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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인생에게 경례, 충성!

category 칼럼/인생2막 시론(時論) 2016. 8. 8. 17:24


Y 씨의 아등바등 일터 사수기

‘50세에 이력서 써 가지고 다니면 치매다’라는 말을 들은 게 몇 해 전이다. 그러나 이 말은 뜬금없는 낭설(浪說)이 되고 말았다.

어느덧 6학년 1반, 환갑을 맞은 또래 몇몇이 모여 인생 2막을 열어가는 생존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때 나온 직종이 택시기사, 택배기사, 경비원(아파트, 건물) 등이었다. 가히 3D 업종이라고 할 만한 단순노무직이었다. 그 자리에서 전문직인 한 친구는 투잡으로 동생과 함께 동네의 재활용물건을 모으고 있다는 말에 그만 충격을 받았다. 예전에 전혀 꿈도 꾸지 않았을 요지경 같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어쩌랴, 세월은 흘러 저 먼발치에 있던 일들이 어서 오라 손짓하고 있으니’

금융계 출신 Y는 마눌님의 성화도 있었지만, 하릴없이 집에 갇혀있는 게 힘들어 눈 딱 감고 건물경비직에 도전했다. 24시간 근무 24시간 비번으로 다람쥐 쳇바퀴 도는 반복 업무였다. 게다가 3.3㎡(1평) 크기의 경비초소 안에 의자, 책상, 폐쇄회로(CCTV) 모니터 등이 있어 다리를 쭉 뻗기도 힘들다. 변기까지 설치돼 있다 보니 초소 안은 여름철이면 악취가 진동했다. 그야말로 ‘창살 없는 감옥’이었다. 그래도 이를 앙 물고 한 달만 버티면 평균 130만 원의 돈이 통장에 꽂힌다는 사실에 참고 또 참아야 했다. 무엇보다 24시간 근무하고 나면 생체리듬이 깨져 하루 종일 집에서 잠을 잔다고 해도 어딘가 찌뿌듯한 게 이상했다. 게다가 건물주가 나타나기라도 하는 날에는 진땀 빼기 일쑤다. 근무일지 점검, 청소상태, 지시사항 이행여부 등 검열로 왕짜증이 났지만, 그만 때려치울 수 없는 을의 운명임을 자각하고 “넵, 알겠습니다. 명령대로 수행하겠습니다. 충성!”을 외쳐야 했다.

아파트 경비원의 옆모습.
금융권에서 일했던 Y 씨는 제2의 직업으로 아파트 경비원을 시작했지만 ‘을’도 안 되는 ‘병’의 생활에 지쳐가고 있다. ⓒ1000 Words/Shutterstock

얼마 못하고 나온 Y에게 신용정보회사를 다니는 옛 동료로부터 콜이 왔다. 불법 채권추심, 강제집행, 가압류, 추심명령 등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인데 Y는 경제적 약자를 뒤쫓아 추궁하는 일을 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 중이라고 했다.

아파트 경비로 뛰는 P의 일도 단순노무직으로 비슷하다. 아파트 입주자 대표는 갑, 경비용역회사는 을, 경비원은 병의 지위를 가진다. 1년 단위로 고용계약이 체결된다지만 아파트 입주민들에게 ‘불친절’하거나 근무 중 졸다가 걸리면 ‘불성실’로 낙인찍혀 생면부지가 어렵다.

오전 6시 30분부터 다음날 오전 6시 30분까지 24시간 꼬박 일하고 나면 그 다음날은 비번이다. 순찰과 방범 등 경비 업무 외에도 택배 보관, 청소, 주차 관리, 누수나 전기 불량 등 각종 주민 민원 업무까지 처리해야 한다. 월급을 주는 주민들이 상전이라 그들이 시키는 일은 마다하면 안 되는 게 아파트 경비직이다.

강남의 A아파트는 올해 경비원 휴식시간을 하루 7시간으로 1시간 더 늘렸다. 고생하는 경비원을 위한 배려가 아니라 올해부터 최저임금(시간당 5580원) 100% 적용으로 경비원 월급이 오르게 되니까 입주자대표회의에서 ‘꼼수’를 부린 것이다.

경비원보다 좀 나은 주택관리사 자격증을 따려고 ‘열공’하는 친구도 여럿 있다. 그러나 막상 자격증을 딴다고 해도 40~50대 젊은 층에게 밀려 자리 잡기가 여의치 않다고 했다.

