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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의 허()와 실()

5월 16일 서울 송파구 한국체육대학교 대강당에서 교과부가 마련한 학교폭력 토론회 ‘필통톡(必通 Talk)’ 끝마무리에 경남 김해에서 왔다는 한 여고생(18)이 무대로 올라와 이주호 교과부 장관에게 피맺힌 탄원을 쏟아냈다.

“제 동생이 2년 동안 학교폭력을 당했습니다. 폭행을 당한 4월초부터 지금까지 43일 째 학교를 못 가고 있습니다.”

그녀의 동생은 중학교 3학년(15)으로 한달 여 전 다른 반 반장으로부터 맞아 코뼈가 부러지는 등 중상을 입었다. 여고생은 동생을 지키기 위해서 경남교육청에 편지를 썼고, 청와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글도 올렸다. 그리고 청와대에 민원을 넣기도 했다.

“학교폭력은 친구의 마음에 아픔을 남기는 행위이고, 방관하는 행동도 처벌받는다”고 배웠지만 학교는 “문제를 길게 끄는 것은 피해학생, 가해 학생 그리고 학교에 좋지 않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학교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이하 폭자위)를 열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불러 합의를 시도했지만 가해 학생을 전학 보내거나 징계하지 않았다. 가해자도 “나도 피해자"라며 경찰에 고소했다.

여고생은 이날 토론에서 나온 학교폭력 피해사실을 학생생활기록부에 적는 것은 가혹하다는 의견에 대해서 “제 생각은 다르다. 가해학생의 생활기록부에는 기록이 남겠지만 피해학생의 가슴 속에는 평생 아픔으로 자리한다”면서 울먹였다.

“학교는 오직 자신만을 위해 살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학과 직장에 다니는 학생만 자랑스러워 하는 걸까요. 장관님 부탁 드립니다. 행복한 학교 만들어주세요. 죽어가는 제 동생을 살려주세요.”

간혹 한숨 소리만 들리던 객석에서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서울의 모 초등학교 교사는 “우리 반에 일진이 있다”고 교장에게 보고하자, 교장은 “부모가 가만히 있는데 왜 당신이 먼저 나서느냐”고 나무랐다는 기사를 보면서 “기가 찰 일”이라며 개탄한 적이 있었다. 그 교사는 피해 학부모에게 이와 같은 학교 사정을 알리고 부모가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 그 결과 학생은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다.

이른바 ‘도피 전학’이다. 정부는 피해학생의 ‘전학권고’를 못하게 하고 있으나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이 학교생활을 하면서 불편을 느낀 피해자는 스스로 전학을 결정하는 수가 많다. 하지만 전학을 가려는 학교측은 “왜 피해자가 전학을 오느냐”며 받아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피해자는 이래저래 또 한번의 고통을 겪게 마련이다. 일진에 대한 학교측의 은폐 또는 부인이 계속되는 한, 학교폭력은 뿌리를 뽑지 못할 게 뻔하다.

MB 대통령이 올해 초 청소년상담 ‘위(Wee)센터’에서 학교폭력으로 거의 9년 넘게 고통 받은 한 학생의 사례를 전문상담교사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풀어보면 끔찍하다.

“제가 만났던 아이 중 하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고교 1학년 때까지 거의 9년 넘도록 학교폭력에 시달렸어요. 심지어 화장실에 갇혀서 3시간 동안 못 나온 경험도 있다고 했어요.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경계하듯이 쳐다보고, 사람들을 믿지 못하고 불신하고, 말도 굉장히 방어적으로 하는 그런 특성을 보였어요.”

우리는 또 대통령은 이 학생에게 어떤 조치를 취해주었는가.

최근에 언론에 보도된 미국 사례를 들어본다. 미국 MSMBC방송에 따르면 뉴저지 교육위원회는 시러큐스대에 재학하는 소여 로젠스타인 씨(18)에게 420만 달러(40여억원)의 보상금을 지불하기로 했다. 6년전 뉴저지의 한 중학교에 다니던 로젠스타인 씨는 동료학생의 폭력이 심해지자 학교 생활지도교사와 교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그러나 학교측은 가해학생을 징계하지 않았고 이메일을 보내고 3개월이 지난 뒤 가해학생으로부터 심하게 배를 맞아 혈전이 척추에서 파열돼 19차례나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하반신이 마비됐다.

