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어떤 갑(甲)질, 진짜 갑질?

category 칼럼/인생2막 시론(時論) 2016. 7. 13. 07:47

국회의사당부터 기업까지, 갑질 전성시대

갑질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막 출범한 20대 국회 여야 의원 가운데 자신의 친척이나 자녀를 보좌관이나 비서관으로 채용하고 있음이 명백하게 밝혀졌다. 해당 의원들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내세울지 몰라도 이것은 국민 세금이 줄줄 새는 것이어서 전수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 더구나 국민정서상 용납이 안 되는 슈퍼 갑(甲)질의 전형이다.

지금 시대는 청년실업난으로 3포(연애, 결혼, 출산 포기)시대니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 시대니 하는 암울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의원들이 사회통합을 위해서 경제 양극화를 위한 법안을 내놓아도 모자란 판이다. 국회의원 한 명이 가져가는 세비와 부수경비, 최대 9명의 보좌진을 채용할 수 있고 ‘삐까번쩍한’ 검은색 그랜저 승용차 등은 모두 국민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운영된다. ‘무노동 유임금’으로 지탄을 받는 마당에 국민세금으로 ‘가족 회사’를 운영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돈 위의 왕 갑질.

20대 국회의원 중 많은 수가 자신의 친인척을 보좌관이나 비서관으로 채용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국회의원조차 이렇게 ‘갑질’을 하는 정도이니, 이 사회에 만연한 갑질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다. ⓒiDraw/Shutterstock

 

‘슈퍼 갑질’ 기업인들도 여론의 도마에 오르고 있다. 대림산업 L 부회장과 MPK그룹 J 회장, 현대 비앤지스틸 J 사장 등이 그 당사자들이다. L 부회장 운전기사로 일했던 이들은 인격비하적 욕설 등 상습적 폭언과 교통법규를 어기라는 위험천만한 지시를 받았다. 또 운전기사를 상시 모집해 예비기사가 맘에 안 들면 사전 통보 없이 잘라서 한 해 동안 40명의 운전기사가 왔다갔다고 한다. 또 J 사장의 운전기사 갑질 매뉴얼은 충격적이다. 매뉴얼에 따르면 수행기사는 사장이 아침 모닝콜을 받을 때까지 전화를 수도 없이 해야 했다. ‘가자’라는 문자가 오면 번개같이 튀어 올라가야 했다. 빨리 가자고 하면 신호, 차선, 버스전용차로를 대부분 무시하라는 내용도 담겨있다. 만일 매뉴얼대로 못하면 모욕적인 언행과 폭행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3년 남양유업의 대리점 갑질 사건, 2014년 대한항공 땅콩 회항 사건, 그리고 몽고식품 K 회장의 운전기사 폭행, 라면이 익지 않았다며 비행기에서 승무원을 폭행한 중견 식품기업 회장, 지방 병원 병원장이 제약회사 직원들에게 거액의 리베이트를 상납 받고 갑질했던 사건 등등. 지금 대한민국은 천박(淺薄)한 자본주의(Paria Kapitalismus)가 판치고 있다.

 

우리시대의 비극, 갑질을 꿈꾸는 젊은이

나이든 기성세대만 그런 게 아니다. 사회에 진출하려는 젊은이들도 궂은 물이 들어 온통 한 통속이라는 말이 나온다. 로스쿨에 들어가는 데 자기소개서에 아버지의 직업으로 위세를 떨치려 했던 경우가 속속 밝혀졌다. “우리 아버지는 지방법원장, 부장검사, 시장, 국의의원, 대기업 계열사 사장, 하다못해 구(군)의원 등”이라고 적어냈다는 것이다.

자녀들이 아버지 직함을 가져다 쓰는 이유는? ‘아버지 정도의 빽(back)이면 시험관도 어쩔 수 없이 마음이 움직일 것이다’ 라는 자만한 마음에서 일 것이다. 젊은 세대의 이런 천박한 인식이 있는 한 갑질 논란은 다음 세대에도 ‘뜨거운 감자’로 떠오를 가능성이 농후하다. 아마도 이런 류의 보도를 보면서 “나도 그런 위치, 그런 아버지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또 다른 젊은이들의 ‘금수저 꿈’이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소리치는 상사와 놀라는 부하직원.

아버지, 할아버지 ‘빽’으로 살아가려는 금수저들을 바라보는 평범한 젊은이들이 그를 비난하기보다 부러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Billion Photosw/Shutterstock

 

한번 인생 너나 나나 속물이기는 모두 마찬가지다. 이 꼴 저 꼴 보기 싫다면 무릉도원에 들어가 신선(神仙)으로 살든가 아님 세상 등지고 암자에서 면벽(面壁) 수행하는 수밖에 없다. 어차피 경쟁사회에 산다는 것은 남보다 앞서기를 바라는 인간 본능이 지시한다. 그래서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는 하이에나나 사람이나 매일반이다. 영국 BBC다큐멘터리인 ‘동물의 왕국’을 자주 보는 필자로서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정글링 법칙은 살아있는 모든 것에 다 해당되는 실존하는 생존 게임이라고 믿는다.

