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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감성의 계절, 가을 단상(斷想)

category 칼럼/인생2막 시론(時論) 2016. 9. 11. 15:22

따뜻한 감성의 계절, 가을 단상(斷想)

시가 저절로 읊조려지는 가을 

가을은 탈바꿈의 계절이다. 여름 내내 더위에 시달리던 소와 말의 넓적다리가 나날이 튼실해져 가는 때이다. 파아란 가을하늘도 가없이 높은 때다. 가을은 이육사(李陸史)의 청포도가 수밀도(水蜜桃)처럼 무럭무럭 익어가는 때다. 귀뚜리와 코스모스가 제 철을 만난 때이며 조락(凋落)의 단풍든 낙엽이 한 웅큼씩 떨어지는 때이다.

 

가을 단풍 풍경.

 

여름 내 시달리던 더위가 저물어가고 단풍이 한 웅큼씩 떨어지는 가을이 왔다. ⓒKichigin/shutterstock

가을은 잉태의 계절이다. 뿌리로 돌아간 낙엽은 혹독한 인동(忍冬)을 품고 비로소 새 봄의 잉태를 꿈꾸는 새악시처럼 붉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을은 오늘과 같은 별의 계절이다.

 

윤동주 시인 기념관.

 

가을이면 생각나는 시 ‘별 헤는 밤’을 읊조리면 젊은 나이에 저문 윤동주 시인이 생각난다. ⓒ김동철

그래서 시인 윤동주(1917~1945)의 별 헤는 밤이 생각나고 잘 읽혀지는 계절이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든 아이들의 이름과 패,,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란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 우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우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가을은 삼라만상(森羅萬象)이 풍경(風磬)처럼 은은히 울려 퍼지는 계절이다. 이 세상 모든 소리를 응시하는 관음(觀音)의 지긋한 미소의 계절이다. 가을은 또 상심한 가슴에 그리움을 더해주는 잔혹(殘酷)의 계절이기도 하다. 이 대목에서 정호승 시인의 ‘풍경달다’는 그리운 내 님 목소리마냥 가슴을 후벼 판다. 가을은 그런 계절이다.

 

풍경.

 

가을이면 정호승 시인의 ‘풍경달다’라는 시가 마음을 울린다. ⓒ김동철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

먼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소리 들리면

보고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

 

여덟 줄. 그 속에 우리네 슬픔, 사랑, 희망이 마구 뒤섞여 돌고 돈다. 시인은 중생의 슬픔을 건져내 사랑으로 빚고 희망으로 승화시킨다. 언어 치유의 마술 단계다. 가수 안치환이 곡을 붙인 노래는 애잔함이 더 하여 어느덧 명상음악이 된다. 느릿한 저음의 피아노 선율, 그 막간을 파고든 해금의 절규! 그리고 혼을 부르는 초혼(招魂)의 풍경소리가 어쩜 이 시대 위로 받고픈 많은 사람들 가슴속에 깊이 파고든다. 이 모든 것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을이 주는 특급선물, 특혜다.

김동철(전 중앙일보 기획위원) 모든기사보기

이순신 리더십 포럼 대표, 교육학 박사, 시사·문화평론가, 전 중앙일보·월간중앙 기획위원, 명지대·성결대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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