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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기는 잘못없다, 화장실 매너

category 칼럼/인생2막 시론(時論) 2016. 8. 29. 17:22

변기는 잘못없다, 화장실 매너

  • 변기 앞에서 고개 숙인 시니어

화장실을 가보면 실버들이 소변보는 데 끙끙거리며 시간을 많이 끈다. 전립선 비대증이나 괄약근의 퇴화로 인한 원활치 못한 배설문제 때문이리라. 그러다 보니 끙끙거리면서 무의식중에 흘러나온 잔뇨들로 바닥은 오물투성이가 되곤 한다. 그렇다고 상대의 노화된 신체 현상을 보고 손가락질할 처지도 못 된다. 괜히 지적했다가 어떤 보복을 당해야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다.

“쨔사. 너도 늙어봐! 흥”

나이든 사람이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지적질’이다. ‘나이가 벼슬이고 계급’이라는 알량한 자존심 하나 가지고 사는데 “감히 새파란 게 어디다 대구 지적질이냐?”는 항변에는 두 손을 번쩍 들어야 한다. 무조건 항복!

화장실 하면 시니어들이 대거 모이는 종로3가 지하철역이 먼저 떠오른다. 환승역이 있어 통행인이 많은 종로3가역 화장실 바닥은 소변이 흥건히 고여 있을 때가 많다. 그 소변은 신발 바닥에 묻어 환승코스나 지하철로 향하는 길에 옮겨질 가능성이 뻔하다. 위생상태가 좋을 리가 없다.

 

파리를 향해 조준~ 발사!

공항공사에 잠시 근무할 때 사장 이하 임원들은 남자 화장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잔뇨를 어떻게 하면 깨끗이 치울 수 있을까를 놓고 숱하게 골머리를 앓았다. 명색이 국제공항으로 외국인들에게 주는 인상을 고려할 때 바닥의 잔뇨 제거 문제는 코리아의 이미지와 맞닿아있기 때문이었다. 안내 캠페인 붙이기, 새로운 변기 도입, 발 디딤 위치판 깔기에 급기야 청소부의 24시간대기까지 별의별 아이디어가 나왔다. 하지만 허사였다. 결국 사람의 생리현상과 습관적 행동을 변화시키기에 역부족이었다. 몇 년이 흐른 뒤 공항 화장실을 이용하게 됐는데 변기 모양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변기 밖으로 튀어나온 소변으로 얼룩져 있었다.

행동심리학자들은 연구를 거듭한 끝에 넛지효과(nudge effect)를 이용하기로 했다. 전에 근사한 호텔 화장실에 가보면 남성 소변기 안에 파리 한 마리가 붙어있는 그림을 볼 수 있다. 소변을 보는 남자들의 조준본능을 이용한 것인데 파리를 향해서 발사하면서 “내 오늘 너를 기어코 맞혀서 떨어뜨리고야 말겠다”는 파이팅 본능! 승리의 욕구를 자극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파리를 조준 격파할 때 위치와 각도 상 소변이 바깥으로 튀는 경우가 적다는 것을 발견했다.

 

남성 화장실 소변기의 파리 그림.

 

남성 소변기 잔뇨물에 대한 고민을 한방에 해결한 소변기의 작은 파리. 남성들의 조준 본능을 일으킨 이런 디자인 아이디어를 넛지효과라고 부른다. ⓒ김동철

 

넛지(nudge)는 ‘옆구리를 슬쩍 찌른다는 뜻’인데,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강요나 억압을 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내기 때문에 부드러운 방법으로 행동의 변화를 유도하려는 고차원적 설계 아이디어다.

‘아직도 오줌을 못 가리면 당신은 오줌싸개!’ ‘오줌을 바깥으로 튕기면 붕~신’ 등 직설적이고 인격 모욕적인 이 같은 표어를 본다면 이용자들은 화가 머리끝까지 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사람 약 올린다고 생각한 이용자들은 억하심정으로 오히려 ‘엿 먹으라!’면서 엇박자를 낼 수도 있을 것이다.

 

작은 불씨 그림이 그려진 소변기.

