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캥거루족과의 동거

category 칼럼/인생2막 시론(時論) 2016. 7. 13. 07:45

오냐 오냐 키우다 올가미에 걸린 부모

코리안 맘(Korean mom)의 자녀사랑은 끝이 없다.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옥이야 금이야’ 하며 사랑을 듬뿍 쏟고, 옆집 아이보다 학원을 하나 이상 더 보내야 직성이 풀리고, 남보다 더 맛있는 음식 먹이고, 철마다 멋진 때때옷으로 갈아입혀야 마음이 편해진다. 마치 종교를 가진 사람이 이유 불문하고 무조건 ‘차카게 살자’를 실천해야 죄 짓지 않는 것 같아 개운해지는 ‘착한 사람 증후군(nice guy syndrome)’이랄까. 아이들이 떼를 써도 “오케이!” 그러다 보니 버릇없는 아이들의 평생 인질로 잡혀 사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무조건 공부를 잘 해서 그 대학 가야 한다. 알쥐?” 부모와 자녀와의 이 같은 굳건한 약속은 때론 부모의 못다 이룬 꿈을 자식이 대신 이뤄 주리라는 대리만족일 때도 있다. 70년대 중반 고교 졸업 때 대학 입학원서를 앞에 두고 한 친구는 담임 선생님의 강요에 전혀 다른 인생의 길을 가게 됐다. 자신은 상과대학을 가서 장사로 돈을 많이 벌고 싶었으나, 담임 선생님은 “너 이놈 미쳤냐? 이 정도 성적이면 그 학교 배지 다는 데 충분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잔말 말고 이 대학 원서에 도장 찍어.”

“우리나라는 농업국이다. 그래서 농사를 잘 지어서 크게 성공하면 돈 번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그 까까머리 친구는 농대로 갔고 평생을 진로에 대해 번민하며 불행한(?) 삶을 살아왔다. 당시 학교와 교사는 그 학교에 몇 명의 학생이 합격했느냐에 따라서 교장과 담임 선생의 평가가 좌우됐기 때문이었다.

코리안 맘들을 자녀가 중고교, 대학, 군대를 전역한 뒤에도 여전히 취직 걱정, 결혼 걱정, 손자손녀 육아 걱정을 하다가 한평생을 보낸다. 이른바 헬리콥터 맘인데 자녀들의 머리 위에 떠서 “이것이 더 좋다, 저것은 절대 안 된다” 충고(아이들은 잔소리)하느라 한평생 다 까먹는다는 말이다. 비로소 죽어야 영원한 안식처를 찾을 것이다.

 

캥거루족 현황 그래프.

부모들의 자식들에 대한 걱정은 끝이 없다. 자식들이 힘들어지면서 다시 부모에게로 돌아와 의지하는 캥거루 족이 늘고 있다. ⓒ김동철

 

그렇게 애지중지 키운 자식이 부모와 껌딱지처럼, 또는 젖은 낙엽처럼 초강력 접착제로 붙인 듯 찰싹 달라붙어 한평생을 가는 풍속도를 요즘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렇게 독립할 나이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우산 아래에 들어와 비바람을 피하는 의존적인 젊은이들을 캥거루족이라고 부른다. 자신의 새끼를 품에 품고 다니는 캥거루!

‘품안에 자식’을 모두 다 떠나보내고 외로워진 부모들이 앓는 빈둥지증후군(empty nest syndrome)은 이제 옛말이 된 듯하다. 오늘날 우리나라 젊은 청춘들은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 신세이고, 근속연수 1년 11개월 29일짜리 비정규직이 대부분이다. 이런 처지의 젊은이들에게 “왜 홀로서기를 하지 않느냐” “독립하려는 자립심이 있긴 한 것이냐”고 물어보는 것은 정말 염장 지르는 소리일 것이다.

 

삼포세대 젊은이, 절절한 부모 마음

요즘 젊은이들은 벌이가 시원치 않으니 연애도 맘대로 못하고 큰 언니, 고모, 이모, 옆집 아줌마의 육아(育兒)를 지켜보면서 도저히 사교육비를 댈 자신이 없어 결혼을 포기한다. 또 평생 한 푼도 안 쓰고 안 먹고 돈을 모은다고 해도 ‘인 서울(in Seoul) 아파트’는 죽었다 깨어도 절대 구입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어머니 왜 저를 낳으셨나요?” “나는 어느 별에서 온 누구인가?” “누가 인생을 아름답다 했나?” 하는 노래구절을 떠올리며 ‘고독한 철학자’가 된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3포(抛) 시대 젊은이들의 절망과 분노는 자칫 다이너마이트 화약과 같아서 건드리면 터진다. 또 럭비공과 같아서 어디로 튈지 모른다.