또 택시기사가 되기 위해 영업용 면허를 따려는 친구들도 꽤 있다. 이 또한 일찍이 운수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프로기사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데 세상일 쉬운 게 하나도 없다는 게 참말이다. 이미 개인택시를 몰고 있는 개인사업자인 사장님들은 영업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지만 영업용 ‘초짜’들은 택시회사의 지시감독을 받아야 하는 몸으로 뻣뻣하게 달려들면 잘린다.

 

제2의 인생, 이순신 장군 연구를 위해 한 길 걷다

통계청의 2016년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고령층(55~79세) 인구는 전체 인구의 28.6%인 1239만7000명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고령층 경제활동인구 683만2000명, 그 중 취업자는 666만 명이었다. 백세시대를 맞아 노인취업자는 점차 늘고 있다. 고령층 인구의 근로 희망 사유는 ‘생활비에 보탬’(58.0%), ‘일하는 즐거움’(34.9%) 등이었다. 장래 근로희망자의 일자리 선택기준은 ‘일의 양과 시간대’(26.9%), ‘임금수준’(24.0%), ‘계속근로 가능성’(17.4%) 순이었다.

노인이 경험하는 가장 큰 문제에 대한 그래프.
노인들의 가장 큰 고민은 역시 ‘돈’이다. 노후 자금을 마련해 놓지 못한 대다수의 노인들은 생활비를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김동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진 뒤 “그러면 나는?”이라는 화두가 떠올랐다. 필는 취업을 포기한 지가 꽤 오래됐다. 이력서와 자기소개를 가지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길거리에서 많은 시간을 허비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딱히 취업이라면 대학 강의를 나가는 것일 텐데 여름방학, 겨울방학 다 빼고 나면 일 년에 8개월밖에 일하지 못한다. 그마저도 2년 연속 강의하면 1년을 쉬어야 한다는 학칙에 의거 1년 11개월 29일의 비정규직이다.

두 갈래의 길 앞에 선 남성.
필자는 3D업종이 아닌 새로운 길을 만들었다. 몇년을 연구한 끝에 책도 내고 인정도 받기 시작했다. 노년 자신의 길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Aitormmfoto/Shutterstock

그래서 필자는 새로운 길을 만들었다. 직업을 찾아 나설 것이 아니라 창직을 하자. 평생 글을 써오던 유일한 능력으로 위인이라 불리는 한사람의 일생을 따라 나서기로 했다. 그렇게 이순신 장군 연구에 ‘올인’한 지가 벌써 3년째다. 각종 자료 연구와 탐방 등을 거쳐 수집한 자료와 정보들로  1년 여 각고의 노력 끝에 <환생 이순신, 다시 쓰는 징비록>이란 책도 출간했다. 지금 두 번째 책을 집필하고 있는데 천생 그에 대한 연구와 강의로 연명하게 될 것 같다.

마침 전직 해군참모총장과 몇몇 선배들이 지지와 성원을 보내주었다. 환갑을 넘어 한 우물을 파는 작업에 열중할 수 있음은 다행이다. 그리고 오라는 데는 없어도 가야 할 곳이 많이 생겼다. 전라도와 경상도 남해안의 이순신 장군의 유적지가 바로 그곳이다.

명량해전의 해남군과 진도군, 노량해전의 하동군-남해군, 한산대첩의 통영시와 거제시, 사천시-고성군, 창원시(진해와 마산), 부산시, 김해시, 진주시와 전라좌수영이 있던 진남관의 여수시, 왜성이 있는 순천시, 이순신을 무과(武科)로 인도한 장인 방진의 보성군, 이순신의 백의종군 길과 수군재건 길 등 지자체를 대충 헤아려보니 20여 개 시, 군이나 된다. 또한 아산의 현충사를 빼놓을 수 없다. 탐방은 고행의 연속이지만, 순천터미널 뒤 짱뚱어탕과 통영의 돼지국밥을 생각하면 금방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탐방 길이다.

은퇴 이후, 필자도 주변 친구들처럼 제2의 직업을 찾아 전전긍긍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의외로 돌파구는 내안에 있었다. 자신이 가장 잘 할수 있는 것, 환갑까지 살아오며 내세울 수 있는 장점 하나씩은 분명 있을테니 내 안의 열정을 찾아보자. 직장은 불안하지만 직업은 오롯이 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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