매년 미국 명문대를 수십 명씩 가는 서울의 한 외고 유학반에서 지능적인 폭력사건이 일어나고 있다는 보도(조선일보 4월 27일자)를 접하게 됐다. 올해 초 이 학교 중간고사에서 학생 12명이 스마트폰을 이용해 단체 채팅을 하며 ‘커닝’을 한 일과 관련,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학부모들이 학교측에 항의를 했다. 부정행위를 저지른 학생들은 이 사실을 학교에 알린 학생 몇몇을 지목해서 괴롭히기 시작했다. 가해학생들은 페이스북에 비밀그룹을 만들어서 지목된 A양을 성적(性的)으로 비하하는 글을 대거 올렸다. 또 지목된 B학생에게는 셔틀버스 안에서 “이 얘기가 내일 또 알려지면 귀를 잘라버리고 입을 찢어버리고…”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또 입에 담지 못할 욕이 가득한 익명의 문자를 계속 받던 학 여학생 C양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다고 했다. 피해사실을 학교에 알렸지만 “그냥 참고 넘기라”라는 말만 들었다. 비슷한 피해를 본 여학생은 전학을 갔다. 결국 학부모, 변호사, 교감 등이 참석한 폭자위가 열리고, 가해학생 12명 중 4명은 ‘3주 내 강제 전학’ 처분이 결정됐다. 가히 ‘외고괴담’ 수준이다.

폭자위는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및 시행령에 따라 모든 초중고교에 설치된 심의기구이다. 피해학생을 보호하고 가해학생을 선도, 징계하며 피해-가해학생 간 분쟁을 조정하는 기능을 한다. 5~10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학교장이 교감, 학부모대표, 교사, 법조인, 관할지역 경찰 등을 위원으로 임명한다.

그러나 위원의 대부분이 전문성을 확보하지 않고 있다면 자칫 잘못된 판단을 내릴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 그리고 가해학생의 전학을 결정했다면, 그 학생을 받아들이는 학교에서 거부한다면 학생은 오고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골치 아픈 혹을 하나 떼어버린다는 것은 응징(膺懲)이고 그 응징은 학생의 내면을 전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한다. 따라서 국가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제도적으로 대안학교를 많이 만들어서 흡수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만 하다.

학교폭력피해자 가족협의회 이재호 본부장의 말에 따르면 어떤 학교에서는 가해학생의 학부모가 폭자위 운영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한다. 또 폭자위를 열지도 않고 허위로 회의록을 꾸며 피해학생에게 거짓 통보를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는 학교폭력 피해응답자 수(251건)와 학교 알리미에 기록된 심의건수(0건)가 확연하게 불일치 하는 경우이다.

교과부는 학생 설문지 회수율이 10% 이하인 전국 1905개 학교에 대해서 재조사를 했지만 학교와 학부모들은 교과부의 학교폭력 실태 발표에 학교현장의 혼란과 낙인(烙印)효과만 남발했다고 불만을 쏟아놓고 있다.

그런 가운데 교과부가 매년 4월 공시하던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심의 결과’를 2012년 11월 이후로 미뤘다. 학교폭력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해서 자료를 보완, 검증해 발표를 하겠다는 설명이다.

교육정보공개법은 2007년 ‘알권리’ ‘투명성’ ‘효율성’ 등을 목표로 제정됐다.

“초중고교 558만 명 가운데 130만 명만 응답했고 ‘고작’ 17만 명만 피해를 당했다고 하는데 모든 학교가 문제 있는 것처럼 비쳐 당혹스럽다”는 일부 교사들의 항의는 아직도 안일한 생각에 젖어있다는 방증이다.

‘깨진 유리창’ 이론이 말해주듯이 학교폭력은 단 1명이 있더라도 해결하지 않으면 점점 커지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 학교는 아닐 거야’ ‘내 아이는 안전할 것이다’라는 무사안일에 빠지면 결코 학교폭력은 해결 난망(難望)일 뿐이다. 학생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선학교 교사들이 보다 애정을 가지고 학교폭력 문제에 더 고민을 해야 하는 시점이다. 그리고 교육당국은 신상필벌(信賞必罰)을 엄정하게 내림으로써 일선 교육 현장의 무질서와 무사안일(無事安逸)을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