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죽음 앞에서의 사색

category 칼럼/인생2막 시론(時論) 2016. 8. 8. 17:15



부음기사로 삶의 의미를 바꾼 노벨

오늘 아침 신문에 필자의 부음이 실렸다. 분명 확인하건대 필자 이름 석 자가 한글로 뚜렷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도 많은 고인들 가운데 가장 앞자리를 차지한 것은 가나다순이어서 일 것이다. 오늘 그 신문을 본 사람 가운데 아마도 필자를 아는 사람이 있다면 “어?”했다가 고인의 유족 이름들을 보면서 “그러면 그렇지. 하하”했을지도 모른다.

아침에 집 화장실에서 본 부고를 오후에 국회 도서관에서 또 다시 발견한다는 것은 그리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하루에 두 번씩이나 부고 란에 쓰인 자신의 이름이 눈앞에 나타났다면 그것은 분명 어떤 사유(事由)의 단초를 제공하기에 충분하다.

부고기사.
우연히 자신과 이름이 같은 이의 부고기사를 두 번이나 본 날,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 ⓒI. Pilon/Shutterstock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 이름이 언젠가 부음기사에 오르게 된다면 이름 석 자 외에 어떤 수식어가 붙을 것인가. ‘전 언론인?’ ‘역사 다큐멘터리 작가?’ ‘이순신 연구가?’ ‘XXX 씨 남편?’ ‘OOO 아버지?’

부음하면 언뜻 떠오는 인물이 있다. 노벨상으로 유명한 스웨덴 출신 알프레도 노벨(1833~1896)이다. 니트로글리세린으로 고체폭탄인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해 세계적인 부호(富豪)가 된 노벨은 1888년 어느 날 파리의 한 클럽에서 자신의 부고(訃告)를 접하게 됐다.

‘죽음의 상인, 노벨 숨지다’로 시작되는 자신의 부음기사가 프랑스 신문에 실린 것이다. 그것은 신문기자가 노벨의 형이 죽은 것을 노벨이 죽은 것으로 착각해서 실은 기사였다. 명백한 오보였다. 그런데 노벨은 자신을 ‘사람을 죽이는 다이너마이트를 개발해서 떼돈을 번 사람’ 으로 기술했다는 데 적잖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는 그 기사가 비록 오보였지만 느낀 바가 있어서였는지 유언장을 작성했다.

노벨은 자신의 전 재산 중 94%인 3100만 크로네(약 440만 달러)를 사회에 기부했고 물리, 화학, 생리의학, 문학, 평화 부문에서 인류발전에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상을 주기로 결정했다. 노벨상이 탄생하게 된 연유다.

알프레드 노벨을 기념하는 우표.
잘 못 실린 부고기사로 삶의 의미를 바꾼 알프레드 노벨. ⓒrook76/Shutterstock

지금도 그렇지만 신문사에서는 유명인사의 부고기사를 미리 써놓는 경우가 왕왕 있다. 필자가 초년 기자일 때만 해도 갑자기 유명인사가 사망했을 때 부음기사를 쓰기 위해 도서실에서 관련 자료와 사진을 찾느라 야단법석을 떨었던 적이 있었다. 예를 들어 김일성이 사망했다고 치자 그의 사망기사는 편집국 한 편에서 밤새 돌아가는 외신 텔레그래프에서 발견된 것인데, 야근 중 졸거나 화장실을 다녀왔을 때 그 기사가 그냥 지나쳐 갔다면 김일성이 사망했다는 특종을 놓치게 마련이다. 특종을 놓쳐 물을 먹은 것은 어쩔 수 없는 ‘불운’이라 하더라도 부음기사는 써야한다.

지금과 같이 인터넷을 뒤져서 이리저리 짜 맞추는 시대가 아니었기에 한 밤중에 부음기사를 쓰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신문사에서는 부별로 유명인사의 부음기사를 미리 만들어놓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결과적으로 노벨은 ‘오보 덕분’에 ‘사람을 죽이는 상인’에서 ‘인류 기술 발달의 기여자’ 또는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탈바꿈했다. 그리고 후세에게 명예로운 이름을 길이 남기고 있다.

 

죽음 앞에서 하는 사색

명예를 중시하는 말로 흔히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가죽을 남긴다고 한다. 호사유피 인사유명(虎死遺皮 人死遺名)이다. 단란한 가족과 한 평생 먹고 사느라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면서 사는 인생도 있고, 가진 것을 더 많이 가지려고 애를 쓰다가 그만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신문지상을 도배하는 시대다. 결국 욕심이 지나쳐 탐욕이 된 것인데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라는 마태복음 25장 29절에서 나온 마태복음 효과에 따라 인간관계는 더욱 피폐해지고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사회가 어느덧 도래했다.

어떤 사람이든 눈을 감는 순간 주위의 평판이 따르게 마련이다. 유명하면 유명할수록 더욱 많은 시선을 받을 것이고 그 평가 또한 다양할 것이다. 만약 우리 개개인이 부음기사의 대상이 된다면 과연 어떤 내용이 담길 것인가.

정말 자신이 자랑스럽고 잘했던 것들이 생각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혹자는 ‘남의 눈에 눈물을 낸 적은 없는가’ ‘남의 눈에 티는 보면서 내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한 경우는 없는가’ 등 괜히 찔리는 생각에 지레 주눅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자, 그렇다면 오늘부터라도 자신의 부음기사를 보다 멋있게 만들기 위해서 먼저 잠시 정좌식심(定座息心), 한 곳에 조용히 앉아서 마음을 정리 정돈해보고 늘 하던 대로 관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변화라도 추구해봄이 어떨까.

버나드 쇼의 묘지석.
버나드 쇼처럼 후회의 묘지명을 남기지 말고, 죽기 전 마음이 끌리는 일을 하자. ⓒ김동철

노벨 문학상을 받은 아일랜드 출신 저널리스트이자 극작가인 버나드 쇼(1856~1950)처럼 자신의 묘비명에 ‘우물쭈물하다가 내 그럴 줄 알았다’는 말을 남기지 말자는 이야기다. 정말 우물쭈물 지체할 시간이 없다. 쇼처럼 일말의 회한(悔恨)을 남기지 않으려면 당장 일어나 마음이 시키는 것을 찾아나서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