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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이혼 함부로 하지 맙시다

category 칼럼/인생2막 시론(時論) 2016. 7. 25. 22:44

황혼이혼은 독립선언?

결혼생활을 20년 이상 한 부부들의 이혼을 황혼이혼(黃昏離婚)이라고 말한다. 1990년대 일본 경제가 불황기에 접어들면서, 퇴직금을 수령한 이후에 이혼을 하는 봉급생활자들이 늘어났다. 그 황혼이혼이란 말이 우리나라에 수입되어 널리 쓰이고 있다.

애들 대학만 들어가 봐라. 내 가만있나 봐라…

젊은 시절 부인이 남편 꼴 보기 싫다고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내뱉은 이 말은 정말 무서운 복수, 훗날 ‘오멘의 저주’로 드러나기도 한다.

 

서류에 사인을 권하는 시니어 부부.

애들 클 때까지만 참는다는 말이 이제 공수표가 아니라 실제 이혼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 황혼이혼은 급속도로 많아지고 있다. ⓒPhotographee.eu/Shutterstock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황혼이혼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2010년 전체 이혼의 23.8%를 차지했던 황혼이혼은 2012년에 26.4%로 증가하며 신혼이혼을 넘어섰고, 2014년에는 역대 최고치인 28.7%를 기록했다. 이 통계를 보면서 필자는 황혼이혼의 원인을 늙어가는 상대를 아껴주고 불쌍히 여기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이 모자라서 생기는 ‘그 놈의 욱하는 성깔머리’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서로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서 배려하려는 역지사지(易地思之) 정신이 메마르다 보니 툭하면 멱살 잡고 소송하고 그 덕에 변호사는 싸움을 붙여서 돈 벌 궁리를 하고 있는 게 오늘날 현실이다.

여하튼 일본의 황혼이혼 세태가 우리나라에 상륙해 널리 퍼지고 있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불량 수입품’이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백년해로(百年偕老)할 것을 명한다”라는 주례사의 엄명은 이제 헌신짝처럼 버려지기 일쑤다.

황혼이혼은 보통 여성이 제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제까지는 내가 희생했으니 이제부터는 내 인생을 찾겠다”는 ‘독립선언’에서 시작한다. ‘잃어버린 내 인생을 찾겠다!’ 그것은 여성의 정당한 권리선언으로 누가 시비 걸 거리가 아니다. 아이들도 다 컸고 이제까지 고생한 대가를 찾아야겠고 젊은 날 집에서 가정살림하면서 해보지 못했던 것을 실컷 하다가 죽겠다는 결기마저 묻어난다.

사실 그 독립선언에는 여성의 경제적 여유와 민주주의의 발달로 여권(女權)이 크게 신장됐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여성의 경우 재산형성 과정에 일정 부분 기여를 했기 때문에 당연히 위자료나 재산분할 등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는 점이 든든한 배경일 것이다.

 

이판사판하면 초라한 노년의 시작

부부간에는 살아온 세월만큼 고운 정 미운 정이 쌓인다고 하지만, 그 정(情)만 가지고서는 다른 부족한 2%를 채우는데 많이 모자라는 모양이다. 그래서 어떤 황혼이혼 당사자는 성격차이를 앞세워 “내가 진짜 좋아하는 스타일과 일생일대 연애 한번 화끈하게 하고 가는데 소원”이라며 돌발 행동을 서슴지 않는 경우도 봤다.

은퇴 후 집에서 부인이 삼시 세끼를 챙겨줘야 하는 ‘삼식이’ 남편, 아내가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언제 오느냐?” “누구 만나러 나가느냐?” “왜 늦게 술 마시고 다니느냐?”면서 아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잔소리 하는 ‘바둑이’ 남편.

 

tvN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의 한 장면.

