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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인(眞人) 찾기 힘든 세상

호모 헌드레드(Homo Hundred), 이른바 100세 시대다. 우리나라는 65세 인구가 전체 인구의 14%를 넘어 이미 고령사회로 들어섰다. 지하철을 타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온통(?) 실버들로 북적인다. 마치 초고령사회(65세 인구가 전체 인구의 21% 이상)인 일본에 온 착각이 든다. 종로3가역은 노인천국이 된 지 오래됐고 어느 지하철 노선이건 간에 늙수그레한 사람들의 수가 훨씬 더 많이 눈에 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노약자석에서 넘쳐 일반석을 점령(?)한 지는 오래됐다. 앞으로 지하철 객차의 설계가 달라져야 할 것 같다.

다양한 인종의 시니어.
호모 헌드레드, 이른바 100세 시대다. 우리나라는 65세 인구가 전체 인구의 14%를 이미 넘어 고령사회로 들어섰다. ⓒRawpixel.com/Shutterstock

그런데 그 또래 연세 많으신 분들은 아들, 딸 시집·장가 모두 보내고 손주 재롱에 재미 붙이고 여생을 알뜰살뜰하게 쓰고 있는 중일 것이다.

문제는 ‘쉰 세대’와 ‘신세대’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놓인 ‘낀 세대’들이다. 위로는 부모님 간병과 공경에 힘이 부치고 아래로는 자녀들 직장, 결혼, 출산, 집 장만 등에 허리가 부러질 상황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정작 자신의 진로를 찾지 못해 헤매는 사람의 수는 무려 712만여 명이다. 이른바 6.25 한국전쟁 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다.

50세가 되면 직장인은 슬슬 조직에서 나가서 무엇을 해야 할까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인생 2모작 시대, 터닝포인트를 맞이하는 것이다. 필자의 터닝포인트는 우연찮게 찾아왔다. 찾아왔다기보다는 찾아낸 것이다. 사람을 만나는 업을 했던 기자 출신으로 인생 1막에서 ‘명함 장수’를 한 결과, 대체적으로 실망감이 앞섰다. 아둔한 필자가 아직 발견하지 못했는지는 몰라도.

“진짜 존경할 만한 사람은 고사하고 좋아할 수 있는 사람조차 손에 꼽을 정도다”

내가 속물이니만큼, 속물의 눈에는 속물만 보일 것이고 진인(眞人)이 눈에 안 들어오는 게 당연한 것이 아닐까. 필자는 고민했다.

그때 누군가는 말했다. ‘사람이기 때문에’ 그래서 실망을 줄 수 있으니 너그럽게 이해하라는 말이었다. 사람을 찾는 과정에서 매스컴에 나오는 많은 유명인사들 가운데 언론에서 근사하게 포장이 잘 된 나머지 일반인들은 그저 그 이미지로만 아는 수가 많다. 가끔 포장과 속내의 진면목은 하늘과 땅 차이처럼 전혀 딴판일 수가 있다는 가능성에 문을 열어두자.

‘인간이기 때문에 다면성을 가질 수 있다.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사람을 찾는 과정에서 필자는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사실을 발견했다. 시청역 편의점 아줌마, 남해 식당 여주인 등 이름 없는 민초들 가운데 진실로 사람 냄새 물씬 풍기며 성심성의껏 진의(眞意)를 보여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하늘에서 막 강림한 ‘살아있는 신(live God)’과 같았다.

 

‘흙수저’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닮다

수많은 고민 끝에 필자가 찾은 사람은 이순신 장군이다. 그는 왕족출신인 세종대왕과 달리, 우리와 똑같은 ‘흙수저’ 서민출신이었다. 할아버지 이백록은 중종 때 조광조의 난에 휩싸여 ‘역적’으로 몰렸고 아버지 이정은 벼슬의 뜻을 접고 유유자적 소일했다. 그러니 집안 경제가 풍족할 리 없었다. 결국 4남 중 셋째인 이순신은 10대 후반 온가족과 함께 출생지인 한양 건천동(마른내골)에서 어머니 고향인 아산으로 내려갔다. 그 후 그의 인생이 우여곡절, 간단치 않았음은 역사교과서에서 배운 바 그대로이다. 그리고 그는 온갖 역경에서도 백절불굴(百折不屈), 나라위한 살신성인(殺身成仁)으로 전장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순신 장군 초상화.
인간 이순신은 흙수저였다. 하지만 온갖 고난을 겪으면서 나라를 지켜낸 충과 효의 상징이다. ⓒ김동철

3년 전 필자는 카메라 한 대를 배낭에 달랑 넣고 남해안 유적지를 찾아 나섰다. 무안-진도, 여수-순천, 하동-남해, 통영-한산도-거제, 고성-사천, 진주, 진해, 부산 등지에서 400여 년 전 그의 흔적을 샅샅이 사진 속에 담았다. 사당에 참배하고 그와 단둘이서 오롯이 대화를 나눌 수도 있었다.

