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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분’의 비애(悲哀)

category 칼럼/인생2막 시론(時論) 2016. 7. 13. 07:36

음식을 함께 먹는다는 것

 

실버님들, 혼밥(혼자 먹는 밥)을 드셔보셨습니까? 아내가 여행 가서 가정을 비운 특별한 경우를 빼고 말입니다. 저는 아내가 일본에서 생활한 지 6년째를 맞아 혼밥을 많이 먹고 있습니다. 혼밥은 서러운 밥이기도 하지만 때론 먹고 싶은 것을 실컷 해먹을 수 있는 행복한 기회를 주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골뱅이 무침에 도전,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무엇보다 어두컴컴한 식당 주방에서 나오는 음식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딱입니다. 어떤 고발 프로그램을 보니까 ‘식당에서 김치찌개 절대 먹지 말라’고 하더군요. 주방에 있는 큰 통에 손님들이 먹다 남긴 김치찌개를 저장해 놓았다가 주문받을 때마다 다시 끓여내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로 짬뽕이나 순대국 등 국물요리를 시킬 때마다 이상야릇한 상상력이 발동돼서 영 찜찜합니다. 식당을 하는 주인과 주방장에게 고합니다. “자기 가족에게 해주는 것 같이는 못해도 먹는 것 가지고 장난치지 마라”

어떤 상대와 식사를 같이 한다는 것은 보통 인연이 아닙니다. 음식을 먹으면서 서로 가진 이야기를 풀어놓고 공감하고, 때론 다른 정보를 교환한다는 자체가 이만저만한 만남이 아니지요. 싫은 사람과 마주 앉아 술을 마신다고 생각해 보세요. 또 본인이 싫어하는 음식을 직장 상사 또는 나이를 앞세운 선배가 매일 같이 가서 먹자고 하면 그것은 왕짜증, 스트레스를 받아 암 걸리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술이나 밥을 맘에 맞는 사람과 함께한다는 것은 진정한 행복입니다.

 

타지에서 혼밥 먹는 요령

지난 3년 동안 남해안의 이순신 장군 유적지를 순례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객지에서 혼밥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단 기차나 버스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우선 찜질방을 알아놓고 탐사 활동을 마친 뒤에 ‘피로회복제’인 소주가 있는 저녁을 먹습니다. 장군의 유적지는 대개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때론 1~ 2시간마다 오는 시골버스를 기다리다 안 오면 마냥 기다려야 하고, 때로는 배를 타고 섬까지 이동한 뒤 마을 택시로 목적지까지 왕복합니다. 시골 오지에서도 배꼽시계는 여지없이 울립니다. 하지만 편안히 앉아서 맛있는 음식을 사먹을 식당을 만나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소도시나 읍내에서는 우선 기사식당에 의탁하는 편이고, 여타 식당의 경우 식당 간판과 바깥 분위기를 먼저 살핍니다. 그러나 술 손님들이 몰리는 저녁 때 혼자 앉을 자리를 찾기란 불가능합니다.

 

서울 시내 일식 식당의 혼밥 코너.

우리나라 식당 대부분은 아직 1인 손님을 맞을 준비가 돼 있지 않다. 하지만 일부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을 수 있는 혼밥 코너를 만들어 놓기도 한다. ⓒ김동철

 

1인 손님에게 4인 테이블을 내놓을 주인은 없습니다. 이런 경우에 일단 식당 한두 군데를 찍어 놓고 부근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런 연후 러시아워가 끝난 뒤 겨우 자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돼지갈비가 먹고 싶을 때 2인분을 시킨다고 해도 일단 4인용 테이블을 선뜻 내놓는 데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내 돈 내고 먹자 해도 주인의 볼멘소리에 괜히 구걸하는 것 같아 포기합니다. 목포 찜질방 동네 재래시장에서 몇 시간을 허비한 끝에 겨우 자리를 잡았는데, 그 인심 좋은 남도 아주머니의 맛깔 나는 찌개 맛은 정말 잊을 수 없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첫 승전지인 거제도 옥포를 찾아갔을 때 저녁 8시쯤에 거의 모든 식당이 문을 닫거나 파장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 한 군데가 발견된 겁니다.

조그마한 밥집 여주인은 소주 안주 하라면서 계란 후라이도 덤으로 주었습니다. 김치를 잘 만들어서 서울 사람에게도 김장김치를 배달한다는 그 여주인은 금방 버무린 겉절이 김치도 내놓았습니다. 일단 행복한 저녁이었습니다.

또 한 번은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남해 노량해전의 전적지를 찾았을 때 식당까지 가려면 얼마나 되는지 모른 채 마냥 걸어야 했습니다.

