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2부 학교 양극화 - 깨진 유리창

category 밥상머리부모교육 2016. 8. 9. 18:47

깨진 유리창

1969년 미국 스탠퍼드 대학 심리학과 필립 짐바르도 교수의 흥미로운 실험이 있었다. 상태가 비슷한 자동차 두 대를 골라 한 대는 보닛만 열어 놓고, 다른 한 대는 보닛도 열고 유리창을 조금 깬 뒤 치안이 허술한 골목에 세워두었다. 1주일이 지난 뒤 두 자동차의 모습은 크게 달랐다. 보닛만 열어둔 차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지만, 유리창이 깨진 차는 배터리, 바퀴가 없어지고 낙서와 파괴 흔적이 남은 고철 덩어리나 다름없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또 다른 실험이 재현되었다. 불량배들이 장난 삼아 돌을 던져 동네 한 집의 유리창을 깬다. 깨진 유리창을 바로 갈아 끼우지 않으면 그 집의 다른 유리창이 모두 깨지고 곧 다른 집의 유리창들도 모두 박살 난다. 그 영향으로 사람들이 이사를 가고 동네 집값은 떨어지고 결국 슬럼화한다는 것이다.

이 실험을 근거로 문제의 원인을 초기에 밝혀서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내용을 범죄심리학자인 제임스 윌슨 전 하버드대 교수가 ‘깨진 유리창’(Broken Windows) 이론으로 정립하게 되었다.

이 ‘깨진 유리창’ 이론은 1994년 뉴욕시장으로 당선된 줄리아니가 범죄 예방에 적용해 커다란 관심을 끌었다. 당시만 해도 뉴욕의 야간 치안 상태는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우범지역 척결을 강조했던 줄리아니 시장은 강력범죄를 줄이기 위해서 지하철의 낙서, 도로의 신호무시 등 경범죄를 철저히 단속해 효과를 톡톡히 봤다.

“빨간 불에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을 막을 수 없다면 강도도 막을 수 없다”며 경범죄 단속을 먼저 강화한 것이다. 뉴욕의 치안이 확실하게 달라진 것이다. 깨진 유리창이 전하는 메시지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은 당신 맘대로 해도 좋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사소한 것에도 관심을 갖고 미리 예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사람의 작은 일탈행위가 주위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주며 거리낌없이 범죄를 일으키게 하는 현상 즉 잘못된 행동이 제때 지적되고 바로 잡히지 않으면 확대재생산 될 수 있다. 사소하지만 치명적인 ‘깨진 유리창’ 이론의 계산법은 100-1=99가 아니라 100-1=0이다. 1%의 실수가 100%의 실패를 낳을 수 있다. ‘나 하나쯤은 괜찮겠지’는 허용되지 않는다.

깨진 유리창 이론은 최근에는 범죄학에서 보다 경영이론과 접목돼 각광을 받고 있다. 미국의 홍보 마케팅 전문가 마이클 레빈이 2005년 쓴 ‘깨진 유리창 법칙’이란 책에서는 세계적인 기업의 흥망성쇠가 소개되었다.

“성공은 치열한 경쟁이나 값비싼 마케팅, 원대한 비전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하는 일의 작은 부분을 챙기는 데서 결정된다”고 했다. 사소한 실수가 결국 기업을 망하게 할 수 있다는 교훈을 준 것이다.

이 이론은 제갈량이 아끼는 장수가 작전을 잘못 세워 전쟁에서 패하자 눈물을 머금고 목을 벤 삼국지의 ‘읍참마속’(泣斬馬謖)의 교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학교폭력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폭력의 기미나 왕따의 싹이 보일 때 미리 선제적으로 대응해서 초기에 그 싹을 잘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학교폭력의 예방적 차원에서 필요한 조치이다.

학교폭력에 대한 피해자나 그 학부모 및 주변사람들의 신고가 증가함으로써 폭력의 해결에 어느 정도 효과를 보고 있다.

무관용(無寬容)의 원칙으로 보자면, 독일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학교폭력예방 세미나에 참석차 방한한 독일 도르트문트 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리햐드 귄더 교수는 “독일은 학교폭력을 1920년대부터 학생부에 기록해 왔다”면서 “학생 간 폭력의 해결의 열쇠는 교사가 쥐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교사들도 1주일에 평균 25시간 수업을 하면서 학교폭력으로 발생하는 문제의 상담 및 행정업무도 다 소화해낸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잔인하다’는 독일 속담처럼 학교폭력은 그 싹부터 잘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가해학생을 처벌하고 징계하는 것이 학교폭력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경찰에서 처벌과 징계를 하는 것은 책임을 묻는 방법 중 하나일 뿐, 근본적인 대책이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학교는 처벌을 하는 사법기관이 아니다. 학교는 양육과 교육기관이므로 가해학생을 책임 있는 시민으로 키우려면 설득과 훈화와 더불어 눈높이를 맞춘 교육 프로그램이 절실한 상황이다.

학교는 작은 사회이기 때문에 왜 남을 괴롭히면 안 되는지에 대한 공중도덕과 룰(rule) 지키기 등을 먼저 해야 하고 주변 환경과 가정환경을 파악해서 맞춤형 상담지도를 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정신건강검사 및 진로적성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학교폭력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국가와 사회, 학교, 교사, 학부모, 학생이 힘을 모으면 억제할 수는 있다.

