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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인재 육성법

한국인재는 글로벌 감각이 뛰어나고 시장 변화에 빠르고 까다로운 소비자가 많은 한국 시장에서 단련됐기 때문에 그만큼 경쟁력이 있다고 한다. 글로벌 기업, 특히 IT와 유통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데 한국인들이 글로벌 기업에서 약진하는 이유는 미국 등 해외에서 유학을 하거나 글로벌 경험을 쌓은 인재풀이 풍부해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있다.

미국 이민세관 집행국에 따르면 2011년 미국 교육기관에 등록한 국가별 유학생 규모를 보면, 중국 1위(15만899명), 한국 2위(10만1652명), 인도 3위(9만9180명) 순이다.

비록 땅은 좁지만 세계경제지도상 우리나라는 경제규모 10위 권의 강소국(强小國)이다. 60~80년대 산업화 시대 산업전사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 만들어낸 이 공고한 터전 위에서 자라나는 젊은 청소년들은 어떠한 꿈이라도 못 이룰 것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지난날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이제는 개발도상국에 원조를 하는 나라로 국가적 위상이 높아졌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김용(아이비리그의 전 다트머스대 총장) 세계은행 총재와 같은 걸출한 글로벌 리더들이 배출되는 저력의 국가이다. 따라서 선진국을 눈앞에 둔 민주시민으로서 더불어 같이 살아가야 하는 다문화시대를 맞고 있다. 차후 선진국민으로서의 배려의 심성 개발과 동반의 성장을 추구해야 하는 고품격 자질을 갖춰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 이상 우리끼리의 ‘우물 안의 개구리’로서 글로벌 인재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다르다는 것은 틀린 게 아니다’라는 포용과 개방성, 더불어 가는 이인삼각(二人三脚)의 성숙한 동반자적 배려가 필요한 시점이다.

‘인재혁명’의 저자 조벽 교수가 밝힌 21세기 글로벌 인재 육성법은 참으로 배울 점이 많아 흥미롭다.

그는 미시간 공대에서 20년간 교수로 재직하면서 ‘교수를 가르치는 교수’라는 별명을 얻었을 만큼 교수법의 권위자이다. 그 말하는 글로벌 인재에 필요한 세가지 요소는 ‘창의성’ ‘전문성’ ‘인성’이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성’이다. “인성은 글로벌 시대에 인재가 갖춰야 할 제일의 덕목이다. 인성이 바탕이 돼야 창의성, 전문성을 꽃피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인성(人性)이란 과연 무엇인가.

조벽 교수의 말에 따르면, 인성이란 도덕 혹은 윤리적인 개념이 아니다. 삶에 대한 열정, 모험심, 호기심, 자신감, 가치관 등을 포함하는 보다 포괄적인 의미이다. 조 교수는 그 전형적인 사례로 김용 세계은행 총재를 꼽았다. 경제전문가가 아닌 그가 어떻게 세계은행총재에 올랐는가. 그 이유는 비영리 의료봉사기구를 조직해 활동하면서 세계보건기구와 공동으로 결핵과 에이즈 등 저개발국 질병퇴치를 위해 오랫동안 봉사와 ‘헌신’(獻身)해온 삶이 결정적 근거라는 것이다.

그의 어머니 전옥숙 여사는 미국에서 퇴계(이황 선생) 철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학자로, 아들에게 늘 “나 자신은 누구인가?” “내가 세상에 무엇을 줄 수 있는가” “위대한 것에 도전하라”고 가르쳤다고 했다.

최근 김용 전 다트머스대 총장이 세계은행 총재로 선임된 것과 관련, “김용 등 한국계 미국인들의 눈부신 성공은 ‘인성교육’을 소홀히 하지 않은 한국 부모들의 교육열과 미국의 열린 교육 시스템이 서로 시너지로 만들어낸 작품”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조 교수가 밝히고 있는 흥미로운 자료 하나가 있다.

글로벌 인재들은 단지 IQ가 높은 사람들이 결코 아니다. 하버드대 출신 학생들과 보스턴 빈민가 출신 젊은이들의 삶을 72년간 추적 연구한 결과이다.

“단기적으로는 하버드생들이 훨씬 성공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하버드생 그룹에서도 빈민층 그룹만큼이나 마약중독자, 알코올 중독자 같은 인생 실패자(loser)들이 나온다”면서 “사고력, 판단력, 분석력 같은 인지적(認知的) 능력 이상으로 가치, 태도, 감성을 다루는 정의적(情意的) 능력이 인생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뜻이다.” 그렇다. 지식이 많아서 인지적 능력이 뛰어날 수는 있지만 폭넓은 대인관계 등에서 부족함 때문에 사회적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성적지상주의를 지향하는 우리나라 교육계 종사자나 학부모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내용이다.

