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소통의 기술’
가족, 일가친척들이 한데 모이는 명절은 으레 의사소통의 시험장이 되곤 한다. 서로 자주 만나지 못한 관계로 호칭이나 촌수가 헷갈리는 경우가 그 첫 번째다. 그리고 어른과 아이, 그 사이에 낀 세대 등 3~4세대들이 서로 대화가 원활하지 못해 가족의 대화는 수박 겉핥듯 안부만 묻고 끝나는 수가 많다. 서먹한 가운데 모두들 TV만 쳐다보다가도 각자 취향이 달라서 그마저도 시큰둥할 때가 있다.
가장 마음이 잘 통한다는 가족단위 소규모 집단에서도 소통과 불통의 생생한 일면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세상에서 사람관계가 제일 힘들다’고 했던가. 가족, 일가친척들이 모이다 보면 단골 대화 메뉴가 있다. 취업, 결혼, 군입대, 대학입학, 건강, 집장만 등인데 사촌지간 또래 끼리 대화를 나누면서 비교대상이 돼 상처를 받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귀갓길에 “다시는 명절 때 안 간다”는 볼멘소리도 들린다.
부모와 자녀의 소통과 불통
청소년 상담심리를 공부한 필자는 문득 부모와 청소년의 대화가 전혀 다르다는 기억을 떠올린다. ‘부모가 쓰는 뜻’과 ‘청소년 자녀가 듣는 뜻’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자료에 따르면 부모는 당연히 ‘엄마, 아빠’이지만 청소년이 생각하는 부모는 ‘밉고 이해가 안 되는 답답한 양반들’이다. 교사는 당연히 지식과 인성을 전달하는 사람이지만 청소년들은 ‘때론 존재이유를 모르는 X맨’이다.
청소년에게 대화는 ‘하고 싶었고 하지 못했고 이젠 쓸모없어진 그 무엇’이며 비교는 ‘부모가 내 기(氣)를 꺾고 싶을 때 쓰는 방법’이다. 자신감은 ‘어른들이 자꾸 가지라고 하지만 끝내 존재하지 않는 느낌’이고 성(性)은 ‘부모에게 들키면 쪽 팔리는 짓’이라고 했다.
‘역지사지’ 부모역할 훈련 필요
미국 심리학자 토머스 고든은 그의 저서 ‘부모역할 훈련(Parent Effectiveness Training)’에서 부모들이 자녀에게 흔히 범하는 잘못된 의사소통 방법 12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1. 명령과 강요 : ‘엄마한테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불평 좀 그만 해!’
2. 경고와 주의, 위협 : ‘한 번만 더 그런 식으로 말하면 방에서 내보낼 거야!’
3. 훈계와 설교 :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이렇게 해야지….’
4. 충고, 해결책 제시 : ‘다른 친구를 사귀면 되잖아.’, ‘선생님과 의논해 보지 그러니?’
5. 논리적으로 따지기 : ‘어릴 때에는 서로 사이좋게 지내는 방법을 배워야 한단다.’
6. 비평과 비난 : ‘네 말에는 절대로 동의 못 하겠다.’
7. 칭찬과 동의 : ‘넌 충분히 더 잘 할 수 있어.’, ‘네 말이 맞다.’
8. 조소와 모욕 : ‘알았다, 철부지야.’, ‘버릇없는 녀석 같으니라구.’
9. 해석과 진단 : ‘엄마를 속상하게 하려고 그런 말을 하는 거지?’
10. 격려, 달래기 : ‘넌 머리가 좋으니까 성적이 오를 거야.’
11. 탐문과 질문 : ‘왜 학교가 싫어졌는데?’
12. 화제 바꾸기와 비위 맞추기 : ‘잊어 버려.’, ‘이거 말고 재밌는 얘기 좀 하자.’
언뜻 보기에는 아주 훌륭한 부모역할일 것 같은데 고든 씨는 왜? 자녀에게 ‘범하는’ 잘못된 의사소통방법이라고 정의했을까. 그런데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10번 격려와 달래기에서 ‘넌 머리가 좋으니까 성적이 오를 거야.’라고 자녀에게 말했다고 치자.
그 말을 듣는 자녀가 혹시 장래 희망이 운동선수였다면 “엄마는 맨날 공부만 하래. 난 공부가 죽기보다 싫단 말이야.”라고 내심 대꾸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성적이 나쁘게 나왔을 때 난 머리가 나쁜가봐.’라는 자책과 우울감에 빠져들 수도 있을 것이다.
고든 씨의 말은 자녀는 소유물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에게 자존감을 심어줌으로써 독립의지를 일깨워주라는 뜻 같다. 또 자녀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서 입장을 바꿔 생각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를 가르쳐주려는 것 같다.
건강한 소통을 위한 세대 간의 금기어
‘사춘기는 자식이 부모를 일시 해고했다가 성인이 된 뒤에 인생 자문역으로 재고용하는 단계’라는 말이 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지만, 부모라는 직업은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역할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이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아이고 팔, 다리, 어깨, 허리야!’라는 건강상태로, 어린 아이들은 웃거나 울음, 아줌마들은 수다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그 사이에 낀 세대는 양쪽 비위를 맞추느라 이래저래 몸과 마음고생으로 피곤하다.
가족은 물론 사회나 직장, 또 친구를 만나서 하지 말아야할 금기(禁忌) 단어가 있다. 정치, 종교, 이념, 그리고 자녀 이야기이다. 이 네 가지는 휘발성이 강하기 때문에 자칫 조그만 불씨라도 튀기만 하면 이내 폭발하고 만다. 개인의 자유로운 양심 또는 신념이 결부된 것이니만큼 나와 생각이 다른 상대를 적(敵)으로 모는 사나운 환경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상대를 굴복시켜야 하는 전쟁 상황까지 치닫다가 친구, 형제지간의 금도(襟度)를 넘어서 결국 절연(絶緣)까지 가는 경우를 많이 봤다. 가족, 친지라고 해서 나와 생각이 같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야말로 획일적인 공산독재체제다.
소통의 기술은 공감과 이해
필자는 모 대학 교양학부에서 ‘리더십과 커뮤니케이션 기법’을 강의하고 있다. 그런데 원활한 소통이 정말 어렵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교재를 선택하는 것부터 고민거리였다. 교보문고에 가보면 국내외 전문가들이 쓴 리더십 책과 커뮤니케이션 책이 수두룩하다. 이것을 볼 때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그토록 리더십과 커뮤니케이션에 목을 매는 것일까’를 한두 번 생각해본 게 아니다. 또한 외국인들이 쓴 책들은 그들 나라의 처한 환경에 맞게 설계된 것이어서 우리네 사정과는 사뭇 다르다는 점이 발견된다.
어려서부터 토론 학습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우리 젊은이들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는데 조금 서툰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한두 명의 학생을 강단으로 불러서 책을 읽히고 키워드를 찾아서 요약정리를 해보라고 시킨다. 하지만 성에 차지 않는다.
제대로 된 토론을 하려면 한가지 주제로 편을 갈라 자유로운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의 장을 깔아줘야 하지만 정해진 수업진행상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다보니 결국 원맨쇼의 강의로 끝나기 일쑤다. 이 점이 필자에게는 좀 껄끄럽다. 소통을 가르친답시고 소통의 진정한 맛을 보지 못하는 이 허전함이여! 소통을 잘하는 방법에 정답이 있겠는가. 마음과 귀를 열고 서로의 필요를 진심으로 이해하는 노력, 그것이야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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