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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등과 짱만 기억하는 탐욕의 현장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다.’

‘아이는 어른의 뒷모습을 보고 배운다.’

이 말은 자녀를 양육하는 데 있어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존중되어야 할 교훈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스승의 날인 5월 15일 서울 강남의 한 중학교를 방문해서 “학교폭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한 학생의 질문에 대해서 “학교폭력은 참 이해가 안 가요. 그건 전적으로 성인들의 잘못입니다”라고 일갈하지 않았던가.

‘내 마음의 선생님’이란 주제로 강의하는 자리에서 박 시장은 “모든 아이는 백지(白紙)와 같이 착하디 착하다”면서 “그런데 운동이 특기인 학생들에게까지 공부를 시키고 이를 못하면 열등생 취급하는 게 문제”라고 했다. 박 시장은 이어 “여러분이 교실에서 공부만 할 게 아니라 온 세상에 나가 공부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영국에는 공부 못하는 학생들도 동네마다 있는 록 페스티벌 등에 참여하면서 문화예술 기획자의 꿈을 키우더라”고 소개했다.

“나는 노력을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 내 미래는 어둡다. 마치 바보가 된 것 같다.”중학교 3학년 ○양(14)은 아파트 8층에서 뛰어내렸지만 다행히 화단 나뭇가지에 걸려 겨우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머리와 턱, 다리 등에 골절상을 입고 중태다.

학원을 다니면서 보충 공부를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아 아이들에게 바보취급을 받으면서 대인기피증이 심해졌다고 한다. 유서에는 같은 학교에 다니는 Q양(14)과 인근 학교에 다니는 D양(14)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다른 애들 괴롭히거나 왕따시키지 마라’고 당부했다. 그녀는 또 ‘중학교 1학년 때부터 ○○○ 무리에게 왕따를 당해서 죽고 싶을 만큼 힘 들었지만 부모님 생각이 나 죽을 수 없었다’ ‘학원 남자 아이들은 나만 보면 때리고, 발로 차고, 분필을 잘라 던졌다. 여자아이들도 그런 짓을 했다. ○○○가 가장 나를 힘들게 하고 나를 괴롭혔다’고 증언하고 있다.

아이들은 나를 ‘내숭떤다’ ‘말 안 하는 아이’라고 불렀다. 학교측은 “소심한 성격이어서 3학년 담임교사가 2개월 여 동안 5차례나 상담을 했고, 활발한 친구들과 짝을 만들어주는 등 노력을 했다”면서 “학교폭력 피해 설문조사 등에서 이상 징후가 없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왜 이렇게 점수에 목숨을 거는 상황이 되었을까.

우리 사회에 엄연히 존재하는 계급적 차별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이 계급적 차별의식은 곧 학교폭력과도 연관이 된다. 즉 계급적인 권력을 획득하지 못하면 언제나 남에게 밟히는 구조에서 너도나도 신분상승에 목을 매게 되었다는 것이다.

합법을 내세우면서 시장골목 상권을 지배하려는 대기업들의 횡포는 다수의 분노를 사고 있다. 그래서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제민주화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대통령 후보들 사이에 다소 차이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성난 민심을 반영한 조치로 풀이된다. 그야말로 무한 경쟁에서 이긴 자가 모든 것을 다 차지한다는 승자독식(勝者獨食)의 정글링 지배구조가 판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무한 경쟁 앞에서 남에 대한 아량과 배려, 체면 따위는 모두 사라진 지 오래다. 천박한 자본주의(Paria Kapitalismus)만이 괴물처럼 요동치고 있을 뿐이다.

어떤 이는 이와 같은 계급간 지배구조를 전쟁에서 승리한 병사들에게서 찾는다. 즉 승리에 도취한 나머지 아드레날린이 과다하게 분비돼 최고조의 흥분상태가 된다. 정복자는 이들에게 전리품 명목으로 여성의 유린, 식량의 탈취, 민간인 구타 등을 묵인하는 고도의 용인술(用人術)을 구사한다. 바로 정복지는 유린해도 좋다는 합법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학교현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 대학입시에 매달리는 것은 일종의 권력을 얻고자 함이다. 그래서 소위 SKY대학을 진학하지 못하면 패자로 몰리는 구조가 바로 우리나라 현실이다. 패자는 신분상승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운 게 사실이다.

사이버 공간에서 익명을 빌미 삼아, 악플러들은 지방대를 ‘지잡대’, 즉 ‘지방의 잡스런 대학’이니, ‘듣보잡’, 즉 ‘듣도 보도 못한 대학’으로 폄하하는 것은 바로 우리 사회의 학벌주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나타내는 단적인 예다.

이 악플러는 과연 누구일까. 자신을 루저(loser), 즉 실패자라고 자학하는 자들의 발언일까, 아니면 소위 상위 반열에 오른 자들이 오만과 방자함을 익명(匿名) 속에 감추고 하위그룹을 짓밟으려는 음습한 의도로 퍼뜨리는 것인가.

