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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지금 ‘멘붕’

category 칼럼/인생2막 시론(時論) 2016. 11. 3. 15:18

대한민국은 지금 ‘멘붕’

  • 선장 잃고 표류하는 대한민국 호

혼용무도(昏庸無道)!

무능하고 어리석은 군주로 인해 세상천지가 어지럽고 백성들 간 지켜야할 법과 도덕이 사라졌다는 말이다. 강남의 한 아줌마로 인해 나라의 근간이 뿌리 채 흔들리는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이다. 이때 북한의 기습침공이라도 있다면 누가 나서서 어떻게 막을 것인가. 국정 컨트롤 타워가 흔들리는 마당임으로 멘탈(mental) 붕괴, 멘붕을 심하게 느끼는 나날이다.

대한민국! 어떻게 만든 나라인가? 1945년 36년간 일본제국주의 식민지에서 해방되고 6.25 한국전쟁 이후 1960년대 초반 국민소득 70달러로 세계 최빈국가였다. 그 후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뤘고 그 바탕위에서 IT 기술 발달로 세계의 부러움을 한껏 샀다. 몇십 년 전 외국에 나갈 때마다 느꼈던 왜소감, 주눅도 많이 사라졌다. 세계 10대 국가라는 위상에 맞게 자존감도 한껏 높아졌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강남의 한 아줌마가 분탕질을 치는 바람에 대한민국의 국격은 땅에 떨어졌고 외신에서조차 만신창이가 됐다. 날개도 없이 추락하는 대한민국은 급전직하, 맨땅에 헤딩하는 처참한 몰골이 나타나고 있다.

 

선장을 잃은 대한민국 호(號)는 망망대해에서 표류하고 있다.

 

표류하는 배.

 

선장 없는 대한민국 호는 갈 방향을 잃은 채 망망대해를 떠다니고 있다. 국민들은 그야말로 멘붕 상태이다. ⓒMilaCroft/Shutterstock

 

환갑을 막 지난 60세 최순실. 그녀는 박근혜 대통령과의 친분을 내세워 호가호위(狐假虎威)를 일삼고 국민의 세금을 자기 주머니에 채우고 곳간에도 쏟아 부었다. 국가 비밀로 분류되는 국가 정책 자료도 먼저 받아보는 등 국정 농단(壟斷)에도 앞장섰다. 최순실이 청와대의 ‘비선실세’라는 소문이 퍼지자 온갖 똥파리와 바퀴벌레들이 그녀 주변에 끈을 대기 위해 몰려들었다.

최순실은 청와대 수석을 내세워 대기업의 팔을 비틀어 수백억 원의 돈을 끌어 모았다. 장관, 차관, 공기업 사장, 청와대 수석비서관, 행정관이 되고 싶은 사람은 최순실의 눈도장을 찍기 위해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최순실이 사는 집 부근으로 이사를 왔고 그녀가 다니는 사우나, 마사지숍, 식당, 술집, 카페 등에 몰려들었다. 대기업 부인, 고위공직자 부인, 기업가 등은 최순실의 ‘8선녀’로 분류되고 그녀는 교주로 행세했다.

청와대 비서관과 행정관은 비밀로 분류되는 국정 주요정책 파일과 태블릿 PC를 최순실에게 갖다 바쳤다. 대통령의 연설문을 고치는 게 최순실의 취미라는 증언도 나왔다. 또 국민체조 ‘늘봄’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대통령을 아바타로 출연시켜 춤을 추게 했다. 줄곧 문화융성을 주창한 대통령 뒤에는 최순실이 숨어서 기획 감독했다. 대통령은 최순실에게 철저하게 속은 아바타이자 피에로였다.

 

한 강남아줌마에게 놀아난 꼭두각시 대통령

최순실은 청와대 ‘문고리 3인방’ 비서들을 꽉 잡고 있었다. 그 옛날 한나라 때 환관 10명이 나라의 권력을 농단했던 십상시(十常侍)를 연상케 한다. 문고리 3인방 비서들은 그녀의 전 남편(정윤회)과 함께 의원시절부터 박근혜 대통령을 줄곧 모셔왔던 측근들이었다. 최고권력의 문고리를 담당하면서 국무총리나 장관, 어느 누구도 대통령을 독대하기 힘든 구조를 만들었다. 대통령은 사실상 최순실 세력에 의해 유폐되어 있었던 셈이다. 지난해 ‘정윤회 문건유출사건’을 수사했던 경찰관 박모 씨는 ‘우리나라 최고 권력자 1위는 최순실, 2위는 정윤회, 3위가 대통령’이라고 언론에 밝혔지만 그대로 묻혔다.

최순실은 함량미달인 자기 딸을 이화여대에 승마선수로 특례 입학시켰다. 학점조작에 관여된 총장과 교수들은 “어서 옵쇼, 무엇을 도와드릴깝쇼?” “더 필요한 거 없나요?”하고 ‘공주님’에 대해 머리를 조아렸다. 그 공손한 태도에 대한 보답이었던지 수십억 원의 국책사업이 학교로 흘러들어갔다.

 

여 승마선수.

