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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병 ’화’ 다스리기

category 칼럼/인생2막 시론(時論) 2016. 11. 23. 10:51

국민병 ’화’ 다스리기

  • Mrs. Choi 미스터리 게이트가 불러온

“약 오르고 화가 나서 미치겠다.”

“내 참 기가 막혀서. 할 말이 없다. 기부 업(give up)!”

“가슴에서 불이 나서 미치겠다. 얼른 냉수 한 사발 줘봐.”

요즘 만나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어처구니없다’며 볼멘소리만 늘어놓고 있다.

어처구니? 즉 맷돌 손잡이가 없으니 맷돌을 제대로 돌릴 수 없어 화가 잔뜩 난 모양이다. 이 모든 말의 밑바탕에는 뜨거운 화(火)가 숨어있다. 장전된 상황이므로 방아쇠만 당기면 곧바로 발사되는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현대 의학에서도 이 화(火)의 본질을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한방에서는 그저 무거운 돌덩이가 가슴 아래서 치밀어 올라 명치끝을 자극할 때의 답답함 정도로 풀이할 뿐이다.

유사 이래 수많은 외침을 받아온 한반도의 백성들은 아침에 “안녕하셨습니까?”하고 인사를 나눴다. 어제 밤, 죽지 않고 무사히 잘 지냈느냐는 뜻이다. “아침 드셨습니까?”도 임진왜란 때 먹을 것이 없어 사람끼리 서로 잡아먹는 인상식(人相食)을 경험했던 사실에서 나왔다.

중국과 그 변방 민족의 침략과 약탈, 그리고 공녀(貢女 여자를 바침), 포로로 잡혀가는 일을 수도 없이 당했던 한반도의 백성들 가슴 속에는 풀지 못한 울화가 한(恨)의 DNA로 남아있다. 그래서 외부의 부싯돌과 만나 부딪치면 즉각 터질 준비가 항상 되어 있다.

“뉴스 보기가 겁이 난다”는 한 50대 아주머니는 “그래도 궁금해서 뉴스 시간이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겁이 나지만 궁금증이 발동해서 뉴스를 봐야만 직성이 풀린다는 이야기다. 어떤 막장 드라마 못잖게 뭍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모으는 ‘Mrs. Choi 미스터리 게이트’는 그 중독성에서도 단연 최고의 시청률 기록을 뛰어넘고 있다.

세월이 흘러 훗날 2016년 11월의 ‘Mrs. Choi 미스터리 게이트’는 국정을 농단한 희대의 사기사건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것이다. 또한 대하소설, 영화, 대하드라마로 후세들의 관심을 받을 것이 확실시 된다. “아! 그 시절 한 여인의 치맛바람으로 나라가 망조(亡兆)가 들었구나”하는 쓰디쓴 교훈을 후세에 전해줄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부자 3대 가기 힘들다’, ‘창업(創業)보다 수성(守成)이 힘들다’는 항간의 말은 곧 인생무상을 말함이렷다. 무상(無常)! 세상 삼라만상(森羅萬象)은 모두가 시간과 함께 그 빛이 퇴색하게 마련이다.

“우리 사랑 영원히 변치 말자!”는 젊은 날 사랑의 맹세는 사실 ‘악의 없는 거짓(white lie)’일 뿐이다.

 

요즘 만나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어처구니없다’며 볼멘소리만 늘어놓고 있다. 이 모든 말의 밑바탕에는 뜨거운 화(火)가 숨어있다. ⓒOllyy/Shutterstock

 

요즘 만나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어처구니없다’며 볼멘소리만 늘어놓고 있다. 이 모든 말의 밑바탕에는 뜨거운 화(火)가 숨어있다. ⓒOllyy/Shutterstock

우리나라에만 있는 화병

다시 ‘국민병’이 되고만 화병(火病)을 살펴보자. 울화병인 화병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으로 미국 의학 사전에는 ‘Hwa-byung’으로 등재되어 있다.

‘화병’과 비슷한 맥락의 ‘화증(火症)’이라는 말은 조선 정조의 모친이며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부인이던 혜경궁(惠慶宮) 홍씨(洪氏 1735∼1815)가 쓴 ‘한듕록’에서 사도세자의 병세를 언급할 때 자주 나오는 말이다.

“화(火) 곧 나시면 푸실 데 없사오니…”, “화증(火症)을 덜컥 내오셔…”, “그 일로 섧사 오시고 울화(鬱火)가 되어시더니…”, “그 6월부터 화증이 더 하사 사람 죽이시기를 시작하오시니…” 하는 대목을 찾아볼 수 있다.

