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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가 만사다

category 칼럼/인생2막 시론(時論) 2016. 8. 22. 18:54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다

  • 천태만상 눈치 열전

살다 보니 제 입맛에 맞는 사람을 찾기가 참으로 힘들다. 필자는 요즘 리더십 포럼 창립 준비를 위해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있다. 국회의원, 사업가, 전 해군참모총장, 교수, 연구자등 뜻을 같이하는 동지(同志)들이다. 막상 만나 보면 여러 군상들의 민낯을 보게 되게 되는데 때론 실망, 때론 동지를 얻는 기쁨이 있다.

밥상을 다 차려놓고 부르면 오겠다는 사람과 일단 한 발은 담가놓고 자기사업에 열중인 동상이몽의 사람, 요거 저거 재고 따지면서 끝없이 저울질을 하는 사람, 강 건너 불구경하듯 먼 데서 힐끔힐끔 곁눈질하는 사람, 먼저 돈이 되는 일인가를 동물적 본능으로 킁킁거리는 사람 등 천

태만상이다.

 

코가 커진 피노키오.

 

사람을 뽑으려다 보니 천태만상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이것저것 재는 사람, 눈치보는 사람, 이익만 생각하는 사람 등 진실된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witty food/Shutterstock

 

그렇다.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이다. 법가의 사상가인 한비자(韓非子)가 일찍이 간파한 대로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다. 인간은 본래 이득을 좋아하고 해로움을 피하려는 호리오해(好利惡害)한 본능을 가진 존재이다. 그러니 자기에게 이로움과 해로움을 따지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게 인지상정이니 말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뛰어난 리더는 사탕과 채찍을 동시에 동원해 인간의 호리오해한 본성을 십분 이용하는 용인술을 발휘했는지 모를 일이다.

 

사람에 울고 사람에 웃고

우리네 인생은 끊임없이 사람을 만나는 과정이다. 어릴 적 동네친구, 학교 동창생, 군대 동기, 직장 선후배, 연애와 결혼 상대자, 그밖에 사회생활의 장삼이사(張三李四) 등 수많은 군상을 만나게 마련이다. 이런 만남을 통해서 희로애락을 느끼는 게 바로 인생인지 모른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사랑하겠다는 맹세는 훗날 후회와 원망으로 바뀌고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파혼을 선언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내 입맛에 맞는 사람 고르기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운 게 사실이다. 개인 간의 만남도 이러하니 나랏일을 맡은 고위직의 등용은 더욱 힘들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니 채 검증도 되지 않은 설익은 인사를 택했다가 결국 나라망신, 패가망신으로 ‘인사(人事)가 망사(亡事)’로 끝나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래서인지 삼성의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은 신입사원 면접장에 우리나라 최고의 점쟁이를 데려다 놓고 인격 심사를 했다는 풍문이 있다.

 

물음표를 들고 있는 면접자들.

 

고 이병철 삼성회장은 인사를 할 때 점쟁이를 데려다 봤다는 풍문이 있다. 그만큼 인사가 어렵다는 뜻일 거다. ⓒaslysun/Shutterstock

‘나중에 배반할 X가 아닌가’를 봐달라는 주문이었다. 이 회장 살아있을 당시 필자도 중앙일보(삼성계열사) 입사시험에서 면접을 봤는데 그 점쟁이의 예리한 눈을 무난히 통과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판 네 가지를 보자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다 보니, 당나라는 관리등용의 기준으로 신언서판(身言書判)을 활용했다. 이 방법은 고려, 조선시대 과거시험에서도 활용되었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의 네 가지는 다음과 같다.

일단 눈에 보이는 몸(身)은 사람의 풍채다. 첫인상이 사람 판단에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요즘 신입사원 면접을 위해 젊은이들의 성형수술은 필수다. 상대방의 속내를 알 수 없는 만큼 겉으로 드러나는 풍채와 분위기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것은 이해한다.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숨어있다. 벼를 고르려다 뉘를 고르는 우(愚)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 눈에 쏙 반해 연애하고 결혼했다가 뒤늦게 “그때는 내 눈에 콩깍지가 쓰여서 저런 사람을 골랐다”면서 땅을 치고 후회해봤자 이미 게임 끝이다. 특히 남녀 관계에서 첫인상에 현혹되는 것은 감성이 왕성하게 작용한 것인데 밤새 화려한 연애편지를 썼다가 다음날 아침에 읽어보면 유치하고 부끄러워서 찢어버리고 마는 그런 심성일 것이다.

둘째 말씀 언(言)이다. 사람은 말하는 품을 보면 대충 그 성격과 인격을 알아볼 수 있다. 말은 그가 살아온 환경과 의식구조를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말이 곧 사람이다.

셋째 글씨, 글의 서(書)다. 공부를 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는 법이다. 사람은 일단 배움을 통해서 인생과 자연 등 세상 이치를 깨닫게 된다. 그런데 제대로 된 배움이 아닐 때는 자칫 배움이 독이 될 수도 있다. 소년등과(少年登科)처럼 약관의 나이에 과거에 합격한 경우, 우쭐한 엘리트 의식에 사로잡혀 세상물정에 어두운 나머지 안하무인의 편견과 고집으로 수많은 해악을 끼칠 수 있다. 대부분 탐관오리가 여기서 나온다.

넷째 헤아려 구분할 판(判)이다. 이는 인간의 도리와 자연과 우주의 음양 이치를 깨닫는 능력, 즉 옳고 그른 판단력을 말한다. 판단력이 흐려졌을 때 그 결과는 참담한 실패로 귀착된다. 요즘 고위공직자 가운데 국민세금 빼먹다가 감옥 가는 패가망신의 장면을 연상하면 된다.

이 네 가지 요소인 신언서판으로 관리를 등용한다고 해도 개 중에는 겉과 속이 다른 위장술의 대가인 표리부동(表裏不同)한 자가 숨어있을 수도 있다. 이 쭉정이의 선택은 장고(長考) 끝에 악수(惡手) 두는 결과이다. 정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는 것일까.

 

면접 줄 밖에 서 있는 남자.

 

인사는 정말 어렵다. 고르고 골라도 쭉정일 수도 있고, 내다 버린 패가 진짜일 수도 있다. ⓒTom Wang/Shutterstock

 

함께하고자 했으면 의심하지 말자

일찍이 공자는 사람을 보는 아홉 가지 지혜를 밝혔다.

1. 먼 곳에 심부름을 시켜 그 충성을 보고
2. 가까이 두고 써서 그 공경을 보며
3. 번거로운 일을 시켜 그 재능을 보고
4. 뜻밖의 질문을 던져 그 지혜를 보며
5. 급한 약속을 하여 그 신용을 보고
6. 재물을 맡겨 그 어짊을 보며
7. 위급한 일을 알리어 그 절개를 보고
8. 술에 취하게 하여 그 절도를 보며
9. 남녀를 섞여 있게 하여 그 이성에 대한 자세를 본다.

 

위의 여러 사항을 한꺼번에 체크할 수 있는 게 여행이라고 필자는 감히 말하고 싶다. 상대방과 여행을 한다는 것은 밤낮 여러 날을 함께 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거의 모든 정보를 다 취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 여행을 통해서 상대의 민낯을 살폈다면 이제 마지막 판단을 할 차례다.

‘의인물용(疑人勿用) 용인물의(用人勿疑)’

즉 의심스러우면 쓰지를 말고, 일단 썼으면 의심하지 않는다. 이 용인술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리더인 박정희 전 대통령, 정주영 전 현대 창업주, 이병철 전 삼성 창업주의 철학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