 

최순실 딸이 이화여대에 승마선수로 특례입학했고 학점 조작에 관여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Madhourses/Shutterstock

 

최순실이 지휘하는 비선실세 가운데는 강남의 ‘호빠(호스트 바)’출신도 있었다. 최순실에게 ‘공사친’ 그 호빠는 가방 제조업체를 설립, 그 회사 가방을 대통령이 홍보대사처럼 들고 다녔다. 그 후 그는 최순실이 세운 한 회사의 대표가 됐다.

국가지도자가 일개 강남 아줌마의 조종과 농간(弄奸)에 놀아난 꼭두각시였다는 말은 제발 개꿈이길 바란다. 그러나 강남 아줌마의 마각(馬脚)은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다. 최순실은 수천만 원짜리 명품 외제가방을 가지고 다녔지만 대통령에게 납품된 지갑과 가방은 그 십분의 일도 안 되는 싸구려(?)였고 대통령이 ‘늘봄’ 춤을 출 때 입은 체육복도 수만 원짜리 저가의 옷이었다. 옷값으로 치면 최순실은 분명 대통령보다 훨씬 더 높은 신분임을 엿볼 수 있다.

자업자득일까. 박근혜 대통령은 20대 때부터 최순실 아버지와 인연을 맺었다. 최태민 목사. 1974년 8.15 경축기념식장에서 영부인(고 육영수 여사)이 일본 조총련의 사주를 받은 괴한의 총격으로 사망했다. 그때 프랑스 유학중이던 23살의 영애(令愛)는 급거 귀국해 어머니의 빈자리를 메우는 퍼스트레이디가 되었다.

 

자신을 미륵으로 칭한 한국의 라스푸틴, 최태민

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을 애도하며 슬퍼하던 영애에게 어느 날 대전의 최태민이라는 목사가 편지를 보냈다.

어머니 육영사 여사가 나의 꿈에 나타났다. 앞으로 어머니 목소리를 듣고 싶으면 나를 만나라.

실의에 빠져있던 23살 영애의 공허한 심리상태를 십분 이용하려는 술책에 불과했지만 얼마 후 최태민 목사는 청와대에서 영애를 만났다. 그 때부터 특유의 교묘한 심령술을 발휘해 인연을 계속 이어갔다. 그리고 자신의 딸 최순실을 영애의 ‘말벗’으로 곁을 지키도록 했다. 그래서 최순실은 박대통령과의 40년간 친분이 이어졌고 ‘피보다 진한 물’이 됐다.

 

라스푸틴 사진.

 

재정 러시아를 몰락하게 만든 라스푸틴의 사진. 최순실의 아버지 최태민 목사는 한국의 라스푸틴으로 불린다. ⓒEverett Historical/Shutterstock

 

최태민 목사는 고려말 공민왕 때 요승(妖僧) 신돈보다는 재정 러시아를 말아먹은 괴승(怪僧) 라스푸틴을 꼭 빼닮았다. 최 목사는 청와대를 다녀온 뒤 혹세무민으로 사리사욕을 채우고 호가호위(狐假虎威)로 부(富)를 일군 협잡꾼으로 평가된다. 일제(日帝) 때 순사 출신인 최태민은 1970년대에 승려와 목사를 참칭했다. 불교-기독교-천도교 교리를 합친 ‘영혼합일법’(일종의 최면술)에 기초한 ‘영세계(靈世界)’를 주창했다.

스스로 미륵이자 태자 마마를 자칭하는 신흥 종교인 ‘영생교’의 교주가 됐다.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정보기관의 여러 채널 보고에 따라 최태민 목사를 불러 엄히 국문(鞠問)했다. 그리고 영애에게 “다시는 만나지 마라”며 호된 질책을 했지만 영애는 고(故) 육영수 여사의 현몽(現夢)을 앞세운 최태민을 평생의 ‘멘토’로 따랐다. 1994년 사망한 최태민은 그의 후계자로 자기 딸 최순실을 찍었다. 그러니 최순실은 최태민에 이은 2대 교주가 되는 셈이다. 최태민은 모두 7명의 부인을 뒀는데 그 5번째 부인의 딸이 최순실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 앞에서 어느 누구라도 ‘멘토’인 최태민 목사를 거론하는 것을 금기시 했다. 거론하는 자에게는 ‘천벌을 받을 것’이라며 앞장서서 방어막을 쳤다.

지난 2007년 주한 미국대사관은 “카리스마가 있는 고 최태민 씨는 인격 형성기에 박근혜 후보의 심신(body and soul)을 완전히 지배했다(had complete control). 그 결과 최태민의 자녀들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는 전문을 본국에 보냈다.

“박근혜 후보와 최태민씨의 ‘특이한 관계(unusual relationship)’”라는 표현도 등장한다. 또 “박 후보의 반대 세력들은 최태민 씨를 ‘한국의 라스푸틴’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최면술을 이용한 교묘한 꾐에 빠져버렸다는 것이다.

아! 대한민국의 끔직한 비극이여. 사이비 종교 교주와 간신, 내시에 휘둘려온 대통령은 그의 꿈과 정반대로 어리석고 무능한 혼군(昏君)의 길을 걷고 말았다. 훗날 역사는 어떤 평가를 내릴지.

김동철(전 중앙일보 기획위원) 모든기사보기

이순신 인성 리더십 포럼 대표, 교육학 박사, 시사·문화평론가, 전 중앙일보·월간중앙 기획위원, 명지대·성결대 강의

'환생 이순신 다시 쓰는 징비록'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