“조~기 언덕 너머”라는 현지인의 말은 2시간 정도 걸리는 곳이었습니다. 8월의 뙤약볕 아래 아스팔트 복사열을 고스란히 맞으면 걷는 고행(苦行)의 길이었지만, 저 멀리 푸른 바다에서 전투가 벌어진 상황을 그리면서 고단함을 못 느꼈다면? 믿지 않으시겠지요.

남해대교가 눈앞에 보이는 관광지인 만큼 혼자 자리를 찾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몇 군데 “식사 안 돼요?” 하며 노크하다가 겨우 한 군데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해군사관학교에서 기증한 거북선이 바닷물에 둥둥 떠 있는 남해대교 밑의 바닷가 식당.

“혼자 여행왔습니꺼?”

“네, 이순신 장군 유적지 촬영하러 왔습니다.”

거의 3시가 가까운 시각이었습니다. 식사로 회덮밥과 소주를 주문했는데, 40대 젊은 여주인은 회덮밥은 물론 큰 냄비에 푸짐한 서더리탕을 끓여 내주었습니다. 그 주인의 넉넉한 인심에 감동, 바다 보면서 한잔에 감동, 세상 부러운 것이 없더란 말입니다.

 

남성들이여~ 혼밥도 요리도 익숙해지시길

그때 서울에서 기차표를 싸게 팔았던 동갑내기 아저씨가 생각났습니다.

“이순신 연구한다니 내가 우동 한 그릇 값은 깎아줄게. 옛날에 완행열차 시절 대전역에서 우동 한 그릇 후딱 해치우던 때가 그립습니다 그려~!”

 

혼밥 레벨테스트 표.

혼자 고깃집을 갈 수 있으면 혼밥 레벨이 상당히 높은 것이다. 혼밥 레벨 테스트 재미 삼아 한번 해 보시길. ⓒ김동철

 

혼밥은 이렇게 새로운 추억을 만들고 각박한 세상에서 훈훈한 인정을 맛보게 해줍니다.

정년퇴직 후 아내를 먼저 보낸 뒤 살아가던 L씨(75)는 바깥에 나가기를 싫어합니다. 약속 없이 모처럼만에 나갔다가 혼자서 밥을 먹어야 하는 게 지긋지긋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서울의 종로 3가역 파고다 공원 부근에는 실버들이 들끓는 곳입니다. 그곳에는 우거지 얼큰탕 2000원, 선지해장국 2500원, 순두부 콩나물밥 2500원 등으로 저렴한 식당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건더기가 충분치 않거나 어딘가 2% 부족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런대로 한 끼 식사로는 그만입니다. 식당주인은 싸게 팔아서 인심 얻고 손님은 줄을 서서 붐비니, 박리다매(薄利多賣)의 경영술이 돋보입니다. 부근의 이발소 요금도 커트 3500원, 염색 5000원입니다. 늙수그레한 이발사 아저씨의 실력은 말할 필요가 없고 가격도 싼 편이니 젊은이들도 찾는 명소가 됐다고 합니다.

출출할 때 라면을 끓여주는 마눌님이 언제까지나 곁을 지켜줄 지 모르겠습니다.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고추 떨어진다는 어머니의 잔소리를 듣고 자란 60대 이상의 실버들, 그들의 100세 민생고(民生苦) 해결이 문제일 것 같습니다.

독거노인 4명 중 1명은 하루 두 끼 식사로 때운다고 합니다. 경제형편도 한 이유겠지만 삼시 세끼 다 해먹는 게 너무나 힘들기 때문이겠지요.

세상은 어느덧 100세 시대로 접어들었고 언젠가는 누구나 혼밥을 먹어야 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남성 은퇴자 가운데는 요리학원이나 지역 문화센터에서 요리를 배우러 줄을 서는 이들이 많다고 합니다.

 

혼자 밥 먹는 시니어.

누군가 언젠가는 혼밥을 먹어야 할 때가 온다. 그날을 위해 지금부터라도 혼밥 그리고 요리를 좀 배워두면 어떨까? ⓒ김동철

 

금강산(金剛山)도 식후경(食後景)! 일단 배가 불러야 명승고적도 보고 싶은 법입니다.

실버님들, 오늘부터 자급자족할 수 있는 불량주부 자격증에 도전하지 않으시렵니까. 손가락 하나 까닥 하면 재떨이와 리모콘 대령하고 라면 끓여 바치는 풍속도는 이제 박물관으로 보내져야 할 때가 왔습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처럼 이제는 소꿉놀이 때부터 남녀역할을 바꿔서 남자 어린이들에게 행주치마 걸치게 하고 밥 짓는 연습을 시켜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