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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의 추억, 담배 유감

category 칼럼/인생2막 시론(時論) 2016. 10. 8. 16:43

담배의 추억, 담배 유감

  • 알랭 드롱과 화랑담배

‘미련~ 없이~ 내뿜는~ 담배연기 속에~ 아련히~ 떠오르는~ 그 여인의~ 얼굴을~’

서울법대 출신 가수, ‘찐빵’ 최희준이 그 특유의 느릿한 저음으로 이 노래를 부르면 어느새 사람들의 손에 담배가 들려있었다. 70년대 어두컴컴한 영화관에서 알랭 드롱 주연의 <태양은 가득히> <태양은 외로워>를 보노라면 언니들은 알랭 드롱이 담배 한 모금을 허공에 푸욱 내뿜는 장면에서 숨죽이며 “오빠!”를 불러댔다. 코발트빛 지중해 해변에서 우수어린 푸른 눈동자 사나이가 고독을 담아 내뿜는 담배연기에 언니들은 끙끙, 잠을 못 이루었다. 그는 담배 하나로 지구상의 여자들을 홀린 ‘세기의 카사노바’였다.

 

알랭 드롱 우표.

 

담배 하나로 전 세계 여성의 마음을 홀린 사람이 있다. 바로 알랭 드롱이다. ⓒSergey Goryachev/Shutterstock

 

 

당시 20대 사내들 가운데 알랭 드롱의 멋진 폼 때문에 담배를 배운 사람들이 꽤 많을 것이다. 논산훈련소에서 매시간 훈련을 마치면 으레 “담배 한발 장전!’으로 쓰디쓴 화랑담배를 피웠다.

‘한 개피 담배도~ 나누어 피우고~ 기쁜 일 고된 일~ 다 함께 겪는~ 우리는 전우애로 굳게 뭉쳐진~’

군가에도 담배가 들어 있었다. 매일 한 갑씩 지급되는 화랑담배는 애인을 대신하는 애연초(愛煙草)로 군인들에게 듬뿍 사랑을 받았다.

 

구박받는 애연가들

그 담배와 질긴 인연이 꽤나 긴 세월을 함께 했다. 세월이 흘러 작금 담배 피우는 사람은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을 받기 일쑤다. 길거리에서 엄마 손을 잡은 5살짜리 어린애가 “엄마 저 아찌 같이 담배 피우면 나쁜 사람이지?”라고 물으면 담배 피우는 사람은 얼른 도망치든지 아니면 당장 담배를 손으로 비벼 꺼야 한다.

 “그럼 담배피우면 나쁜 사람이야”라는 엄마의 답을 듣고 애연가가 엄마를 가격(加擊)한 사건도 벌어졌다.

 

담배 피우는 남편과 말리는 부인.

 

최근 애연가들은 공공연한 적이 되었다.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벌금을 물기 일쑤이다. ⓒwong sze yuen/Shutterstock

 

서울 시내는 물론이고 대한민국 어딜 가나 담배피우는 사람은 사람 대접받기 힘들어졌다. 아니 범법자 취급을 받는다. 비싼 담뱃값 내고 피우는 애연가들의 설 자리가 비좁아졌다는 이야기다. 서울 강남 서초구 등지에서 담배를 잘못 물었다가는 어느새 금연단속반이 나타나 “10만 원 벌금! 사인하세요”라는 불시검문에 시달린다.

보건복지부는 국민건강을 위해서 당장 금연하라는 캠페인을 수억 원을 들여 TV에 광고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담뱃값을 2500원에서 4500원으로 올렸지만 금연효과는 별무효과, 애연가들에게 부과되는 증세로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담배반출량이 17억 9000만 갑으로 지난 동기 13억 1000만 갑보다 4억 8000만 갑이 늘어났다. 이에 따라 올해 상반기 담배제세 부담금은 약 5조 9347억 원으로 지난해 상반기 4조 3688억 원보다 1조 5659억 원 더 걷혔다. 이 대목에서 애연가는 5000만의 호구(虎口)다.

부족한 세수를 담뱃값 인상으로 벌충해서 걷는다는 것은 부자 증세나 재벌 등 기업 증세는 안 하겠다는 것으로 선거공약인 경제민주화 약속과는 동떨어진 처사다. 65세 이상 저소득층에게 알량한 기초연금 20만 원을 주고 나서 담뱃값 인상으로 거둬가는 작태가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다. 이 ‘아더메치(아니꼽고 더럽고 메스껍고 치사한)’의 정부 방침을 알면 당장 담배를 끊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부조리하고 불공평한 사실을 말하면서 열 받아 한 대, 기분 나빠 한 대가 계속된다.

