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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욕(老慾)과 인성(人性) 교육

category 칼럼/인생2막 시론(時論) 2016. 7. 13. 07:38

착각의 늪에 빠진 망구 씨

망구(望九)는 아흔을 바라보는 팔십 줄의 맨 처음인 여든한 살을 말한다. 인간 발달단계로 보면 이 나이는 황혼(黃昏)의 완성기이다. 아침에 떠오른 태양이 뜨거운 대낮 하늘 가운데 정점(頂點)에 섰다가 서산 너머로 지려는 순간, 그 붉디붉은 장엄한 빛을 발하는 엄숙한 순간이기도 하다.

인본주의 심리학자 매슬로우(Maslow)에 따르면 그 나이는 인간 욕구의 마지막 5단계에 해당된다. 이 시기는 자아실현의 시기이다. 인생 대단원의 막을 장식하는 자아완성의 시기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귀중한 마감 시간에 “아직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어림도 없지”를 되뇐다면 정말 끔찍한 악몽이 될 터이다.

 

매슬로우 인간욕구 5단계.

매슬로우에 따르면 망구는 자아실현을 해야 할 단계이다. ⓒ김동철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인간의 본능인 욕심은 절대로 놓을 수 없는가 보다. 그래서 진시황은 영원히 늙지 않는 불로초(不老草)를 구하기 위해 천지 사방으로 사람을 보냈지만 그 꿈을 끝내 이루지 못했다. 그럼에도 아직도 못 채운 물욕의 욕망을 좇아 자화상(自畵像)을 스스로 추(醜)하게 그리는 노인들이 더러 있다. 아! 인간의 욕심은 과연 어디까지인가.

 

술잔을 부딪히는 시니어.

인간의 물욕은 끝이 없다. 인생을 마무리해야 할 망구에도 물욕을 버리지 못하면 추해질 수 있다. ⓒMiau/Shutterstock

 

기자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났는데 필자가 아는 80대 노인 가운데 여전히 정치권과 국가기관의 언저리에서 한 자리 차지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떠도는 부운(浮雲) 같은 인생을 많이 봤다. 전직 고위관리는 물론이고 전직 국회의원 등 내로라하는 사람들부터 조그만 공직을 경험했던 사람조차 “내가 누군데!”라는 생각에 나름대로 크고 작은 곳에서 사단(私團)을 만들어 영향력의 지속을 기대하고 있다. 일명 ○○대부(代父)로 불리는 이들의 욕망을 부추기는 축은 그 영향력의 우산 아래로 모여드는 불나방 같은 추종세력들이다. 또한 이권단체에서는 이들 대부를 그냥 놔두지 않고 계속해서 러브콜을 때린다. 회장, 고문 등 직책에 운전사 딸린 승용차, 비서 딸린 방, 품위유지의 카드까지 제공한다. 크게 보면 대형 법률회사인 로펌 정도가 될 것이고 작게는 ○○협회, ○○동우회 등으로 크고 작은 단체가 물욕(物慾)의 도가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나라의 혈연, 지연, 학연 등으로 얽히고설킨 공생의 메커니즘은 악어와 악어새처럼 공존네트워크를 형성한다. 이 대목에서 우리나라도 로비스트라는 새로운 직업이 합법화되었으면 오죽 좋으련만 이들은 때론 브로커로 낙인 찍혀 법정에 서는 경우를 자주 본다. 방위산업비리 같은 어마어마한 액수가 오가는 곳과 대기업을 주로 담당하는 ‘독수리 5형제’ 대형로펌들이 여태껏 보여준 비리 행태를 살펴보면 ‘욕망의 끝은 없다’는 결론이다.

노욕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자신의 ‘영원한 꽃자리’가 계속되길 바라지만 어디 인생의 법칙이 그렇게 호락호락하던가. 그래서 가진 자건 없는 자건 인생은 평등하다는 말에 절대 동의한다.

