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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를 둘러싸고 북한은 물론 중국과 일본, 미국과 러시아는 여전히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우리는 북한과 DMZ-NLL 분쟁 중이고 중국과는 이어도 분쟁, 일본과는 독도 분쟁 등으로 한시도 방심할 틈이 없다. 게다가 부동항(不凍港)을 찾아 남하(南下)정책을 펴온 러시아는 호시탐탐 한반도 진출을 노리고 있다. 동해는 각국 잠수함들의 ‘놀이터’가 된지 꽤 오래됐다. 한반도가 잠재적 화약고(火藥庫)가 되는 이유다.

시진핑 중국 주석은 지난 7월 하순 옌볜 조선족 자치주와 랴오닝성을 방문하던 중 창춘(長春)의 제16집단군을 찾았다. ‘장백산 호랑이부대’로 알려진 이 부대는 6·25전쟁 때 참전한 부대다. 지금은 북한을 담당하고 있다. 이번에 북한의 ‘8·4 DMZ 지뢰 도발’로 남북 간 일촉즉발(一觸卽發)의 대치상황이 벌어졌을 때 중국은 탱크, 장갑차 등을 북한 접경지대에 집중 배치했다. 9월 3일 대대적인 반일(反日)전쟁 승리 70주년 기념식을 앞두고 북한을 단속하려는 처사였지만 여차하면 한반도 분쟁 시 개입할 수도 있다는 무언(無言)의 시위라고 볼 수 있다. 마침 중국은 러시아와 연합군을 형성해 동해에서 중·러 연합훈련을 실시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상륙훈련도 했다.

 

중국 탱크(크기변환)

중국의 탱크는 한반도 분쟁 시 개입할 가능성이 있다. ⓒforest_strider/Shutterstock

 

“원래 가까이 붙어있는 나라가 더 위험한 거야”

중국은 일본과 센카쿠 열도(중국명 다오위다오(釣魚島)를 놓고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다. 러시아는 일본의 홋카이도 서북쪽 쿠릴열도 남쪽 4개 섬의 영유권 문제를 둘러싸고 분쟁중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밀월(蜜月)관계’는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중심축(Pivot to Asia) 이동에 대한 반발과 일본을 ‘공동의 가상적(假想敵)’으로 간주한다는 포석이다.

중국(淸)과 러시아는 조선의 지배권을 놓고 일본과 다툰 청일전쟁(1894~1895년)과 러일전쟁(1904~1905년)에서 각각 일본에게 전패(全敗)했다. 두 나라는 훗날 설욕(雪辱)을 다짐하며 이를 갈았다. 중국의 덩샤오핑(鄧小平)은 1980년대 도광양회(韜光養晦), 즉 행여 칼날의 빛이 새어나갈 새라 칼집에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길렀다. <삼국지연의>에서 유비가 조조의 식객으로 있으면서 자신의 재능을 숨기고 은밀히 힘을 기른 것에 비유한 말이다. 1990년 후진타오(胡錦濤)는 화평굴기(和平崛起)로 이웃과 친목을 다지는 외교를 표방했고 시진핑(習近平)은 노골적으로 대국굴기(大國崛起), 군사굴기(軍事崛起)를 선언했다. ‘신중화주의(新中華主義)’의 표방인데 다량의 최신 자국산 무기를 선보여 세계를 바짝 긴장시킨 것이다.

오늘날 한반도의 지정학적 상황은 구한말 일제와 서구 열강들이 한반도를 놓고 낚시질하던 서글픈 악몽(惡夢)으로 다시 떠오른다. 구한말 주일본 공사관 참사관인 청나라 외교관 황준헌(黃遵憲)은 1880년(고종 17년) 자신을 찾아온 조선 수신사 김홍집(金弘集)에게 <사의조선책략(私擬朝鮮策略)>이란 책을 건넸다. 그는 책에서 ‘러시아의 남하(南下)를 막기 위해 친중국(親中國), 결일본(結日本), 연미국(聯美國)하여 조선의 자강(自强)을 도모할 것’을 주장하였다.

1950년 북한 김일성은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현 러시아)의 스탈린으로부터 탱크, 야포, 비행기 등 중무기를 원조 받아 중국 공산당 마오쩌뚱(毛澤東)에게 보고한 뒤 6월 25일 새벽 4시 38선 일대에서 기습 남침했다. 미군 등 유엔군과 한국군이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반격했지만 11월 25일 ‘항미원조(抗美援朝)’를 내세운 중공군 50여만 명이 꽹과리를 치고 피리를 불면서 꽁꽁 언 압록강을 건너왔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나왔던 아비규환(阿鼻叫喚)의 흥남부두 철수 장면은 바로 중공군의 공세에 동부전선 미 제10군단과 피난민들이 부산으로 해상 철수하는 처참한 모습이다. 당시 중공군은 대한민국의 북진통일을 가로막은 ‘철천지원수(徹天之怨讎)’였다. 미군은 대한민국 방어전에서 3만2933명의 전사자와 10만3284명의 부상자를 냈다. 그때부터 한미동맹을 피를 나눈 ‘혈맹(血盟)’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지정학적으로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운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70년 동안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경제대국 10위 반열에 올랐다. 따라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지경학적(Geo Economical) 환경을 십분 활용해야 한다. ‘안미경중(安美經中,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외에 ‘친미연일(親美聯日)’로 피로써 맺은 혈맹(血盟)인 미국과는 상호방위조약을 더욱 굳건히 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인 일본과는 전략적 협력관계를 다져 나가야 한다.

