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9급 공무원과 인성교육

category 칼럼/인생2막 시론(時論) 2016. 8. 8. 17:11


일자리의 미스매칭

공무원 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당연히 청년 실업난이 가중되면서 빚어지는 사회현상이다. 고3과 재수생들이 노량진 공무원 학원가에 포진하고 있다는 소식은 구문(舊聞)이다. 이들은 선배들이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이란 암울한 현실에 좌절하는 것을 직접 목도함으로써 죽기 전에 살길을 찾아 나선 것이다.

우리나라 대학 졸업생은 또래 학령인구의 80%에 육박한다. 그 졸업생들이 제 입맛에 맞는 직업을 찾다보니 당연히 일자리 찾기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상황이 되고 말았다. 대졸자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직장에 다 들어갈 수 없음은 어쩌면 당연하다. 취준생(취업준비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선망의 직종은 공무원, 공기업, 대기업 등인데 전체 5% 정도밖에 안 된다. 그러니 가고 싶은 자들의 공급은 넘쳐나고 뽑고자 하는 곳의 수요는 한정되어 수급의 불일치, 전문용어로 미스매칭(mismatching)이 생기고 있다.

시험답지에 체크하는 모습.
공무원, 공기업, 대기업은 선망의 직업이지만 전체 5% 정도밖에 안 된다. 취준생들이 여기에 들어가려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과 비슷하다. ⓒConstantine Pankin/Shutterstock

급여나 근무환경, 복지 등에서 훨씬 떨어지는 중소기업에는 절대 안 간다는 신념(?)을 가진 취준생들이 늘어나면서 자발적 실업자가 급등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구인난을 겪고 한쪽에서는 취업난을 겪는 모순된 현실이 바로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공무원은 국민의 세금으로 봉급을 받고 나랏일을 하는 직업이다. 대과(大過)가 없는 한 정년 60세가 보장된다. 그리고 잘하면 퇴직 후 산하기관이나 관련 업체에 재취업이 가능하다. 그래서 한평생 가정꾸리고 살아가는 데 그만이다. 하는 일도 대기업에서처럼 무한경쟁시스템으로 고난도의 작업을 하지는 않는다. 9시 출근 6시 퇴근(5시 반부터 퇴근준비)이다. 또 새로운 아이디랍시고 냈다가 상사로부터 혼나는 직업이다. 그저 전부터 해오던 것을 그대로 잘 유지하는 게 유능한 공무원이다. 지난해 올렸던 기획안을 날짜만 바꾸어서 올려도 될 정도의 계속사업이 수도 없이 많다. 그래서 가장 덜 창의적이어야 칭찬받는 직업이다. 경제적으로 안정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두가 공무원을 택한다면, 이 나라의 ‘소는 누가 키울 것’인가.

 

9급 공무원이 부러운 변호사

최근 현직 변호사가 지방직 9급 공무원에 응시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로스쿨이 생기면서 변호사가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다 보니 그쪽 변호사 시장도 부익부 빈익빈(富益富 貧益貧)의 기울어진 마당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판검사 출신은 그나마 현관과의 관계로 인해 ‘전관예우’라도 받을 수 있어 나은 편이라지만, 변호사 자격증 하나 달랑 가지고 사회에 진출했을 때 ‘인적 관계망(human networking)’에서 한참 뒤지는 초임 변호사들의 설 자리는 비좁기만 하다. 그래서 재벌이 교도소 갔을 때 면회 가서 이야기 나누어 주고 심부름 대신 해주는 집사 변호사가 나타났고 선배 변호사가 물어온 사건의 의뢰인에게 접근해서 ‘빠르고 싸게’ 해주겠다고 가로채는 상어 변호사도 등장했다. 수익은커녕 관리비, 사무장 월급주기에 빠듯한 나머지 법원이나 검찰 출신 사무장을 CEO로 모시고 월급을 받는 변호사도 많다.

이번에 가장 말단인 9급 공무원에 도전한 변호사는 지난해 이미 7급 공무원 시험에 도전했다가 낙방했고 다시 직급을 낮춰 재도전했다고 한다. 광주시 인사규칙은 6급 이하 일반행정직 공무원 임용시험에서 변호사 자격증 소지자는 필수 3과목과 선택 2과목에서 과목별 만점의 5%에 해당하는 가산점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그러니 다른 응시자들보다 합격에 훨씬 유리하다. 9급에 임용되면 동사무소에서 등본, 초본 등 제증명 업무부터 맡게 된다.

