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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편지, 도쿄의 숙(淑)에게

category 칼럼/인생2막 시론(時論) 2016. 10. 17. 15:16
  • 나를 깨우는 가을 편지, 가을 시

가을은 누군가에겐가 편지를 쓰는 때이다. 빠알간 우체통에 넣은 그 편지는 어쩌면 훗날 다시 나에게 돌아올지도 모른다. 그래도 써야한다. 맑은 가을하늘의 저 흰 구름이 손짓하며 나를 부르고 있지 않은가.

 

가을 우체통.

 

가을은 편지를 써야한다. 맑은 하늘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SNS가 아닌 손으로 쓰는 진짜 편지 말이다. ⓒChinnasut Nhurod/Shutterstock

 

요즘은 손편지 쓰는 때가 아니다. 사람들은 카톡, 밴드 등 SNS를 통해서 그리움을 주체 못 해 이리저리 헤매고 있지만 애달프고 아쉬운 손편지와는 맛이 영 다르다. 어떤 밴드에 들어가 보니 ‘우리가 남이가?’ 라며 시덥지 않은 이야기들이 넘쳐 어지럽다. 또 어떤 곳은 ‘뭣이 중한디?’ 쥐죽은 듯 눈팅만 열심히 해 정적이 맴돈다. 이 둘도 아니다. 가을은 한쪽으로 기울어진 마당이 아니다.

매년 이맘때면 “시인 고은이 과연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를 두고 언론사 문화부 기자들은 점을 치기 시작한다. 몇 년 전에는 기자들이 그의 집 앞에 진을 치고 “노벨상을 받을 것 같습니까?”를 단도직입적으로 묻곤 했다. 이런 실례가 어디 있고, 이런 망발이 어디 있는가. 떡 줄 사람에게 물어봐야지, 김칫국부터 먼저 마시란 말인가.

평생 독서를 안 하기로 유명한, 시집을 안 읽기로 호가 난 우리네 일반 사람들이 왜 노벨 문학상에는 그리 목을 매는가? 그것은 공부 안 하고 명문대에 들어가려는 ‘도둑님 심보’와 마찬가지일 터이다.

그 고은 시인은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으로 인생 2막의 정곡을 찔렀다. 고은의 시 가을편지는 이맘 때 어울리는 가을 송(頌)이고 흥얼거리면 님의 손이 당장 내 어깨를 두들길 듯한 노래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흩어진 날

헤메인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모든 것을 헤메인 마음 보내드려요

낙엽이 사라진 날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이 ‘가을편지’는 가수 이동원이 불러 널리 퍼뜨려놓았다.

 

가을 우산 속 연인.

 

가을은 많은 음악들이 배경에 깔리는 계절이다. 최헌의 ‘가을비 우산속’, 윤도현의 ‘가을 우체국 앞에서’ 같은 음악이 이제 추억으로 남았다. ⓒDitty_about_summer/Shutterstock

 

편지하면 1970년 초 까까머리 중학생 때 어니언스가 부른 ‘편지’의 감흥이 남아있다. ‘헤어지자 보내온 그녀의 편지 속에~’를 연신 부르면서 사춘기 까까머리는 한없이 단풍 떨어진 길을 걸었다. 그 이후 최헌의 ‘가을비 우산속’은 미치도록 가슴 시린 노래로 나의 애창곡에 추가되었다. 윤도현이 부른 ‘가을 우체국 앞에서’처럼 아! 이제는 없어진 지난날의 추억이 되고 말았다. 밥만 먹고 살 수 없는 게 사람이라면, 이제 손편지를 쓸 때이다.

 

카페 숙의 추억과 조용필

필자는 1990년대 초 도쿄의 조그만 카페 숙(淑)이란 곳에 들른 적이 있다. 취재차 오사카에서 일을 본 뒤 신칸센을 타고 도쿄에 와서 호텔 숙소를 정하고 한 잔 하러 간 곳이다. 일본 국회의사당 부근 그 카페는 조용한 뒷골목에 자리하고 있었다. 황혼이 물러간 골목길에는 가로등이 켜져 더욱 고즈넉했다. 지인의 소개로 찾은 카페 숙은 조그만 가라오케 술집이었다.

필자 바로 옆 자리에는 일본인 두 사람(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술을 마시며 당시 일본에서 한창 유행하던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불렀다. 그런데 자신들의 노래가 성에 차지 않았는지 신통치 않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한국말을 하는 필자에게 정중히 노래 부탁을 했다. 필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선뜻 오케이를 하고 한 곡조 쭈~욱 뽑았다. 조용필 노래는 ‘18번곡’이었기 때문이었다.

 

도쿄 이자카야 거리.

 

잊고 있었던 도쿄 숙의 여주인과의 추억이 되살아 났다. 이제 손편지를 쓴다면 그녀에게 보낼 것이다. ⓒyukihipo/Shutterstock

 

숙(淑)의 여주인은 이윽고 낯선 필자에게 다가와 앞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30대 중반이었고 고향은 대전이라고 했다. 그녀와 인사를 나눈 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양주를 한 잔씩 따라 마셨다. 고향을 떠나온 지 10년 동안 집에 한 번도 가지 못했다고 했다. 고향 아재를 만나 격의 없이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분위기에 취했는지 급기야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카운터에서 이 광경을 힐끔힐끔 지켜보던 여종업원은 못내 걱정스러워했다. 늦은 시각이어서인지 홀 안에는 손님이 없었다. 필자는 숙소로 가기 위해 일어났다. 숙의 여주인은 약간 비틀거리며 “알아서 가게 문을 닫으라”며 열쇠를 종업원에게 주었다. “나 오늘 이 손님하고 할 이야기가 더 남아 있는 거 같애”라고 말한것으로 기억한다.

필자는 종업원에게 “사장님을 잘 부탁드린다”면서 동행인을 핑계로 먼저 바깥으로 나왔다.

가을 밤 공기는 시원했다. 가로등은 깜빡깜빡 졸고 있었다. 어둑한 숲속에 난 골목길을 따라 홀로 터벅터벅 호텔로 향했다. 그런데 걷다가 흠칫 놀랐다. 필자가 서면 그도 서고 필자가 걸으면 그도 따라 걸었다. 그림자 때문이었다. 어느덧 대낮같이 밝은 호텔 입구에 다다랐다.

그 이후 도쿄를 몇 번 방문했지만 카페 숙은 머릿속에서 까맣게 잊혀 있었다. 그런데 이십년이 훌쩍 넘어버린 이 때 다시금 생각나는 것은 아마도 가을 때문일 것이다. 편지를 쓴다면, ‘도쿄의 숙(淑)에게’로 시작할 것이다. 그의 모습은 필자의 기억에서 하얗게 지워져 전혀 생각이 나지 않지만 말이다.

이순신 인성리더십 포럼 대표, 교육학 박사, 시사·문화평론가, 전 중앙일보·월간중앙 기획위원, 명지대·성결대 강의.

'환생 이순신 다시 쓰는 징비록'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