 

 

중공군 개입과 1.4후퇴. 국방부자료

중공군 개입과 1·4 후퇴. ⓒ국방부 자료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식별해야 한다

사실 중국의 속내는 좀체 알 수가 없다. 여전히 우리를 자신들의 속국(屬國)이나 변방(邊邦)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1961년 북조선과 중공(중국 공산당)이 맺은 조중(朝中)상호방위조약은 여전히 유효하다. 북한이 존망(存亡)의 기로에 처했을 때 중국이 자동 개입하는 연계선으로 이용되는 것이다. 시진핑 주석과 박 대통령이 친하다고는 하지만 ‘통일’과 ‘북핵’이라는 자국의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에까지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다. 아무튼 우리는 앞으로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피아(彼我)를 식별하는 암중모색(暗中摸索)의 치열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일본은 아베 정권의 집단자위권 행사를 놓고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집단자위권은 다른 국가(미국)가 무력 공격을 받을 때 직접적 공격을 받지 않은 제3국(일본)이 협력하여 공동으로 방어를 하는 국제법상 권리다. 예를 들어 한반도 분쟁 시 일본인을 소개(疏開)하는 미군 함정이 북한 잠수함의 어뢰나 미사일 공격으로 격침됐다고 치자. 이때 일본은 미군을 지원할 명분이 생겨 북한을 공격할 수 있다. 이렇다보니 한반도에서 일본 육군의 상륙과 일본군의 전투 개시 상황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일본 황군 공포증(皇軍 恐怖症)을 가진 우리로서는 끔찍한 시나리오다.

‘지구상에서 일본을 우습게 아는 나라는 북한과 대한민국뿐이다.’ 한 외신기자가 한 말이다. 19세기 메이지유신(明治維新)으로 근대화된 일본은 청일전쟁, 러일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이미 100여 년 전부터 제국주의 반열에 들어섰다. 1910년 한일합방,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켰다. 1941년 7월에는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을 내세워 인도차이나를 침공하자 미국은 석유 금수조치 등 경제제재를 가했다. 그러자 일본은 1941년 12월 7일 미국의 태평양함대가 주둔한 하와이 진주만을 선전포고도 없이 기습 공격했다. 일본은 450대의 전투기를 동원했고 항모 6척 등 세계 최대 규모의 해군력을 투입해 미 해군을 타격했다. 미군이 잠시 주춤거리는 사이 필리핀,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으로 진격해 들어갔다. 전장의 군인들을 위로하는 종군 위안부(慰安婦)는 주둔지 각처로 늘어났다.

 

이어도. 국방부자료

이어도 영유권을 놓고 중국, 일본, 우리나라 사이에 분쟁이 일어난다면? ⓒ국방부자료

 

한 사람이 길목을 잘 지키면 1000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

일본은 자본과 원천 기술력으로 치면 항공모함, ICBM(대륙간 탄도 미사일) 나아가 핵무기까지 언제든지 개발할 수 있는 잠재적인 군사대국이다. 현재 자위대의 해군력은 세계 2위다. 대륙에 대한 정벌욕(征伐慾)을 가진 섬나라 일본의 DNA 중 하나는 ‘숭무(崇武)정신’이다. 16세기 전국시대 군웅할거(群雄割據)의 다이묘(大名)들은 칼싸움에 능한 사무라이들로 ‘할복(割腹)’을 ‘무사도의 미학(美學)’으로 여겼다.

1592년 5월 3일 선발대장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와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한성에 무혈입성했을 때 가장 놀란 것은 선조 임금이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일본 전국시대 영주들은 일단 성이 함락되거나 싸움에서 지면 할복하거나 점령군의 노예가 되는 게 상례였다. 조선 국왕을 사로잡아 항복을 받으려던 두 왜장은 북녘 하늘만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왜군의 북진 속도가 빨라지자 선조는 의주에서 압록강을 건너 명나라에 망명(內附)할 뜻을 밝혔다.

이렇듯 강대국 사이에 놓인 우리는 외교와 안보, 경제에서 ‘플러스 섬(Plus Sum)’을 공유하는 초상생(超相生)의 전략을 찾아가야 한다. 작지만 강한 나라 스위스와 이스라엘처럼 강소국(强小國)으로서 살아남으려면 전략적 ‘필살기(必殺技) 베스트5’ 정도는 갖춰야 한다. 예를 들자면 IT 기반 전자전(電子戰)의 최첨단 사이버기술 확보와 ICBM, SLBM 같은 장거리 미사일, 핵(核)잠수함 개발 및 항모 건조에 경우에 따라서는 핵 무장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제주도 상공과 이어도 상공은 이미 중국과 일본의 방공식별구역과 중첩된다. 또 3국이 각각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을 선포한다면 이어도는 모두 포함된다. 만약 이어도 영유권을 놓고 중국, 일본, 우리나라 사이에 분쟁이 일어난다면? 수중 암초인 이어도는 거리 면에서 마라도로부터 149㎞, 중국 퉁타오(童島)에서 247㎞, 일본 도리시마(鳥島)에서 276㎞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우리나라 수출길이자 원유 에너지 수입 길목에 있는 제주 해군기지는 ‘불침항모(不沈航母)’로서 동북아 해양 분쟁의 지렛대 역할을 하는 전략적 요충지다. 그런 해군기지 건설을 결사반대하던 데모꾼은 ‘해적기지’라고 떠들어댔고 건설지연금 273억원은 고스란히 국민 세금으로 물어내게 되었다.

“오호 애재(哀哉)라. 일부당경 족구천부(一夫當逕 足懼千夫)느니라.”
‘한 사람이 길목을 잘 지키면 1000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
이미 400여년 전 왜적을 맞아 싸운 수하 장졸들에게 이순신 장군이 일러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