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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못 이루는 밤과 나이의 무게

category 칼럼/인생2막 시론(時論) 2016. 11. 3. 15:08

잠 못 이루는 밤과 나이의 무게

  • 밤잠을 앗아간 생각의 꼬리들

나이가 들어감인가, 가끔 잠 못 이루는 밤이 찾아오니 적이 걱정이다. 새벽 3시경에 요의(尿意)를 느껴 잠이 깨는데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다. 화장실을 가긴 가야 하는데 일어나기가 수월치 않고 귀찮다. 반수면 상태에서 뒤척이다 보면 지난 일들이 두서없이 주마등처럼 흘러간다. 아쉬운 회한과 부질없는 원망이 뒤섞여 난무한다. 이런 날 달콤한 꿀잠은 기대난망이다.

뒷골을 당길 정도의 스트레스가 있는 날이나 막걸리나 폭탄주라도 실컷 마신 날은 어김없이 새벽잠을 깬다. 이 잠 못 이루는 불면의 밤은 공포 그 자체다. 다음날 새벽 일찍 일어나서 학교 강의를 가는 날이라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학교 가기 전날은 약속도 안 잡고 잠 잘 올 정도의 ‘수면제’인 막걸리 한두 잔 정도를 마셔 둔다.

어느 날 10시쯤 일찌감치 눈을 붙이고 꿈나라로 막 들어가려는 참인데  SNS메신져 울리는 소리가 났다. 일본에서 생활하는 아들이었다. 너무 반가웠지만 잠을 설칠 생각이 먼저 앞섰다.

 

침대 위 휴대폰.

 

잠들기 직전 온 아들의 문자는 반가웠지만 불면증을 불러왔다. 아들에 대한 여러 생각과 걱정이 내 꿀잠을 앗아갔다. Ⓒwinnond/Shutterstock

 

아들의 안부메시지는 반가웠다. 응당 수다라도 떨어야 마땅하겠지만 ‘ㅇㅎ’ ‘ㅇㅋ’ 정도의 짧은 메시지만 남긴 채 ‘굿나잇!’으로 끝냈다. 그런데 이때부터 얽히고설킨 등나무 등걸 같은 사유는 끝 모를 기세로 솟아나기 시작했다. ‘잠을 자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할수록 강박의 불면(不眠) 증세는 계속됐다. 아들의 사춘기, 군대시절, 일본유학과 취업 등의 소재가 끝나면 또 다른 소재가 찾아와 온밤의 시간이 모자랄 판이 된다. 새벽 5시 알람에 맞춰 일어나려면 몇 시간이라도 눈을 붙여야 하는데.

이 미로(迷路)의 시간 여행은 불면을 부추기는 악마처럼 다가와 영혼과 에너지를 갉아먹는다. 게다가 가을을 맞아 만산홍엽(滿山紅葉)과 떨어지는 낙엽에 얽힌 가을단상인 추사(秋思)까지 들고 일어나면 대책이 없다. 지난날 다녔던 가을 산, 남해안의 가을풍경, 가을노래 등등.

20대 군대생활에서 보초근무를 새벽에 2시간 또는 불침번을 1시간씩 번갈아 섰는데 근무 후 피곤한 나머지 침상에 눕자마자 잠에 곯아떨어지곤 했다. 아! 그 꿀맛 같은 군대의 단잠이여.

 

불면을 위로하는 새벽 공기

이리저리 뒤척이다 선잠을 자다보면 새벽 5시로 정한 알람이 어김없이 울려댄다. 겨우 몸을 추스르고 일어나 잽싸게 샤워를 하고 찹쌀떡 한두 개에 커피 마시고 집을 나서면 새벽 6시쯤이다. 이때 동네 새벽닭이 “꼬기요! 꼬기요!”하고 울어댄다. 오랜만에 듣는 닭울음 소리가 신기하기도 하지만 아직 단잠의 미련은 여전하다.

싸한 공기를 맞으며 지하철을 향해 걸어가다 새벽 하늘의 보름달을 만나기라도 하면 횡재(橫財)가 따로 없다. 새벽하늘에 휘영청 걸려있는 보름달을 바라보면 불면으로 고통 받은 상처가 말끔히 씻겨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정말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지하철을 타고 환승을 세 번씩 하면서 학교로 가는 아침 길에 노인 군단은 일찌감치 바깥세상 구경을 위해 나와 북적인다.

‘꼭두새벽부터 어디를 가시는 행렬인가’ 불면? 일터? 무임승차 즐기기? 새벽 산책?

지하철에서 혹 자리를 잡는 경우는 행운이지만 줄곧 서서 가다보면 이건 또 보통일이 아니다. 집을 떠나 2시간 만에 학교에 도착하면 8시경. 9시에 첫 강의시작이지만 일찍 온 김에 인터넷도 검색하고 여유 있게 준비하는 것이 훨씬 마음 편하다.