 

부모 의지하는 자녀를 빗댄 신조어.

부모에게 의지하는 자녀를 빗댄 신조어들이 계속 늘고 있다. 경제상황이 어려워지면서 삼포세대라 불리는 이들이 늘면서 생긴 현상이다. ⓒ김동철

 

1990년 일본에 처음 갔을 때 대부분 샐러리맨은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교외에서 살고 있었는데 마천루(摩天樓)처럼 천정부지(天井不知)로 치솟는 비싼 집값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다. 고단한 샐러리맨들은 퇴근 후 전철역 부근 이자카야에서 사케 한 잔에 오뎅을 서서 먹고는 후다닥 기차를 타러 뛰어갔다.

정말 요즘 우리의 젊은이들 처지를 보면 딱하기 그지없다. 사람이 모자라는 중소기업은 절대 안 가고, 모두들 노량진 공무원 학원에 모여들어 공무원, 대기업, 공기업 시험에 목을 매고 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부모나 당사자나 다 같이 답답한 노릇일 것이다. 이런 젊은이의 꿈과 좌절을 다룬 ‘레알(real) 스토리’의 신파조(新派調) 영화가 나온다면 그야말로 대박칠 것이다. ‘찌질한’ 인생, 불쌍했다가 천신만고 끝에 성공하는 ‘뻔한 이야기’이지만 그런대로 극장은 장사진을 치고 문전성시가 되지 않을까. ‘눈물 없이 볼 수 없어 반드시 손수건을 준비해주시압. 극장 주인백’이라는 구닥다리 고전 카피라도 붙는다면 개봉박두에 인터넷 예매는 박이 터지지 않을까 말이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올라탄 모 대학 교수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을 써서 일약 스타강사가 되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그래서 ‘청춘은 아픈 것이고 청춘이 아픈 것은 당연하다?’ ‘나도 그때는 그랬었다. 그런데 절대 실망하지 말고 열심히 노~오~력한 결과, 오늘날 이렇게 스타강사가 되지 않았느냐?’ ‘여러분도 노~오~력하면 개천에서 용 날 수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아픈 것은 청춘만이 아니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인생 자체가 아픈 것이다.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죽는 것,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운명을 피할 수 없는 인생은 본질적으로 외롭고 두렵고 아픈 것이다. 그래서 종교가 그 쓸쓸한 인생을 치유하고 위로해 주기 위해서 나름 역할을 하고 있다.

나는 ‘인생’이라고 쓰고 ‘고단함’이라고 읽는다. 그러나 그 고단함 속에 희로애락(喜怒哀樂)이 들어 있어 그런대로 인생은 살 만하다고도 생각한다.

젊은이들이 취직이 안 돼서 ‘아픈 청춘’이 되는 현실을 딱히 누구의 죄라고 단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대학 진학률이 80%가 넘는 데 비해 모두가 희망하는 번듯한 직장(공무원, 공기업, 대기업 등)의 문은 5% 정도 열려 있어 턱없이 좁기 때문에 생기는 당연한 결과다. 전문용어로 수급의 불균형. 수요와 공급의 미스매치(mismatch) 때문이다.

최근 또래 한 여성으로부터 귀가 번뜩 띄는 ‘특종감’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기존에 살던 노후 아파트를 처분하고 수도권의 새 아파트로 옮겨가려는데 막상 아파트 크기를 먼저 생각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부모와 아이 인형.

부모를 뜻하는 ‘친(親)’ 자는 나무 위에 올라서서 저 멀리 아이가 오는 걸 기다린다는 뜻이다. 부모는 자식이 실패하든 성공하든 언제든지 기다린다. ⓒ김동철

 

“결혼한 자식이 이혼하고 돌아올 때를 대비해서 방이 많은 큰 평수를 계약했다”는 말이다. OECD 국가 중에서 이혼율이 가장 높은 코리아에는 ‘돌싱(돌아온 싱글)’ 또한 많은 게 사실이다.

그 여성의 말은 이어졌다.

“요즘 애들, 맘에 안 들면 그냥 이혼하고 집에 돌아온대요. 그러니 새끼라도 달고 오면 살 방이 있어야 하잖아요.”

부모를 뜻하는 ‘친(親)’ 자를 풀어보면 집 마당의 나무(木) 위에 올라서서(立) 저 멀리 동구 밖을 바라본다(見)는 형상이다. 해 질 무렵 자식이 돌아올 때를 기다리는 부모의 애타는 심정이 절절히 밴 글자이다.

‘캥거루라도 좋다. 건강하게 내 곁에 있어만 다오. 쥐구멍에도 햇볕 들 날이 있겠지?’ 부모의 마음은 그런가 보다. 특히 코리안 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