드라마에서 황혼이혼 당사자로 나오는 여성 주인공의 모습. tvN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의 한 장면. ⓒ김동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해서 아껴주려는 마음이라지만 듣는 아내는 왕짜증이다. 중년을 훨씬 넘어 노년기에 들어선 여성들은 남성호르몬 분비로 말미암아 점차 남성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반면에 여성 호르몬이 많이 분비되는 중년 이상 노년 남성은 점차 여성화되어 가정살림에 흥미를 느끼거나 뜨개질로 아내의 속옷을 만들어주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이런 여성화된 남성들은 이사 갈 때 자기를 떼어놓고 갈까봐 ‘젖은 낙엽’처럼 아내에게 찰싹 달라붙어 졸졸졸 뒤꽁무니를 따라다닌다.

 

간혹 자존심이고 자존감이고 다 없어진 뿔난 남편은 “이판사판 공사판이다. 다 때려치우고 각자의 길을 가자”며 이혼도장 찍으라고 호기(豪氣)를 부린다. 이때 남편의 마초본성은 곧 경제적 손실, 초라한 노년의 삶을 알리는 신호탄이 된다.

직장생활을 해서 20년 동안(1988~2008년) 국민연금을 부은 은퇴자의 경우, 60세 초반에 받는 완전노령연금 수급액은 보통 120만 원 정도다.

다음은 최근 뉴스를 통해 알게 된 내용이다.

 

‘부부가 이혼한 이후 전 배우자에게 국민연금의 분할을 청구할 수 있는 신청 기간을 연금 수급 사유가 발생한 날로부터 3년 이내에서 5년 이내로 연장하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해 11월말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분할연금을 받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일단 법적으로 이혼해야 한다. 이혼한 배우자가 노령연금을 타야하고, 이혼한 배우자와의 혼인 기간에 국민연금 보험료를 낸 기간이 5년 이상이어야 한다. 분할연금을 청구한 본인이 노령연금 수급연령(2016년 현재는 61세)에 이르러야 한다.

 

또한 국민연금보다 더 많은 액수를 두둑하게 챙길 수 있는 공무원 분할연금도 올해부터 실시된다는 뉴스가 나오자 공무원 사회에서 이혼을 겁내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여성인 A 씨(65)는 지난 2월 이혼하면서 “공무원으로 퇴직한 남편(70세)의 연금을 나눠달라”고 공무원연금공단에 ‘분할이혼연금’을 신청해서 남편 연금액(250만 원)의 절반가량인 120만 원을 받고 있다. 사립학교 교사로 퇴직한 남편(65세)과 지난 1월 이혼한 여성 B 씨(63세)도 사학연금공단으로부터 분할연금으로 지난 2월부터 150만 원씩을 받고 있다.

공무원, 교사가 황혼이혼을 할 경우 연금을 배우자와 절반씩 나누도록 하는 공무원연금법의 분할연금제도가 올해부터 시행되었기 때문이다. 분할연금은 연금가입자가 받을 총 연금액 중 결혼해 산 기간에 해당하는 연금액을 절반씩 나누는 제도이다. 공무원연금의 월평균 수령액은 242만 원, 사학연금 월평균 수령액은 280만 원이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기를 쓰고 공무원, 교사가 되려는 이유를 알만 하다. 여성공무원 C 씨는 남편의 외도(外道)로 이혼을 고려중인데, 이혼 후 남편이 재혼해도 자신의 연금의 절반을 떼어줘야 한다는 경제적 손실감에 애를 태우고 있다.

 

젊고 예쁘던 시절, 풋풋한 청춘남녀가 나이 들어서 재산분할 싸움 하려고 결혼했던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살다보니 세상의 갖은 때가 묻었고 당신 없이도 나 홀로 얼마든지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붙었다. 그래서 나온 헤어지자는 시나리오는 너무 슬픈 드라마다. ‘물건은 새 것이 좋고 사람은 오래된 헌 것이 좋다’는 속담도 이제는 고쳐져야 할 것 같다. 싫다고 가버린 사람에게 동반자적 동지애(同志愛)를 따지는 것 또한 늙은 ‘꼰대’ 같아서 그만 합죽이가 됩시다. 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