몸이 좀 피곤하다고 대충할 수는 없는 일. 힘들어도 일단 시작된 강의는 열정적으로 해야한다. 3시간 강의로 다리는 좀 아프지만 그것은 순전히 필자의 몫이다. 이렇게 강의를 하고 온 날 밤의 잠은 완전히 꿀잠이다. 아마도 꿀잠의 행복을 느끼게 하려고 불면의 악마가 짓궂게 찾아오는 것은 아닐까.

 

지하철 조는 남성.

 

대낮 지하철에서 꾸벅꾸벅 조는 노인들은 밤잠을 충분히 자지 못해서이다. 늙을수록 정말 맛있게 자는 ‘잠’을 잃어버린다. ⒸCorepics VOF/Shutterstock

 

‘십대들에게는 있고, 육십대 이상에게는 없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아침잠’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노년기는 멜라토닌이 합성되고 분비되는 양이 줄어들어 생체시계가 앞당겨져 젊었을 때보다 기상시간이 몇 시간 정도 더 빨라진다고 한다. 또한 노인들에게 많이 나타나는 관절염, 울혈성 심부전증, 우울증, 위식도 역류, 호흡기 질환 등 다양한 만성적 질환들도 불면증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그래서 노인들은 수면의 질이 좋지 못하다 보니 대낮 지하철 의자에 앉기만 하면 꾸벅꾸벅 조는 모양이다.

 

새벽잠 앗아간 나이의 무게

정민(한양대) 교수의 세설신어(世說新語) 에 실린 글이다.

만년의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가 말똥말똥 뜬눈으로 밤을 새우다 닭 울음소리를 들었다. “젊어서는 닭 울어야 잠자리에 들었더니, 늙어지자 베개 위서 닭 울기만 기다리네. 잠깐 사이 지나간 서른 몇 해 일 가운데, 스러졌다 말 못 할 건 꼬끼오 저 소리뿐(年少鷄鳴方就枕, 老年枕上待鷄鳴. 轉頭三十餘年事, 不道消磨只數聲).” 제목이 ‘청계(聽鷄)’다

 

젊은 시절엔 책 읽고 공부하느라 밤을 새우고 새벽닭 소리를 신호 삼아 잠자리에 들곤 했다. 이제 늙고 보니 초저녁 일찍 든 잠이 한밤중에 한번 깨면 좀체 다시 잠을 이루지 못한다. 먼동이 어서 트기만을 기다리지만 밤은 어찌 이리도 긴가? 어둠 속에 웅크린 것은 지난날의 회한뿐이다. 그땐 내가 왜 그랬을까?

 

새벽 어스름과 닭.

 

필자처럼 밤잠을 설치고 새벽 닭 우는 소리를 듣는 이들은 예전에도 있었다. 추사 김정희는 베개 위에서 닭 울기를 기다린다는 시를 쓰기도 했다. ⒸSoonthorn Wongsaita/Shutterstock

 

또 명나라 사조제(謝肇淛, 1567~1624)의 <문해피사(文海披沙)>에 나오는 노인이 젊은이와 반대로 하는 일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밤에는 잠을 안 자고 낮에 깜빡깜빡 존다. 아들은 사랑하지 않고 손자만 사랑한다. 근래 일은 기억 못 하고 아득한 옛일만 생각난다. 울 때는 눈물이 안 나고 웃을 때 눈물이 난다. 가까운 것은 안 보이고 먼 데 것이 보인다. 맞아야 안 아프고, 안 맞으면 아프다. 흰 얼굴은 검어지고, 검던 머리는 희어진다. 화장실에 가면 쪼그려 앉기가 힘든데, 인사를 하려다 무릎이 꺾어진다. 이것이 노인이 반대로 하는 것이다(夜不臥而晝瞌睡, 子不愛而愛孫. 近事不記而記遠事, 哭無淚而笑有淚. 近不見而遠却見, 打却不疼, 不打却疼. 面白却黑, 髮黑却白. 如厠不能蹲, 作揖却蹲. 此老人之反也)”

 

노인지반(老人之反), 노인이 젊은이와 반대로 하는 행동을 뜻한다. 밤잠 없고 손자만 사랑하고 아득한 옛일만을 기억하는 노인도 스스로가 가엾을 때가 있다. 잠 못 이루는 밤의 무게가 마치 나이의 질량 같다. 누구도 늙음을 탓할 수 없다.

김동철(전 중앙일보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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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인성리더십 포럼 대표, 교육학 박사, 시사·문화평론가, 전 중앙일보·월간중앙 기획위원, 명지대·성결대 강의

'환생 이순신 다시 쓰는 징비록'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