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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노인들의 나라

category 칼럼/인생2막 시론(時論) 2016. 8. 8. 17:19


돈줌마의 기도


아침에 눈을 뜨면 “아, 살아있구나!” 밤에 잠자리에 들 때면 “내일 다시 깨어날 수 있을까?”

70대 여자 노인의 걱정거리다. 그 노인은 돈이 많다. 몇 년 전 외국에서 슬롯머신을 당겼는데 그야말로 돈벼락이 떨어져 일약 ‘갑부’가 되었다. 불로소득 세금 등 이것저것 다 떼고 남은 돈만도 수십억 원에 이른다. 그래서 ‘돈줌마’라는 별명이 붙었다.

돈줌마의 최대 걱정거리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반드시 살아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요일에 교회 가서는 물론이고 아침, 저녁으로 생명을 주신 ‘그분’에 대한 고마움의 기도를 매일 올린다고 했다. 늙지 않는 건강식품이라도 권한다면 당장 붙들 기세다. 그녀의 일과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매일 은행에 가서 ATM기를 확인하는 것이다. 낮은 은행이자가 몇 푼 붙었을 리 없지만, 그래도 확인 또 확인하는 과정에서 남모를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사실 이 대목의 이야기를 들을 때 그리 즐겁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기도하는 노인의 손.
아침에 눈을 뜰 때와 밤에 잠 들 때 살아 있음을 기도하는 돈줌마의 사례는 사실 우리나라 많은 노인들의 기도이기도 하다. ⓒhxdbzxy/Shutterstock

간혹 지인들과 해외여행을 가봐야 ‘몇 푼’밖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아무튼 줄어들지 않는 화수분과 같은 돈을 매일 확인함으로써 비로소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 노인은 혼자서 산다. 그녀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자다가 혹시 영원히 가버리면 남은 돈은 어떻게 될까’이다. 그렇다고 자식들에게 어느 은행 통장 예금에 얼마, 또 어디 부동산에 얼마 투자, 해외에 사는 자녀를 통한 해외 예금통장에는 얼마, 집안 금고에 꽁꽁 숨겨둔 돈은 얼마 등을 자식들에게 공개하고 싶을 때가 있지만 이내 생각을 접고 만단다. 아직까지 양도할 나이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돈줌마’는 길을 가다가도 혹시 누가 따라오지 않을까 걱정하고 아파트 문 앞에 누가 숨어있을지 몰라 CCTV를 설치했고, 외출했다 들어갈 때는 꼭 위, 아래층을 점검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 ‘돈줌마’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것도 홀로 쓸쓸히.

 

홀로 사는 노인들에게 관심을

이처럼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매일반이다. 태어날 때 빈손으로 왔듯이 갈 때도 빈손으로 간다는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는 죽음 앞에 만인의 평등선언이다.

우리시대에 고독사가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홀로 쓸쓸히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가엽고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여전히 고독사로 세상을 떠나는 노인들이 많다. 아니 고령화를 맞아 그 숫자가 점점 늘어가고 있다.

노인 고독사 위험성에 대한 그래픽.
우리나라 노인들의 고독사가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고령화를 맞아 그 숫자가 점점 늘어가고 있다. ⓒ김동철

고독사가 많아지는 것은 1인 노인가구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혼자 사는 노인의 사정은 각양각색이다. 자식과 같이 사는 게 불편해서, 자식들이 모두 해외에 이민 가 있어서, 마음이 안 맞아 황혼 이혼을 했기 때문에 등등이다.

5년마다 실시되는 통계청의 인구총조사 가구부문 통계에 따르면 만 65세 이상 고령자 중 가족 없이 혼자 생활하는 인구는 106만6365명(2010년 기준)으로 나타났다. 인구추계에 따르면 이 수치는 점차 늘어 2023년에 200만 세대를 돌파하고 2032년에 300만 세대 이상에 달할 전망이다.

혼자 밥해 먹고 사는 것도 처음에는 재미있을지 몰라도 삼시 세끼 해 먹어야 하는 ‘숙제’로 다가오면 그것만큼 귀찮은 게 없다. 우리가 하루 세끼 밥을 꼬박꼬박 챙겨먹은 게 얼마 되지 않는다. 송곳 꽂을 땅도 없던 조선시대의 농민들은 식은 보리밥이라도 고봉으로 하루 두 끼 먹으면 행복해 했다.

홀로 사는 노인들에게 몸이라도 아파서 갑자기 쓰러지기라도 한다면 이건 정말 큰일이다. 초고령 사회(65세 인구가 전체의 21% 이상)인 일본에서는 노인이 고독사한 뒤 몇 개월 후에 발견되는 경우가 심심찮게 보도된다. 남의 일이 아니다. 고령사회(65세 인구가 전체의 14% 이상)에 들어선 우리나라에서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다.

혼자 살다보면 외로워서 한 잔, 쓸쓸해서 한 잔, 마누라와 자식 생각나서 한 잔, 돈벼락 맞고 싶어서 한 잔 등 ‘테마 음주’가 일상화되기 십상이다. 몸은 점차 쇠퇴해지고 움직이는 것조차 여의치 않을 때 스스로 죽음을 재촉하는 노인들도 나오게 마련이다. 아무 희망이 없다는 생각은 심한 우울증을 낳고 곧 자살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길을 올라가는 노인의 뒷모습.
우리나라도 곧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한다. 하지만 독거노인들에 대한 대책은 그에 못 따라가고 있다. 독거노인에 대한 보건복지부와 지자체 등의 관심이 더 필요한 때이다. ⓒphotocj/Shutterstock

사랑하는 가족들에 둘러싸여 임종을 맞는 것이 행복이라면, 그런 평범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고독사의 주인공들은 여한(餘恨)을 남겨둔 채 말없이 떠날 뿐이다. 아! 아침 이슬처럼 홀연히 사라져버리고 마는 짧은 인생이여!

60년대 보릿고개 젊을 시절, ‘우리도 잘 살 수 있다’는 신념에 나라 건설에 기여했고 세금도 꼬박꼬박 냈던 노인들에게 정부가 ‘측은지심(惻隱之心)’의 인간복지철학을 베풀어야 마땅하다. 보건복지부와 지자체 등은 요양원 실태조사와 국립 요양원의 신설 및 노인들이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는 공동주택 마련과 복지도우미에도 신경써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시대 ‘도심의 눈과 귀’가 되는 야쿠르트 아줌마들을 활용한, 독거노인 실태파악도 필요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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