‘한중록 연구’의 저자 김용숙(金用淑)은 조선왕조실록을 인용하여 “세자에게는 두려워하는 병이 있었고 세자 자신은 화병이라 했으나 영조는 차라리 ‘발광(發狂)한 것’이라 했고, 사관(史官)의 말로는 증(症)이 발하면 역시 본성(本性)을 잃는다”고 했다. 그 사도세자는 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굶어 죽었다. 이 비통한 참극을 목격한 어린 정조는 훗날 비운의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 사도세자를 그리워한 나머지 수원에 화성을 축조하고 아버지의 궁을 만들어 효심을 보였다.

다음은 분노(憤怒)에 대한 서양 학자들의 이야기이다.

클라이드 내레모아는 “분노란 인간이 지위, 자존심, 신체적인 안정에 위협을 느끼는 데서 오는 강한 정서”라고 정의하고 있다. 즉 인간은 먹고 마시고 배설하는 생리적 욕구의 충족에서부터 지식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자기 실현의 욕구 충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목표가 있다. 이러한 “욕구 충족을 방해하는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서 지니는 정서”를 분노라고 본다.

그렇다면 내가 낸 세금이 어떤 한 개인에 의해 불의하게 쓰였다고 느꼈을 때 가지는 것은 분노라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또 아브함손은 분노를 연속적인 다단계 구조를 가진 감정으로 보고 이를 짜증(annoyance), 좌절감(frustration), 분노(anger), 격분(rage or fury) 등으로 분류하였다. 짜증은 누구나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좌절감은 목표를 추구하는데 걸림돌이 발생할 때 생기는 감정이다. 그리고 그 해결 대안이 없을 때 보다 강렬한 분노의 감정을 겪는다.

실직을 하였거나 또는 불치의 병에 걸렸을 때 당사자는 자신의 무력감에 분노를 느낄 수 있다. 분노가 극단으로 치달을 때 격분의 위기 상태가 도래하는데 이때 타인에게 해를 입히거나 기물파괴 같은 비이성적 감정이 분출되기도 한다. 또 이 힘의 에너지를 자신에게 돌리게 되면 피해망상으로 자해하거나 자살로 치달을 수 있다.

 

국민병이 남기는 후유증

참으로 이 시대 온 국민이 앓아야 하는 ‘국민병’은 나라를 말아먹고도 남음이 있는 거대한 쓰나미 같은 해악(害惡)이다.

지금 분출된 이 거대한 분노의 열정은 시간이 지나면 다 사라질 것이다. 허나 남은 후유증은 마음먹기에 따라 두 가지의 증세로 남을 것이다. 그 하나는 민나도로보데스(みんな泥棒です), 즉 “모두가 도둑놈!”이라는 상대불신이 커져 인간관계가 보다 험악해질 것이다. 그래서 권력(돈)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와의 위화감을 더욱 커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나라꼴이 말이 아닐 것이다. 율곡 이이(李珥)는 임진왜란 전에 선조에게 목숨을 내걸고 만언봉사라는 상소를 올렸는데 그 내용은 백성 사랑을 담은 충간(忠諫)이었다.

부부일심지대하(桴腐日深之大廈) 큰 집의 서까래가 썩어가는 게 나날이 심하니,

기국비국(其國而非國) 조선은 나라가 아닙니다.

또 다른 후유증은 불신에서 나온 정치 무관심이 계속되리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무관심하면 할수록 이를 즐기는 자들은 국민을 내다 팔면서 자기 잇속 챙기는 정상배(正常輩)들과 모리배(謀利輩)들뿐이라는 것이다. 이제 구중궁궐에서 일어나는 일에 보다 관심을 가지고 눈을 부릅뜨고 불침번을 서야할 것이다. 김영란법이 제대로 시행되는지도 모니터링 해야 한다.

365일 매시간 뉴스 모니터링을 하는 필자로서 세상만사에 일희일비를 하다보면 자연히 감정이 흔들리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감시자(watch dog) 역할을 포기할 마음이 전혀 없음을 밝혀둔다.

 

국민들 사이에서 지금 분출되는 거대한 분노의 열정은 “모두가 도둑놈!”이라는 상대불신이 커져 인간관계가 보다 험악해지고, 불신에서 나온 정치 무관심이 계속되는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 ⓒEric Crama/Shutterstock

 

국민들 사이에서 지금 분출되는 거대한 분노의 열정은 “모두가 도둑놈!”이라는 상대불신이 커져 인간관계가 보다 험악해지고, 불신에서 나온 정치 무관심이 계속되는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 ⓒEric Crama/Shutterstock

 

    김동철(전 중앙일보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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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인성리더십 포럼 대표, 교육학 박사, 시사·문화평론가, 전 중앙일보·월간중앙 기획위원, 명지대·성결대 강의

'환생 이순신, 다시 쓰는 징비록'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