쟁을 북침(北侵)이라고 이해하는 학생들이 많다. ‘남한이 북한을 공격, 침략했다’고 공공연하게 가르치는 일부 교사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전쟁발발 3일만에 서울이 함락되었는데 어찌 북침이라고 할 수 있는가를 설명해 줘야 한다.

사드 배치를 놓고 주민들도 우리 마을 뒷산에는 절대 안 된다는 님비(NIMBY)현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사시 사드 배치 지역은 불바다가 된다는 말도 있고 레이더에서 유해물질이 나오기 때문이라는 말도 들린다. 이런 오해와 오류, 무지는 정책당국이 전문가들을 내세워 국민들에게 일문일답으로 자세히 풀어주는 서비스 정신이 없어서 생기는 것이다. 불통이 고통을 만들어낸 측면이 적지 않다.

사드 갈등을 놓고 북한은 물론, 중국은 한미일 안보공동체를 뒤흔들려는 후흑(厚黑)의 검은 속내를 보이고 있다. 우리정부에 대놓고 “중국이냐? 미국이냐?” 양자택일을 하라고 강요할 정도니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정부는 주변 국가들에게 ‘사드는 우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방어수단’이라고 정정당당하게 말해야 한다. 나아가 ‘한반도 전역을 커버하려면 사드는 더 필요하다’는 말도 필요하다. 세상에 자기 나라 지켜주는 무기를 가지고 설왕설래, 왈가왈부, 시시비비 따지고 반대하는 나라는 지구상에서 처음 봤다.

‘우리끼리 싸우는 데는 귀신(鬼神)이고 나라 지키려는 데는 등신(等神) 같다.”는 말이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우리가 처한 지금 상황은 지피부지기 매전위태(知彼不知己 每戰危殆)다. 즉 적을 알기는 하지만 우리가 따라가지 못하니 매번 위태로울 따름이다.

이 대목에서 류성룡(柳成龍)의 피맺힌 절규인 망전필위(忘戰必危)! 즉, ‘전쟁을 잊으면 반드시 위태로워진다.’는 외침이 들려오는 듯하다. 너무나 중요하다고 피를 토하면서 외쳤건만 소 귀에 경 읽기와 같았으니 우리는 밝히고 또 짓밟혔다.

무술년 1598년 11월 19일 이순신(李舜臣)의 노량해전 전사로 7년 왜란이 끝났지만 채 30년도 안 돼 북쪽 오랑캐인 여진족으로부터 두 차례 침략(1627년 정묘호란, 1636년 병자호란)을 당하고 말았다. 우리민족 특유의 급망증(急忘症) 때문이다. 언제 전쟁이 있었느냐는 듯이 다시 무사안일, 태풍무사로 일관하다가 허점을 찔리고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이다. 병자호란 때 끌려간 조선 여성은 50여만명이었다. 청나라 여진족과 사이에 아이를 낳고 살다가 돌아온 여자를 환향녀(還鄕女)라고 했다. 당시는 유교사회에서 이민족 오랑캐에게 몸을 버린 아낙네를 맞아줄 집안은 없었다. 그래서 인조는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홍제천과 연신내천에서 목욕재계(沐浴齋戒)하면 정갈한 몸이 된다고 했지만 환향녀들이 갈 곳은 없었다. 일부는 절로 들어가 여승이 되고 또 자결하거나 먹고 살기 위해서 술과 몸을 팔아야 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환향녀가 데리고 온 아이들을 호로(胡虜) 자식이라고 불렀다. 나중에 애비 없는 홀어머니 자식이란 뜻으로 와전되었다. 이렇듯 전쟁은 여자와 아이들에게는 유독 잔인했다.

예기징이비후환(豫其懲而毖後患)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하고

지행병진(知行竝進) 알면 행하여야 하며

즉유비무환(卽有備無患) 그것이 곧 유비무환 정신이다

 

 

무망루(無忘樓)는 병자호란 때 인조가 겪은 시련과 8년간 청나라 심양에 볼모로 잡혀갔다가 귀국 후 북벌을 꾀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승하한 효종의 원한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영조가 이름 지었다. 사진=김동철 제공

 

류성룡 대감은 전쟁의 책임을 통감하면서 피를 토하며 눈물로 이같은 교훈을 남겼다. 허나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곧이듣는 사람이 없는 세상, 어찌 그들만을 탓할 수 있으랴. 오늘날 청문회장에 나온 행세깨나 하는 유명인사들의 신상털기를 보면 제대로 바르게 살아온 사람이 거의 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것은 어려서부터 가정교육이 잘못되었고 학교교육이 잘못되었고 사회교육이 잘못되어서 그런 결과가 나오는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말로는 미국과 공조해서 북핵을 압박하겠다는 중국과 유엔대북경제제재가 나오는 판에 우리만 이단아(異端兒)인양 이탈하여 북한과 경제교류를 하겠다는 것도 뜨악하다.

그러다가 혹 한미동맹에 균열이라도 생긴다면, 그래서 제2의 애치슨라인(1950년 1월 미국무장관 딘 애치슨이 밝힌 미국 극동방어선 전략)이 그어져 주한미군이 철수한다면, 북한의 오판을 불러일으키기에 딱 좋은 환경이 조성된다.

스스로 강해지려는 자강(自彊)의 정신이 실종된 지금의 풍전등화(風前燈火) 상황의 해법은 온고지신(溫故知新) 역사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지정학적으로 중국과 한반도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이다. 즉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는 밀접한 관계이다. 그래서 명나라는 임진왜란 때 항왜원조(抗倭援朝 왜를 막고 조선을 돕는다)의 기치를 걸고 압록강을 건넜다. 자기나라 땅에 왜의 발길이 닿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에 조선을 울타리 삼아 전쟁을 끝내려는 번리지전(藩籬之戰)으로 생각했다. 그것은 6.25 한국전쟁 때 항미원조(抗美援朝 미국에 대항하고 북한을 돕는다)를 내세워 중공군 100만 대군을 보낸 것과 비슷하다. 중국은 북한이 무너지면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미군과 얼굴을 맞대는 상황을 가장 싫어하는 시나리오로 치고 있다. 그래서 북한에 식량과 석유공급을 끊을 의사가 없는 것이다. 북한 땅을 완충의 안전판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21세기를 맞아 단군 이래 중국보다 잘 사는 나라가 된 이상, 이제 대한민국은 더 이상 변방국가인 동이(東夷), 동쪽 오랑캐가 아니다. 그리고 다시 부활하는 중화사상(中華思想)으로 대한민국을 속방(屬邦)처럼 옮아 매려 해서도 안 된다. 사드와 관련, 과거 천년 동안 갑을관계로 내정간섭을 했듯이 대한민국을 대해서는 더 더욱 안 된다. 인접국가로서 서로 다른 점은 인정하고 서로 같은 점은 교류 발전시켜나가는 화이부동(和而不同) 정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동철(전 중앙일보 기획위원)

교육학박사, 이순신 인성리더십포럼 대표, 성결대 겸임교수, 전 중앙일보-월간중앙 기획위원, 저서 '환생 이순신 다시 쓰는 징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