이순신 인성 리더십 밴드에서 선공후사, 멸사봉공, 임전무퇴, 살신성인, 필사즉생 등 이순신 정신에 꽂힌 몇몇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한 사업가는 “참 좋은 일인데 어떻게 후원할까”를 물었다. 그래서 필자는 난생처음 사업계획서라는 것을 써봤고 어떤 사업을 어떻게 할 것인지 연구까지 했다. 한 선배는 “이순신 정신의 고양을 국민정신 운동으로 승화시켜야 돼.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암!”이라고 충고했다.

그에게는 올바른 국가관, 사생관, 효도관 등 배워야 할 인성요소가 많다. 또한 순간순간 판단을 해야 하는 이 시대의 지도자들에게 장군의 지고지순한 리더십의 정신은 온고지신(溫故知新)의 교훈을 전하기도 한다.

 

끊임없이 서열을 매기는 사회


이 시대는 이기심이 팽배해 그저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탐욕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70~80년대 개발도상국으로서 산업화, 민주화를 일단 달성했고 이제는 IT 정보화시대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빨리 빨리’에 익숙했고 일등을 향해서 모두 ‘킵 온 러닝(keep on running)!’ 쉬지 말고 고지를 향하여 달렸다. 세계의 일류 자동차와 가전제품을 분해해서 다시 만들었고 명품 디자인을 베끼고 재창조했다. 모두들 일등이 되겠다고 한 쪽으로 뛰어왔는데 보니까 일등이 너무 많아서 다시 서열을 매길 수밖에 없었다.

학생이나 직장인이나 인생2막을 준비하는 자나 은퇴자나 무한경쟁시대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나 말고 남에게 관심을 가질 시간은 애초에 없었다. 배려는 일전 한 푼도 없는 빡빡한 사회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자, 둥그런 원이 하나 있다. 360도의 어느 한 지점을 향해서 뛰어가면 360명의 일등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성적순이라는 단 하나의 기준으로 학생들의 평생 등급을 나누고 말았다. 오늘날 새로운 패러다임을 맞이해서 창의와 배려, 상생이라는 새로운 가치가 요구되지만 학교교육은 시대에서 한참 낙오된 옛날 교과서를 그대로 가르치고 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에요”라는 광고카피도 있었지만, 모두들 한 곳으로 질주하는 상황에서 천박(淺薄)한 이기심만 조장됐고 천민(賤民) 자본주의를 초래했다. 신문지상의 뉴스를 보면 우리사회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알 수 있다.

ⓒalphaspirit/Shutterstock
강한 사람만 살아남는 무한경쟁 대한민국에는 천박(淺薄)한 이기심과 천민(賤民) 자본주의가 팽배하다. 나 말고 남에게 관심을 가질 시간은 애초에 없다. 배려는 일전 한 푼도 없는 빡빡한 사회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alphaspirit/Shutterstock

친구에게 노트를 빌려주어서도 안 된다. 아파트 평수 차이가 있는 친구와 놀면 안 된다. 아버지 직업을 따져서 잘 사귀어야 한다. 결혼 후 1년 동안 절대 아이를 가져서도 안 된다(이혼할지 모르니까). 스펙 낮은 건 이해하지만 얼굴 못생긴 건 평생 ‘루저’다. 강남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앞 건물은 모두 성형외과간판으로 도배했다. 전관과 현관은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며 나랏돈 빼먹기에 혈안이 되어있다. 재벌은 갑질하고 돈 가지고 정보, 경찰, 관세, 세무, 언론, 법조계를 주무르려 애쓴다. 핵을 머리꼭대기에 이고 사는데 군장성 출신 ‘군피아’들은 무기거래에서 거액의 국민세금을 빼먹고 있다. 크게 한탕 (사기)쳐서 잠시 (감옥)살다 나오면 여생이 편하다는 계산이다.

이런 혼돈의 시대에 우리는 어떤 진인(眞人) 을 따라 살아야 할 것인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자라나는 청소년들과 이땅의 청년들에게 어떻게 살라고 조언해야 할까. 제2의 인생을 살아 갈 우리 세대들은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까. 필자가 감명 받은 한사람, 이순신 장군의 인생처럼 주변의 진인(眞人)을 찾아 그들의 삶을 되짚어보는 시간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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