‘문화는 가장 정치적’이라던 문화계의 망구 씨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줄타기에 성공해 여전히 새롭게 변신하는 카멜레온 망구 씨, 아직도 열혈청년인 양 어깨에 잔뜩 힘주고 목청높이는 허망한 망구 씨들이 모두 한통속이다. 모두들 한 치 앞의 인생을 모른 체 하는 착각의 늪에 빠져서 미망(迷妄)을 헤맬 뿐이다.

 

노년, 물욕 버리고 인성의 본보기가 되자

‘권력은 아들과도 나누지 않는다’는 말처럼 한번 맛본 권력은(그것이 크건 작건 간에) 포기하기가 마약이나 담배 끊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의 물러설 때를 알고 그 뒷모습이 아름다운 인품을 우리는 인격 완성의 백미(白眉)로 꼽아 칭송한다. 문제는 떠날 때를 알아서 물러서는 겸양지덕(謙讓之德)의 미덕이 필요할 것이다. 전 주월한국군사령관이었던 고 채명신 장군은 “죽어서 장군 묘역이 아닌 사병 묘역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고 그는 현재 서울 현충원 사병묘역에 자신과 함께 이국의 전장(戰場)을 누볐던 일병, 병장, 상병들과 이웃해서 묻혀 있다.

 

채명신 장군 묘지 비석.

채명신 장군은 장군 묘역이 아닌 사병 묘역에 묻어 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자신과 함께 싸운 부하들과 함께이길 원했기 때문이다. 채명신 장군이야 말로 노년의 본보기이다. ⓒ김동철

 

아! 멋진 이 감동. 그저 고개가 절로 숙여지는 그 무덤 앞에서 필자는 ‘이 분이야말로 이 시대 인성교육의 모범’이라는 뜻을 새길 수 있었다.

인성교육을 연구하고 강의하는 필자로서는 이순신 장군의 살신성인(殺身成仁) 정신과 안중근 의사(義士)의 애국헌신 정신, 채명신 장군의 부하사랑 애민정신을 후세에 전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어깨가 부쩍 무거워졌다. 위의 세 분은 모두들 죽고자 하는 결연한 의지를 보임으로써 영원히 사는 필사즉생(必死卽生)의 철학을 가진 게 공통점이다.

모두들 “이 나라의 인성이 무너졌다”며 혀를 끌끌 차지만 인성교육을 어떻게 후생(後生)들에게 전해줄지에 대해서는 그 방법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우선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배려심이 가장 시급하다. ‘나의 노욕이 젊은이들의 일자리에 지장을 끼치는 것은 아닌지?’ 또 ‘내 것만 지키려다 조직에 더 큰 손해를 끼치는 것은 아닌지?’ ‘나의 내 꽃자리가 더 유능한 후배의 앞길에 방해가 되는지?’ 등을 곰곰 생각해 보면 답은 절로 나온다.

그 다음으로 측은지심(惻隱之心)이다. 나보다 못한 후생(後生)들을 가엽게 여기는 마음이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는 윤동주의 서시 구절처럼 ‘생명이 있는 것은 슬픈 존재’라는 인간 본연을 직시한다면 측은지심이 안 들래야 안 들 수 없을 것이다.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과 비정규직으로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 대한 새로운 시선과 인식의 재발견, 그것이 어른이 가져야할 태도가 아닌가 감히 생각해본다.

마지막으로 맹자(孟子, BC 371~289)의 무항심(無恒産 無恒心)을 살펴본다. 맹자의 <양혜왕(梁惠王)> 상편에 나오는 말로, ‘항산(恒産)이 없으면 항심(恒心)이 없다’는 뜻으로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없다. 일정한 밥벌이, 즉 고정 수입 같은 항산(恒産)이 없는 사람은 떳떳한 마음인 항심(恒心)이 없기 때문에 어떤 나쁜 짓이라도 할 수 있으므로 맹자는 특히 교육에 있어 도덕(道德)을 강조하였다. 바로 우리 시대에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인성교육을 말함일 것이다.

이 시대 노인들이 후생(後生)을 위하여 예, 효,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 같은 인성씨앗을 가르치는 교육전도사가 된다면 훗날 역사는 다음과 같이 평할 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선진화된 의식은 당시 노인들이 앞장선 ‘인성텃밭 가꾸기 운동’의 결과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