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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이 보약이다

category 칼럼/인생2막 시론(時論) 2016. 7. 13. 07:27

부장 한 명은 신입 다섯 명

‘현재의 정규직은 미래의 비정규직이다’ 아니 ‘화백(華白, 화려한 백수)’이 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샐러리맨의 경우 40대 후반이 되면 슬슬 퇴직 걱정을 하게 마련이다. 집 장만, 자녀들의 사교육비로 지출은 기하급수로 늘어가고 가장(家長)의 허리는 휘청거리는 때다.

매월 통장에 월급이 또박또박 꽂히는 것은 샐러리맨이 맛볼 수 있는 최대의 달콤한 혜택이다. 하지만 그 벌통의 꿀이 화수분처럼 영원히 쏟아지지 않는다는 건 이미 아는 사실이다. ‘신의 직장’ 삼성전자의 평균 퇴직 연령이 40대 초반이라는 사실은 매우 놀랍다.

삼성전자의 한 사원은 “정년까지 다닌 사람을 보지 못했을 뿐더러 나이 많은 사람도 찾아보기 힘들다”면서 “나이 든 부장 한명을 ‘-5명’으로 여기는 시각이 있다”라고 실토한다. 즉 고액연봉자 한 명의 퇴직으로 싱싱한 신입사원 5명을 쓸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것은 기업이 조금만 어려워도 꺼내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와 같은 것이다.

 

머리를 감싼 사람.

부장 한 명의 퇴직으로 싱싱한 신입사원 다섯 명을 쓸 수 있는 세상이다. 현역의 자리가 위태롭다. ⓒd13/Shutterstock

 

결국 샐러리맨은 한시적으로 자신의 노동력을 팔고 급여를 받는 ‘머슴’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자영업 세계는 파라다이스인가. 대개 퇴직자들은 딱히 배운 기술이 없다 보니 가장 손쉽게 차릴 수 있는 프라이드 치킨집을 차린다. 프랜차이즈회사는 몇 년 되지 않아 멀쩡한 인테리어를 다시 바꾸라고 한다. 물론 프랜차이즈 회사가 지정하는 업체를 통해서다. 장사가 잘 되느냐 하는 것은 별개다.

 

MBC 뉴스의 한 장면.

기술이 없는 퇴직자들은 가장 손쉽게 차릴 수 있는 프라이드 치킨집을 선호한다. ⓒ김동철

 

치킨집폐업률 그래프.

퇴직자들이 차린 치킨집 중 50% 가까이는 3년 이내 폐업을 한다. ⓒ김동철

 

“수많은 중장년 은퇴자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자영업에 내몰리게만 놔둘 수 있겠어요? 우리나라가 치킨 공화국도 아니고….”

박근혜 대통령이 55세 이상 중장년 근로자들이 은퇴 후 본인이 하던 일에 계속 종사하기 어려운 현실을 지적하며 한 말이다. 은퇴 후 직업의 연속성을 보장하기 위해 파견법 개정이 반드시 필요한데도 국회에서 아직 통과되지 않은 데 대한 답답함이 담겨져 있다.

대통령의 심정은 십분 이해되지만 사내유보금을 수백조 원씩 가지고 있는 대기업에는 아마도 마이동풍(馬耳東風)으로 흘려들을 소리다. 돈 되는 데를 찾지 못해 돈을 쌓아두고 있는 기업으로서 대통령의 한 마디에 온정의 은전(銀錢)을 내놓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햄릿의 명대사 ‘To be or not To be that’s the question,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직장에서 ‘철면피’가 되어 온갖 수모를 무릅쓰고 끝까지 ‘버티느냐, 나가느냐’ 그것이 문제다.

정년을 앞둔 50대 중반 모 언론사 간부는 “영원한 현역일 줄 알았는데 벌써 희망퇴직이 코앞에 다가왔다”며 허탈해했다. 우리는 착각 속에서 살고 있다. “내 지위는 영원히 변치 않을 것이다”라는 착각에 당장 낼 모레 자신의 운명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산다.

 

현역부터 인생 2막을 준비하자

인생 2막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현역부터 준비해야 한다. ‘꿀보직’에서 밀려나자마자 세상은 안면을 싹 바꿔버릴 테니 말이다. 게다가 퇴직금을 노리는 자들은 주위를 맴돌고 있다.

‘당신에게 아부하고 잘 보이려 비위를 맞췄던 것은 당신의 인물, 인격 때문이 아니라 그 자리 때문이었다’ 이 사실을 절실하게 깨닫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아니 퇴직명령서가 코앞에 와서도 현실을 절감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은 현역 샐러리맨이고 남편이고 다 해당되는 말이다.

 

은퇴 계획서.

현역일 때부터 발품 팔고 인터넷에서 일자리 검색하고 눈도장 찍으며 인생 2막을 준비해야 한다. ⓒemilie zhang/Shutterstock

 

‘고용상 연령 차별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 개정안’에 따라 300인 이상 사업장과 공공기관은 올해부터 정년을 60세로 연장해야 한다. 의무화 시점에 앞서 임직원 정년을 60세로 연장한 기업도 있다. 바로 삼성전자와 SK텔레콤이다. 두 기업은 올해부터 각각 55세, 58세였던 정년을 60세로 늘렸다. 두 회사는 정년연장과 함께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는데 SKT의 경우 만 59세부터 매년 전년 연봉을 기준으로 임금을 10%씩 줄이기로 했고, 삼성전자는 만 56세부터 임금을 10%씩 감액하기로 했다.
하지만 정작 ‘정년 60세 연장’ 적용대상이 되는 구성원의 반응은 무덤덤하다. 대기업 조직 분위기상 나이 든 부장, 차장들은 정년을 채우기 전 눈치껏 알아서 보따리를 싸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세상에서 믿을 구석은 본인, 당신뿐이다. 그러니 힘들어도 스스로 발품 팔고 인터넷에서 일자리검색하고 끊임없이 메모하며 눈도장 찍고 돌아다녀야 할 것이다. ‘백수가 과로사(過勞死)한다’는 말은 여기서 나온 것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