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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 척결의 대역사가 시작됐다

category 칼럼/인생2막 시론(時論) 2016. 10. 20. 14:21

부패 척결의 대역사가 시작됐다

  • 김영란법으로 망한 식당은 없다

아주 오랜 만에 공기업 CEO인 지인과 저녁식사를 같이 하게 되었다. 서울 인사동의 대중 한정식집인데 메뉴는 2만 5000원짜리 정식이었다. 그런데 이전에 먹었던 것과 좀 차별되는 것은 반찬가짓수와 양이 훨씬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전에 5만 원짜리 특정식과 비교했을 때 대충 식재료 값을 계산한다면 주인장은 별 손해나는 장사가 아닌 듯 보였다. 식당 방과 홀 안은 손님들로 꽉 차 성업 중이었다.

 

 

 

                               식당 안 풍경.

 

일명 김영란 법 시행 이후 주변 식당들이 망할 거라는 소리는 식당 주인들의 엄살에 지나지 않았다. 얼마전 찾아간 한식당은 자리를 기다리는 사람으로 북적북적했다. Ⓒben bryant/Shutterstock

 

기다리는 손님들도 꽤 있었다. 일명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식당영업에도 타격이 있을 것이라는 언론보도는 지레 겁먹은 주인장들의 엄살을 반영한 것 같았다. 물론 강남의 유흥업소나 초호화급 호텔음식점은 어떨지 모르겠다. 으레 ‘밑지고 판다’ 또는 ‘남는 게 없다’는 장사꾼들의 너스레는 처녀가 시집가고 싶지 않다는 것, 노인네가 어서 빨리 죽고 싶다는 말과 같이 삼대 거짓말일지도 모른다. 주고받는 거래에 능한 장사꾼들은 엄살을 부리기 일쑤인데 ‘절대 밑지는 장사는 안 한다’는 게 그들의 철칙인것 같다.

최근 공기업에 근무하는 사람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파업 중인 그 공기업 직원은 임금투쟁 머리띠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노조원인 게 분명했다. 연봉 1억 원 ‘신의 직장’ 노조원의 생각을 고스란히 들을 수 있었다. 상담 내용과 달리 그는 불쑥 “김영란법대로 하면 업무가 마비된다”면서 “여태까지 이어져온 우리네 정서인 정(情)문화를 당장 뿌리 뽑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청렴결백, 원리원칙은 다 하기 좋고 듣기 좋은 말이고 지키는 사람만 손해 본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가욋 얘기지만 김영란법을 충실히 지키면 그동안 담당 공무원과 만나서 푸짐하게 먹었던 자리가 사라질 것에 대한 두려움(?)도 털어놓았다. 공기업은 정부 돈 가지고 홍보, 업무 협의차 언론인 및 상위 기관 공무원들과 만남을 갖는다. 또한 공무원(공기업)은 민간 하청업자에게는 갑의 우월적 지위에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적인 친구들 모임에서도 김영란법 이야기가 단골로 회자되고 있다.

 

했어도 한참 전에 했어야

‘우리가 남이가?’로 대변되는 온정(溫情) 문화는 이제 ‘피할 수 없는 햇볕’ 같은 김영란법의 투시경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어느 날 한 여자 법조인의 머리에서 나온 이 법은 이제 우리네 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필자의 개인적 소견으로는 김영란법의 시행은 만시지탄(晩時之歎)의 감이 없지 않다. 했어도 벌써 했었어야 했다.

최근 세계경제포럼이 밝힌 세계경쟁력보고서에서 우리나라 부패지수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9위로 나타났다. 부패정도가 심한 국가 11개국이 선정됐는데 가장 부패한 국가는 멕시코였다. 그리스는 5위, 헝가리 4위, 이탈리아 3위, 슬로바키아 2위였다.

9위에 오른 한국에 대해 “부패가 큰 문제인 것으로 광범위하게 여겨지고 있다”면서 “최근에는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 언론인, 교사 등에게 3만 원 넘는 밥을 사주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법률을 도입했다”며 김영란법을 소개했다.

 

태극기 접시.

 

요즘 어딜가나 나라꼴 말이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특히 사회지도층의 부패가 나날이 이슈이다. ‘3.5.10 규칙’이 강제적으로라도 필요한 이유다. ⒸAntony McAulay/Shutterstock

 

요즘 어딜가나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는 말을 쉽게 듣고 또 동의한다. 대통령을 앞세워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비선 실세’가 그 중심에 서있다. 최모씨의 딸 때문에 이화여대 교수들이 연일 도마에 오른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가 국감의 단골 메뉴가 됐고, 대기업들이 일사불란하게 억대의 돈을 흔쾌히(?) 쾌척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북한 김정은 정권은 핵카드를 만지작거리며 미국에 구애(求愛) 작전을 펼치고 있다. 이런 핵 위협 속에 방산비리는 끝이질 않고 어떤 개그맨은 국방부와의 맞대결에 당당히 나서며 전국 마우스 투어를 하고 있다. 내년 대선에 나올 잠룡(潛龍)들은 위중한 국가안보보다 가문의 영광에 목을 매고 있는 듯하다.  ‘정의의 사도’인 검찰은 부장급 검사 몇이 철창으로 가면서 체면이 구겨졌다. ‘사드 절대 반대’를 외치는 중국은 자국 어선들이 우리의 영해에서 싹쓸이 조업하는 것을 묵인하고 있다.

나라 안팎이 이처럼 내우외환에 휩싸인 가운데 공인(公人)은 공인대로, 사인(私人)은 사인대로 돈 냄새를 맡고 달려가는 ‘돈나방’처럼 아우성이다. 탐욕은 이 땅에 천박(賤薄)한 자본주의(Paria Kapitalismus)를 불러왔다.

 

부패 척결의 대역사가 시작되다

선장은 실종되고 난파돼 표류하는 대한민국호(號)에 경종을 울리며 나타난 김영란법은 국민들에게 ‘얼차려!’를 명령하고 있다.

2004년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여성 대법관으로 발탁된 그녀는 국민권익위원장(2011년 1월 ~ 2012년 11월) 때인 2012년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을 발의했다. ‘벤츠 여검사’ 사건을 계기로 공직자의 대가성 없는 금품수수도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할 때였다. ‘뇌물공화국’이라는 오명을 가진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법이었다. 그리하여 이른바 ‘3·5·10 규칙’, 즉 직무관련이 있는 사람과의 식사(3만 원 이하), 선물(5만 원 이하), 경조사비(10만 원 이하)에 대한 처벌 규정이 시행된 것이다.

대한민국은 2016년 9월 28일부터 부정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부패 척결의 대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이것은 단군 이래 처음 시행되는 혁명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이 만든 저울.

 

단군 이래 처음 시행되는 부패 방지 법이 청렴결백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시금석이 되길 소망한다. ⒸArthimedes/Shutterstock

 

사람의 본성은 본디 이익을 좋아하고 해로움을 피하는 호리오해(好利惡害)한 존재이다. 따라서 그 본능을 바꾸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닐 것이다. 아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영란법이 반드시 뿌리내려 성공해야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더 이상 나라 힘이 약해서 강대국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우리는 21세기를 살아가는 민주시민으로 최소한의 품위를 유지하는 선진국민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동철(전 중앙일보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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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인성리더십 포럼 대표, 교육학 박사, 시사·문화평론가, 전 중앙일보·월간중앙 기획위원, 명지대·성결대 강의

'환생 이순신 다시 쓰는 징비록'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