아무리 처분을 강화한다고 해도 범죄의 뿌리를 뽑는다는 것은 불가능할지 모른다. 따라서 필자는 다음과 같은 학교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불순한’ 환경이 바뀌지 않는 한 학교폭력의 근절은 요원한 문제일 것이라는 부정적인 견해를 내놓지 않을 수 없다.

첫째, 21세기 글로벌 시대를 외치면서도 국영수 위주 20세기의 구태한 대학입시제도를 완전히 바꾸는 혁명적인 해법이 없었다. 선진국민이 되기 위해서는 지덕예체(知德藝體), 봉사와 배려의 전인격 완성과 잠재된 소질과 적성을 살리는 다양성 구현 교육 시스템이 필수불가결하다. 국사와 한자 및 도덕을 교육시키지 않는 한 국가정체성이 흔들리고, 개인 인성이 황폐해져 천민자본주의의 행태가 만연할 것이다. 결국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학교’가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둘째, 교사의 문제해결 의지와 노력이 미약했다. 학생인권조례로 학생체벌권을 빼앗긴 교사들은 손을 놓은 채 강 건너 불구경하듯 사태를 방관하고 있다. 먼저 일선 교사와 교장의 태도가 바뀌어야 하고, 교육장과 교육감, 교육수장 등이 의식의 혁명적인 전환을 하지 않으면 메말라 죽어가는 ‘식물 학교’의 꼴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이와 함께 점수를 기준으로 하는 학교와 교원 평가방식의 개선이 필요하다.

셋째, 사회폭력이 학교폭력으로 전수됐다. ‘최루탄 국회의원’을 비롯한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폭력, 폭언, 망언, 망동, 욕설은 필연적으로 학교폭력을 조장시킨다. 예를 들어 인터넷 팟캐스트 방송인 ‘나꼼수’는 욕설, 폭로, 공격, 비하 등 노이즈 마케팅으로 어린 청소년들의 호기심과 반항심을 교묘히 역이용, 자신들이 추구하는 정치적 방향으로 이끌었다. ‘인터넷 쓰레기’ 같은 역기능을 전파했던 것이다.

넷째, 조상을 잘 만난 재벌 2, 3세들의 골목상권 침범은 사회적 약자를 무시한 채 돈이면 다 된다는 황금만능주의를 심어주었다. 재벌의 탈법도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로 처리되는 사법부의 불공정한 판결에서 국민들은 절망했다. 그야말로 온 국민이 ‘정의란 무엇인가?’에 몰입하게 되었다.

다섯째, 학교 양극화 현상의 심화이다. 부모의 경제력, 정보력 유무에 따라 학생의 미래 인생이 결정되어 지는 사회다. 가장의 능력이 충분하지 못하거나 조손(祖孫) 가정의 경우 학생들은 설 곳이 없다. 막장으로 몰린 나머지 가출, 폭력, 자살사이트를 찾아 헤매는 일탈과 방황은 계속 될 것이다. 약자를 보듬고 껴안아주는 배려심이 부족한 천박한 사회의 단면이 아닐 수 없다.

여섯째, 매스컴의 잘못된 진단도 한몫 했다. 각종 TV토론, 신문특집에서 현장의 절박한 사정을 지나친 채 엉뚱한 진단을 하는 바람에 국민들이 더 혼란스러워졌다. ‘학교폭력 왕따의 문제점은? 과도한 게임중독!’이라는 언론의 부정확한 어젠더 선정이 대표적이다.

일곱째, 남을 괴롭히고 속이더라도 쉽게 벌어서 호의호식하는 미화된 조폭 영화가 청소년들이 가장 열광하는 롤 모델이 되었다. 조폭을 꿈꾸던 10대 짱은 말한다. “TV나 영화 속에 등장하는 멋진 조폭을 꿈꿨는데 실상은 정반대로 거리 판매나 앵벌이를 시키고도 돈 한 푼도 못 받았다”고 후회를 한다.

여덟째, 교육계에 존경 받을 만한 어른이 없다. 서울시 곽노현 전 교육감은 2010년 교육감 선거 당시 상대후보를 매수한 혐의로 항소심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또 학생인권조례 및 시시각각 변하는 대입시정책 등과 관련, 정부가 신뢰기반을 잃고 말았다. 교과부 장관과 일부 시도교육감들이 사사건건 반목하고 갈등하고 불화하는 모습은 학생들에게 좀비들의 허깨비장난으로 비쳐졌다.

아홉째, 전교조 교사들의 종북(從北) 좌경화 이념교육으로 국가정통성과 안보의식 및 애국심 교육이 크게 훼손됐다. 1996년 북한 주민 수백만 명이 굶주림으로 떼죽음을 당하던 때인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절에 김정일이 말한 어록을 전교조 교사가 급훈으로 달아놔서 공안 당국의 조사를 받았다.

열 째, 부모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맞고 들어오는 것보다 때리고 들어오는 게 더 낫다.’ ‘친구도 성적과 아파트 평수에 따라 사귀어라.’ ‘당신이 뭔데 우리 아이에게 이래라저래라 합니까. 참견 마세요.’ 이와 같은 자기본위적인 이기적인 의식이 있는 한, 아이들이 배울 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출세하는 방법만 찾게 될 것이다. 아이는 어른의 뒷모습을 보고 배운다. 그래서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다.’

이와 같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기성세대의 천박한 가치관은 결국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옳고 그름의 판단력을 잃게 하고 동시에 막가파식 인생관을 심어줄 뿐이다. 따라서 잘못된 환경을 개선하려는 우리들의 노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