 

파리 그림 말고 작은 불씨 그림 등으로 조준점을 만든 소변기도 있다. ⓒ김동철

 

사람의 심리는 하지 말라고 강요하면 호기심이 더 생기고 더 하고 싶은 반항심리가 작용하기도 한다. 어떤 여자는 대학교 때 부모님이 “여자가 무슨 담배냐? 당장 끊으라!”는 엄명에 오히려 반항심이 생겨 줄담배를 피웠다는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그래서 넛지는 “한 방에 파리를 잡아보세요”라며 부드럽게 남자들의 사냥본능, 게임본능을 자극하고 있다. 여기에 펀(fun) 개념까지 포함된 고도의 전략이다.

 

강요보다는 부드러운 권유

이 넛지효과 이야기가 퍼져나가자 한 벤처회사에서는 IT 강국답게 또 다른 아이디어를 창안해 냈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지만, 2012년 영동고속도로 하행선 덕평휴게소에는 비디오 게임 모니터가 변기 위에 붙은 신상품을 선보였다. 이용객 자신의 캐릭터와 가상 캐릭터가 서로 맞붙어 쓰러뜨리는 방식인데, 소변량이 많고 발사 속도가 빠를 때 게임에서 이길 확률이 높다. 게임이 끝나면 승패가 표시되고 소변 유량과 유속이 수치로 나타난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친구들끼리 ‘내기 발사’를 했다. 하지만 실버들에게는 그림의 떡이 될 공산이 크다.

 

게임기를 단 소변기.

 

게임을 통해 남성들의 소변 습관을 바꾼 소변기도 있다. 소변기와의 게임은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예산 문제는 간과할 수 없어 널리 이용되지는 못 했다. ⓒ김동철

 

또 덕평 휴게소 상행선에는 소변기 조준점에 검은색 물고기를 그려놓았는데 여기에 발사된 소변이 닿으면 형형색색의 열대어로 변했다. 온도에 따라 색깔이 변하는 열 감지 필름을 장착한 것이다. 볼일이 끝나 세척물이 흐르면 형형색색 물고기는 다시 검게 변한다. 그런데 이 장치는 돈이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다. 그리고 조준점에 맞히지 못하는 실버들에게는 무용지물이다.

이 넛지효과는 매사 긍정적이고 순한 사람들에게는 그 효과가 먹히지만, 그렇지 않고 삐딱한 사고방식의 청개구리 같은 사람들한테는 별 무효과일 가능성이 높다. 공공의 질서와 매너를 생각한다면 당연히 넛지를 따라야 하는 게 모두에게 편한 일이다.

칭찬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처럼 부드러운 권유가 오히려 효과를 볼 때가 있다. 중고교 때 1박 2일 수학여행을 가면 모두들 해방감에 자유분방한 일탈(담배 한 모금, 막걸리 한 모금 등)을 꿈꾸기도 한다. 현명한 담임은 꾀를 내어 반에서 가장 말썽을 피울 가능성이 높은 학생을 방장으로 임명한다. 방장이란 완장을 찬 학생은 밤잠을 설치면서까지 ‘떠든 사람 이름 적기’에 정신이 팔린다. 동시에 그가 애초에 가졌던 일탈 계획은 무산되고 만다. 그는 자신의 욕구를 억누른 결과, 담임으로부터 칭찬과 인정이라는 보상을 받게 된다. 그래서 칭찬에 점차 익숙하게 된다.

 

넛지효과를 나타낸 그림.

 

강요보다는 부드러운 권유와 재치있는 회유가 더 효과적일 때가 있다. 화 내지 말고 옆구리를 살짝 찔러주시길! ⓒHo Yeow Hui/Shutterstock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는 남자 화장실의 구호는 모처럼 아름다워지고 싶은 남성들을 위한 부드러운 회유책이지만 그런대로 쓸 만하다.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닙니다’라는 구호도 “알았어. 나 오늘 안 흘릴게. 끙끙”을 유도하는 넛지효과의 백미(白眉)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넛지니 뭐니 하는 것도 완벽한 방어책은 아닌 것 같다. 언젠가 지하철 화장실에서 본 기억 하나. 한 남자가 여성처럼 휴지를 손에 쥐고 일을 본 뒤에 깔끔하게 처리했다. 맞다. 그것이 바로 가장 확실한 방책이 아닌가 생각한다. 노인용 기저귀도 나오는 판에 남세스러울 일 하나도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