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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神)은 우릴 보고 웃고 있다

category 칼럼/인생2막 시론(時論) 2016. 7. 13. 07:33

유토피아와 신기루

 

‘빈자(貧者)의 어머니’ 마더 테레사(1910~1997) 수녀가 1981년 5월 3일 김포공항에 내렸다. 고 김수환 추기경이 곁에서 수행했다. 수녀는 차를 타고 시내로 들어오면서 “저렇게 많은 십자가가 있는데 왜 세상에는 사랑을 못 받는 사람들이 많을까요”라고 첫 일성(一聲)을 날렸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살아있는 존재는 행복하기를 기원한다. 행복을 경험할 때 뇌에서 엔도르핀이 생성된다. 그 엔도르핀은 자신과 타인에게 치유의 효과를 줄 뿐 아니라 힘의 에너지를 생성한다”

가난하고 못사는 이들을 위해 오롯이 한평생을 바친 테레사 수녀는 참다운 희생과 봉사라는 마더 테레사 효과를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행복감을 맛보기 위한 인간의 여정(旅程)은 끝이 없다. 곧 욕망의 충족이 관건이다. 심리학자 매슬로우가 말하는 인간 욕구 5단계(생리적 욕구, 안전 욕구, 애정과 소속의 욕구, 존중 욕구, 자아실현 욕구)는 우리가 죽을 때까지 추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각 단계마다 더 높고 좋은 삶을 찾기 위해 몸부림친다.

 

매슬로우 욕구 단계 그래프.

우리가 죽을 때까지 각 욕구 단계마다 더 높고 좋은 삶을 찾기 위해 몸부림친다. ⓒ김동철

 

스트릭랜드(strict land)! 번역하자면 ‘피도 눈물도 없는 각박한 땅’쯤 된다. 영국 작가 서머싯 몸(1874~1965)은 소설 <달과 6펜스>에서 주인공 이름을 스트릭랜드라고 지었다. 작가는 프랑스 후기인상파 화가인 폴 고갱의 생애에서 영감(靈感)을 얻었고 달은 정신적인 삶과 예술혼을 상징한다. 영국 런던의 평범한 샐러리맨인 스트릭랜드는 어느 날 갑자기 가족을 등지고 예술을 찾아 무작정 파리로 간다. 아내와 자녀를 내던진 과감한 일상이지만 그를 기다린 것은 삶 속에서의 생활고와 번뇌와 갈등이었다.

그야말로 독일의 시인 칼 붓세(1872~1918)가 ‘행복을 찾으러 산 넘어 갔다가 결국 찾지 못하고 허탈하게 돌아왔다’는 눈물과 한탄의 ‘행복시’처럼 행복은 손에 잡히지 않는 신기루인지 모른다.

우리는 젖과 꿀이 흐르는 이상향(理想鄕), 즉 유토피아(Utopia)를 꿈꾼다. 그런데 Utopia에서 U는 없다는 뜻, 무(無)이다. 유토피아는 그저 꿈속의 샹그릴라(Shangri-La)일뿐 ‘이 세상에 없는 땅’이라는 뜻이다.

 

부동의 1위, 자살 사망자 수

그래도 인간은 끊임없이 이상향의 노다지(미국 서부개발 때 금광에서 나온 금을 보고 ‘손대지 말라’는 노우 터치(No touch)가 노다지로 변했다)를 캐러 떠난다.

‘50년 독점’ 남산케이블카 대표 연봉 6억 원. 공공기여는 전무(全無), 재무회계 불투명. 공공기여 없는데 서울시는 21억 원 들여 에스컬레이터까지 설치.

최근 신문에 난 기사다. 그야말로 남산케이블카 회사는 인간은 물론, 신(神)도 감쪽같이 모르고 신(神)도 가고 싶은 ‘신(神)의 직장’이었는지 모른다.

세상에 삼대 거짓말이 있다고 한다.

‘처녀가 시집가지 싫다는 것, 장사꾼이 밑지고 판다는 것, 늙은이가 죽고 싶다’는 것이다. 늙은이가 정말 죽고 싶다는 말이 사실일까?

우리나라에서는 그 말이 사실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의 자살 사망자 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가운데 11년째 부동의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기준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가 2013년 기준 28.5명으로 OECD 회원국 중 1위를 고수하고 있다. 고령화 시대를 맞은 우리나라는 특히 노인 자살률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난다. 한국의 70세 이상 노인의 자살률은 116.2명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최대 10배나 높은 수준이다.

 

고개 숙인 노인.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자살자 수 1위이다. 노인들은 불안하고 고독하다. ⓒ김동철

 

제일 큰 이유는 생활고와 고립감 때문이다.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에 거주하는 65세 정도의 일하는 노인 1000명을 조사한 결과 하루 평균 12.9시간으로 법정 근로시간(8시간)보다 훨씬 오래 일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의 시간당 임금은 5457원으로 당시 최저임금(5580원)보다 낮았다. 일자리도 85.4%가 경비와 청소, 가사도우미, 운전사 등 단순 노무직에 집중됐다. 근력과 기억력은 날로 쇠퇴하는데 하는 일은 궂은 3D(더럽고 위험하고 어려운 일) 직종이다.

앞만 보고 100m 달리기로 뛰어오다가 어느 날 퇴직했고 빈부 격차가 심각한 양극화 현장에 놓인 이들은 상대적 빈곤과 박탈감, 지독한 외로움과 고독감에서 자살을 택했을 것이다. 과거 대가족제도에서 못 살았어도 가족들의 등 두드림의 응원이 있었다. 그러나 핵가족 시대에 높은 이혼율로 무너지는 가정에서 홀로 사는 독거노인들의 최후 선택이 자살이라는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슬픈 비극이다.

 

흔들리며 젖으며 피어나리

한 죽음과 관련한 이야기다. 최근 인성교육차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전 주월한국군사령관 채명신 중장의 묘는 아주 특별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었다. “함께 싸웠던 사랑하는 부하들과 같이 묻히고 싶다”는 유언에 따라 그는 장군 묘역이 아닌, 사병묘역에서 일병, 상병들과 함께 잠들어 있었다.

노인자살자! 오죽하면 부모(또는 신)로부터 받은 생명을 스스로 포기했을까 하는 짠한 마음도 있지만 죽어서도 살아남은 자들에게 가슴 뭉클한 감동을 주는 ‘거룩한 죽음’도 있다.

 

채명신 장군 묘.

죽어서도 살아서도 거룩한 모습으로 남자. ⓒ김동철

 

세계 최고의 자살률을 기록하는 이 땅에 신은 왜 구원의 손길을 내려 보내지 않는 것일까. 신은 정녕 우리를 버린 것인가, 아니면 독일의 철학자 니체의 말처럼 정말 죽은 것인가.

 

인생 막장에 놓인 우리나라 노인들에게 위로(慰勞)의 시 한편 소개한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_도종환의 ‘흔들리며 피는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