 

외국계 담배회사의 꼼수

최근 언론보도를 보면 더 기가 막힌다. 필립모리스와 BAT코리아 등 외국계 담배 회사 두 곳이 작년 1월 1일 담뱃값 인상 직전 평소보다 수십 배 많은 재고를 쌓아 놓고 값이 오른 뒤 팔아 거액 세금을 탈루한 사실이 감사원에 적발됐다. 담뱃세는 제조장에서 유통망으로 담배를 ‘반출’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긴다. 두 회사는 제조장에서 트럭으로 담배를 실어 조금 떨어진 창고에 쌓아두고는 마치 판매에 들어가는 것처럼 신고해 세금을 줄였다고 한다. 일부는 서류상으로만 반출한 것처럼 꾸미기도 했다. 외국계 담배회사가 이렇게 탈루한 세금이 1691억 원과 392억 원이다.

두 회사를 포함해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담배 회사 3곳이 지난해 올린 매출이 1조 3000억 원대다. 이 회사들이 지난 10년간 본사로 송금한 배당금과 로열티가 1조 7000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렇게 수익을 올리고도 ‘차떼기’로 사재기해 세금을 빼먹었다는 것이다.

2011년 일본의 ‘독도 망언’이 있었을 때 ‘일본 담배는 안 판다’는 안내문이 동네 구멍가게에 내걸렸다. 그 일로 일본 담배 제조 유통사인 JTI코리아는 2014년 구조조정을 해야 했다. 외국계 담배 회사들이 계속 꼼수를 부리다가 언제 큰 코 다칠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 이 담배 습관은 고래심줄마냥 참으로 질기고 질긴 것이다. 청와대 근무하는 사람은 일단 몸과 마음이 튼튼해야 한다. 새벽 출근, 퇴근 시간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제대로 풀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닌 모양이다. 북핵, 대남도발, 서울 불바다 등 북한이 대대적인 선전공세를 퍼부으면 안보, 국방 관계자들 가운데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바깥으로 슬그머니 나와서 북악산을 보고 담배 한 대 뿜으로써 피로를 푼다고 한다.

또 첨예한 여야 대립과 정쟁이 그치지 않는 국회에서 담배를 피우는 의원들이 있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이다. 국정감사로 서류를 준비하거나 예산을 따내려는 정부와 공기업의 간부들 또한 스트레스가 최고조에 달해 틈틈이 담배 한 개비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담뱃값 인상으로 여전히 사회적 약자의 호주머니를 노리고 있다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벌써 30년 전 흡연이 관대한 나라인 프랑스와 일본에서는 길거리에서 여성이 담배를 물고 있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프랑스의 경우 담배꽁초는 길거리 아무데나 버려도 됐다. 파리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담배꽁초를 들고 안절부절 못하던 필자는 지나가던 한 프랑스인으로부터 “청소부가 할 일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답변을 들었다. 정말 새벽청소로 몽마르트르 언덕과 호텔 주변이 너무나 깨끗해졌다. 낮에는 버리고 새벽에는 청소하는 시스템이었다.

 

금연 표지판.

 

우리나라에서 담배를 피우면 호구가 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작은 자유라도 주면 어떨까? ⓒfullmoonnarak/Shutterstock

 

그런데 몇년전 도쿄 중심가를 찾았을 때 길거리 흡연은 거의 사라졌다. 대신에 그 복잡한 광장 한편에 커다란 흡연 장소가 생겨 남녀노소가 한데 모여서 피우고 흩어지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일본은 카페나 술집에는 으레 재떨이가 준비되어 있고 누구나 자유롭게 담배를 피울 수 있다. 도쿄의 리틀 코리아타운인 신오쿠보 역 주변 한국식 삼겹살집이 손님으로 미어터지는데 그 비결 중 하나가 자유롭게 흡연을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애연가에게 조그마한 자유라도

여전히 우리나라 흡연자는 비싼 담뱃값을 내고 사람대접 못받는 처량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뭘 고민해? 능력 없으면 당장 끊어!”가 답이다.

이 말은 담배가 안 맞는 체질, 몸이 안 따라주는 건강약화, 담배냄새만 맡으면 과민한 반응을 나타내는 병적인 사람들에게는 먹힐지 모르지만, 담배 한 대가 아직도 ‘꿀맛’ 같은 애연가들에게는 소귀에 경읽기다.

“냅둬유! 지 인생 지가 알아서 할테닝께~” “언제 담뱃값 보태쥐었남유?”

남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면 그 소수 애연가들의 취향관리 생존 방편도 마련해주어야 한다. 담배는 고추와 함께 임진왜란 후 일본과 문물교류에서 들어왔다. 담배 인심이 유난히 좋았던 시절, 모르는 사람과 만나도 담배 한 대 권하면 금방 말문을 틀 수 있었다. 이것을 대객초인사(對客初人事)라고 한다. 이 ‘담배 인사’ 또한 호랭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김동철(전 중앙일보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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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인성리더십 포럼 대표, '환생 이순신, 다시 쓰는 징비록' 저자. 교육학 박사, 시사·문화평론가, 전 중앙일보·월간중앙 기획위원,

명지대·성결대 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