캘리포니아 영재 1528명의 삶을 90년 간 추적한 연구도 비슷한 결론을 보여주고 있다. IQ가 145이상 되는 영재집단에서도 다른 집단과 마찬가지로 성공한 사람, 실패한 사람의 분포가 비슷하다.

“IQ지수 위주로 만들어진 대중교육과 두뇌에 누가 더 많이 저장할 수 있느냐를 따지는 교육이 얼마나 잘못 됐는지 보여주는 실험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IQ지능이란 아주 작은 부분, 수치로 따져보면 겨우 5%에 불과하다. 당장 학교에서 공부를 잘 할 수는 있겠지만 훨씬 복잡한 사회로 나와서는 정의(情意)적 영역, 감성(感性)적 영역의 능력이 더 중요해진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에 동의를 하는 필자로서는 학창시절 우등생이 반드시 사회의 우등생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그야말로 ‘학교 공부는 학생의 전부이지만,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라는 것이다. 조금 극단적인 예로 공부는 잘했지만 까칠한 추녀(醜女)와 비록 공부는 못했지만 정겹고 아리따운 미녀(美女)를 두고 남자들의 선택을 요구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겠는가.

또 다른 예를 들면 가수 싸이의 경우 그가 학창시절 모범생이자 우등생이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월드 스타가 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문제아’로서 수많은 방황과 일탈을 겪으면서도 다양한 경험을 했고, 자신만의 꿈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근성(根性)을 실현시켰기 때문이 아닐까. 역설적으로 싸이가 오히려 학교의 틀에 박힌 교육에 충실하지 않은 게 더욱 그를 발전적이고 창의적인 인재로 키워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학생들의 인성 수준은 최하위권에 속한다. PISA에서 수학과 과학은 1, 2위를 다투지만 2009년 IEA의 국제시민의식 교육연구 조사에서는 36개국 중 사회성 35위, 협력성 36위로 바닥을 치고 있다.

조 교수는 글로벌 인재를 키우려면 ‘누가 더 많이 아는가.’ ‘누가 더 똑똑한가’를 가려내는 우리나라 초중고교 과정이 전면 쇄신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꼬집는 현재 한국교육의 문제점은 ‘정답 지상주의’이다. “교과서적인 지식을 토대로 정답 신봉자를 키우는 교육 현실에서 창의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또 교육의 다양성 부재도 문제점으로 나타난다.

‘교육=공부=국영수 사(탐)(탐)’라는 편견이 지배적이어서 공부의 영역을 스포츠, 예술 방면으로 넓혀야 사고의 틀이 넓어진다는 것이다. 지식이 아닌 지혜와 아량, 신뢰가 있는 어른들이 많아져야 가정과 학교에서 인성교육이 자리잡을 수 있다. 실제로 김용 세계은행총재의 경우 풋볼팀에서 쿼터백으로, 농구팀에서 포워드로 맹활약한 스포츠 마니아였다.

“책상머리에 앉아서 개같이 공부하면 정승이 된다? 아니다. 짐승이 될 뿐이다”라는 게 조벽 교수의 주장이다.

학습과 인성은 상반되는 개념이 아니다. 호기심, 모험심, 배려심 등이 있으면 공부도 잘 하게 되고 인성을 갖춘 인재가 될 것이라는 그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변화무쌍한 21세기에는 글로벌 트렌드에 따른 새로운 가치 패러다임(paradigm)의 도입이 필요하다. 2008년 미국 발 경제위기의 여파로 무한 경쟁과 탐욕으로 점철된 자본주의 3.0이 퇴조하고 상생과 동반성장의 자본주의 4.0이 그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처럼, 국가 간 장벽이 허물어진 글로벌시대에서 타인과 공존을 모색해야 하고 이기적인 인간은 도태되게 마련이다. 이른바 공생(共生)의 인간만 살아남는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 시대’가 주요 핵심단어로 떠오르고 있다.

상생과 협력을 통한 동반성장, 도전과 불굴의 의지를 집약시키기 위해서는 기존의 재벌 위주 경제정책의 과감한 수정과 젊은 피의 도전과 실험정신을 실현시키는 특화된 벤처기업의 활성화를 통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대기업의 불공정행위를 집중 단속하고 중소기업의 지원 강화정책을 통해 전문대학과 4년제 대학졸업생들의 임금, 복지, 근무여건에서 그 차이를 점차 줄여나가는 경쟁(競爭, competition)과 협력(協力, cooperation)의 경협(輕俠, copetition) 시스템을 유도해 가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기적인 인간이 사멸하고 공존공생(共存共生)하는 경쟁과 협력의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가 21세기 글로벌 인재상으로 세워지는 날을 기대해본다. 이와 같은 상생의 동반성장 분위기 속에서 학교 양극화 현상도 자연히 치유되고 해결되어 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