만물의 영장(靈長)인 인간도 예외일 수 없다. 다만 이성을 가지고 생각할 수 있는 능력자인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ce)는 그럼에도 1차원에 머무는 약탈 본능에서 몇 단계 뛰어올라 자리이타(自利利他, 자기와 남에게 도움이 됨)의 상생(相生)을 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바람이다.

매 맞는 운전기사도 누군가의 아들이고 남편이고 아버지일 수 있다. 때리는 회장님, 사장님도 마냥 그렇게 영원히 잘 나간다는 보장도 없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 정신이 절실히 필요해 보이는 우리시대 비극이다.

 

진정한 갑질에 대한 추억

80년대 초 필자가 신문사 초년기자 때의 일이다. 사회부에서 경찰서를 출입하는 사건기자를 ‘사츠 마와리(さつまわり, 察回り)’라고 부른다. 철창을 배회한다는 뜻의 일본말이다. 새벽 4시 기상, 새벽안개 속에 승용차(집과 출입처가 너무 멀고 그 시각에 대중교통이 없어서 필자는 월부 차를 일찍 뽑았다)를 몰고 ‘나와바리(區域)’ 경찰서로 향한다. 경찰서 전에 병원 응급실, 영안실을 먼저 들러 간밤에 어떤 환자, 사망자가 있었는지 확인한다. 졸음에 긴 하품을 하는 야근 간호사에게 스타킹이나 초콜릿도 가끔 선물한다. 경찰서 앞 직할 파출소에 들러 호흡 조절용 ‘스모킹 건’을 일발 장진, 발사하고 경찰서 정문으로 직행한다. 형사계 당직 형사에게 “하이! 형님! 뭐 없지?”하고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전날 밤 관할 검찰청에 송부한 사건 기록을 뒤진다. 수십 페이지의 영창청구서 제목만을 휙휙 날리며 읽는다.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의 5공화국, 공안정국이라 “물러나가 군사정권!”의 대학생 데모가 심했다. 2층 정보과, 대공과에 올라가서 “어제 잡혀온 애들 몇 명? 어딨어?” 확인하고 머릿수를 일일이 세어서 장부와 비교한다. 그리고 6시 정각에 시경 캡(사츠 마와리의 왕)에게 보고하는 데 서울 시내 5개 라인에서 동시에 전화를 하면 걸릴 확률은 20%. 혹 다른 나와바리의 보고가 길어지고 겨우 경찰청 기자실 여직원과 연결되면 “지금 시간(6시 넘은)에 캡이 전화 안 받아요” 또는 “주무세요. 이따 하세요”라는 답을 듣곤 했다. 때론 수화기 너머에서 기자실 벽에 부딪히는 전화기 파열음, “지금 몇 시야, XXX. 보고 안 받아! XX”하는 공포분위기가 귓전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갑질에 관한 설문조사.

‘귀하에게 갑질을 한 사람은 누구입니까’라는 설문조사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사람이 직장상사였다. 하지만 진짜 ‘갑질’도 존재한다. ⓒ김동철

 

천만다행으로 캡과 연결되는 경우도 있다. “이거하고 저기하고 기사 보내. 글구 오늘 건국대 대규모 집회. 가봐” 시경 캡은 직급으로는 차장 아래 고참 평기자였지만 그 역할과 기세가 대단했다. 신문사 다른 부장들도 함부로 못 건드리는 ‘리틀 킹’이었다. 그의 임무는 아침에 수하들을 한바탕 깨고(고함 지르고) 저녁에는 사츠 마와리 1, 2진 십여 명을 데리고 곱창집에서 대글라스(맥주잔)에 소주를 가득 채워서 “좌로 돌려! 우로 돌려!”하며 마시게 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차 맥줏집까지. 술자리에서는 나라와 사회가 썩을까봐 소금이 되어야 했고 어두운 곳에 빛을 비추려는 ‘정의의 사도’라는 자부심도 심어주었다. 그러다보니 시경 캡은 맨날 곤드레만드레 귀가시간이 새벽이었다. 그래서 회사는 운전기사 딸린 취재차량을 새벽마다 그의 집에 보내 시경 기자실로 출근시켰다.

 

당시 현장의 기자는 경찰서장 전화통을 빌어 신문사 데스크 쪽으로 기사를 부르는 것인데, 미리 기사를 써놓았다고 해도 ‘갱상도’ 사투리가 심한 선배와 통화하게 되면 발음문제로 시간 다 까먹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이런 스파르타 훈련 덕분에 오늘날 글을 쓰는데 도움이 조금 됐다고 하면 ‘선배들의 갑질도 나쁘지만은 않았다’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