이런 상황이다 보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기를 써서 SKY에 진입하려는 것이다. 이 길은 곧 출세의 지름길이요, 인생의 성공이며 가문의 영광이 된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반드시 그렇지 않다는 데서 신념의 혼란이 생긴다.

학교에서 획일화된 출세의 길을 배우면서 약자에 대한 배려? 더욱이 동반성장? 사회적 책임? 운운하는 것은 씨도 안 먹힐 소리이다. 인간의 이기주의는 거의 본능에 가깝다.

무한 경쟁 속에서 이와 같은 극단적인 이기주의는 승자독식의 자본주의 3.0이 보여주는 사회상과 똑 닮아있다.

학교폭력은 사회양극화의 부산물과 관계가 있다고 믿는다. 성적지상주의에서 내팽개친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은 오로지 신분의 상승, 자존감의 회복 등에 목을 매게 되고 방향이 삐뚜려지면 일진들이 선망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들 일진은 일찌감치 폭력고리에 얽혀있다는 것 외에 대체로 가정형편이 좋지 못한 상황이었고 따뜻하게 맞아줄 부모, 형제들도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요즘 일진들은 과거처럼 싸움만 잘 하고 교실에서 다른 아이들과 잘 섞이지 않는 ‘비주류’에서 많은 아이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주류문화’로 돌아섰다.

경쟁에서 밀려난 자들은 다른 권력을 만들어서 약자를 괴롭힘으로써 자기존재감과 만족을 느낀다. 그리고 더욱 ‘미운 오리새끼’가 바로 ‘범생이’이면서 일진이 되는, 두 개의 권력을 다 움켜쥔 극단적인 이기주의자들이다. 마치 사회에서 입으로는 진보니 정의를 떠들면서 정작 뒷구멍으로는 호박씨를 까는(실리를 챙기는), 소위 소셜테이너들(유명 소설가, 연예인, 정치지향 교수 등)의 이중인격의 모습과 아주 흡사하다. 입만 열면 반미(反美)적인 언행을 일삼는 진보세력이 그 자녀들은 미국에 유학을 보냈거나 보내지 못해 안달을 하는 모순된 현실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이들 소셜테이너들은 돈 많은 재벌은 밉지만, 자신도 그렇게 재벌이 되고 싶은 잠재적인 욕망을 숨기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면서 입으로는 가난한 민중의 해방을 위해 재벌을 해체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이만 저만한 모순(矛盾)이 아닐 수 없다.

최근에 학교에서 벌어지는 진풍경 중 하나는 일진이 되고자 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성적이 좋은 ‘범생이’나 가정이 부유한 학생, 잘 노는 학생이나 외모가 뛰어난 학생 등 속칭 ‘잘나가는 아이’들도 일진회에 가입해 약한 아이들을 괴롭히는 사례가 그것이다.

공부만 잘하는 ‘범생이’ 입장에서 보면 자칫 일진의 타킷이 될 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에 ‘쎈 척’하면서 자연스레 일진에 가입하게 된다는 방어심리가 작용한 것이다. 따라서 교사가 이와 같은 일진 학생들을 찾아내기가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바늘찾기 보다 더 어렵게 되고 만 것이다.

경기도 한 중학교 3학년 P모군(15)의 부모는 일진에게 돈과 휴대전화를 빼앗겼다고 학교측에 말을 했지만, “가해학생으로 지목된 아이는 성적이 좋고 예의가 바른 모범생이라 그럴 리가 없다”는 답변을 학교측으로부터 받고 절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른바 ‘엄친아 일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겉보기에는 열심히 공부하며 성적이 좋을 뿐 아니라, 외모도 단정하고 예의 바르기 때문에 학교에서 ‘엄친아’(엄마 친구 모범생 아들)로 통하지만 교사와 부모의 눈을 피해서는 전혀 엉뚱한 모습으로 뒤바뀌어 친구들을 폭행하고 갈취하는 일진이 된다는 것이다.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철면피(鐵面皮)일 뿐이다.

서울 한 중학교에서 회장을 맡은 G군(14)도 ‘일짱’으로 군림하고 있다. 그런데 전교 최상위권 성적 때문에 교사들은 G군이 일진중 최고라는 ‘일짱’이라고 전혀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공부와 완력을 모두 장악한 ‘모범생 일진’, ‘우등생 일진’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야말로 ‘일진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라는 말이 얼핏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일진은 공부도 못하고, 품행이 불량하다’는 고정관념을 가진 교사들의 눈에 ‘엄친아 일진’이 쉽게 눈에 띌 리 없을 것이다. 또 안다고 하더라도 학생회장이나 학급회장 등 임원이나 간부를 맡기 때문에 드러내놓고 혼을 내기 어렵다는 게 한 교사의 하소연이다.

‘엄친아 일진’이 장차 커서 무엇이 될 것이며 또 무슨 엉뚱한 짓을 벌이게 될지 자못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천박하고 철면피한 극단 자본주의자가 될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