9급 공무원 응시률.
누구나 선망하던 직업이었던 변호사가 이제는 9급 공무원보다 못한 듯 하다. 한 변호사가 9급 공무원에 응시해 화제가 됐다. 아마 가장 큰 장점은 안정된 삶일 것이다. ⓒ김동철

“그 어려운 법 공부를 하고서 고작 동사무소에서 그런 업무를 하는 게 맞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을 터이지만 ‘무슨 사연이 있는 법할’ 그 변호사의 직업선택의 자유나 사생활까지 침범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이 시대 사회적 지위의 변동이 변화무쌍하게 ‘업다운’하고 있다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9급 공무원은 더는 ‘말단’이 아닌 ‘안정적 삶’을 보장하는 직종으로 떠올랐다. 퇴직 후 국민연금의 2배 이상 되는 공무원연금수령 또한 공시족들의 분발을 촉구하고 있을 것이다.

9급 공무원 시험에 도전한 또 다른 사람 이야기. 대기업 임원출신인 A씨(55)는 회사를 나오자마자 여러 군데 재취업의 노크를 해보았지만 시큰둥한 반응만 경험했다. 그는 몇 년 동안이라도 안정적인 직장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에 노량진 공시족 학원을 찾았다. 필수과목인 국어, 국사, 영어라면 조금만 공부하면 될 것 같았다. 자식뻘 되는 젊은이들과 학원을 열심히 다닌 그도 9급 공무원 시험에 응시, 그 결과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공무원, 공적인 심부름꾼이 돼야

이와 같은 사례는 자칫 세대 간 일자리 다툼으로 비쳐질 수도 있겠지만 그동안 배운 노하우를 국민을 위한 심부름꾼인 공복(公僕)의 자세로 한다면 누가 뭐랄 것인가. 다만 문제는 아직도 공무원이 백성 위에 군림하는 조선시대의 관리로 착각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는 것이다.

“민중은 개, 돼지와 같다. 그저 잘 먹여만 주면 된다”   “우리나라에 신분제를 정했으면 좋겠다. 1%와 99%는 분명 출발부터 다른 것이다”

교육부 고위간부의 이 같은 망언은 엘리트 의식에 한껏 젖어 저 위에서 아랫것들을 바라보는 거만함이 물씬 묻어나 불쾌하기 짝이 없다.

우리나라 교육행정을 총괄하는 고시출신 고위직이 교육현장과 교육현실의 잘못을 고치고 백년지대계의 원대한 꿈을 펼쳐도 모자란 판에 이런 망동은 그 외 수많은 고위공직자들에게도 의혹의 눈초리를 돌리게 만들고 있다. 해방 이후 크게 달라지지 않은 고시과목을 달달 외워서 고시를 패스했고 흐르는 시간에 따라 승진하고 고위공무원으로서 앞으로 차관, 장관을 바라볼 수 있는 위치였다. 승승장구하는 마당에 그의 눈에 보이는 99%는 ‘한심한 무능력자’로 보였을 것이다. “나 같으면 자살했겠다. 왜 그렇게 개, 돼지처럼 살지?”라는 오만한 편견에 사로잡혀 기자 앞에서 스스럼없이 목청을 높였다니 그저 기가 찰 따름이다.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공무원이 된 이들이 단순히 안정된 삶이 아니라 국민을 위하는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갖춰져 있으면 좋겠다. ⓒbaranq/Shutterstock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공무원이 된 이들이 단순히 안정된 삶이 아니라 국민을 위하는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갖춰져 있으면 좋겠다. ⓒbaranq/Shutterstock

올해 시행되는 <인성교육진흥법>에는 예, 효, 정직, 책임, 존경, 배려, 소통, 협동 등 인성 핵심요소가 들어가 있다. 그리고 이 인성의 씨앗을 학생들은 물론, 예비교사와 기존 교사들에게도 가르쳐 주겠다 한다. 이 8가지 인성씨앗은 금과옥조 같은 가치를 지니고 있음은 분명하다. 다만 나라사랑 충이 빠진 채 개인과 가정, 사회에 국한됐다는 점에서 반쪽 인성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인성교육을 지휘 감독해야할 위치의 교육부 고위간부로서 그가 먼저 해야 할 일은 국가관을 심어주는 충(忠)을 보충하는 백년지대계에 애쓰는 모습을 보여주었어야 했다. 무엇이 인성의 주요 가치 개념인지조차 모른 채 혼자만 잘 나서 ‘개, 돼지 망언’에 ‘1% 대 99%의 신분제’를 주장하는 넋 빠진 고위공직자의 모습에서 이 정권의 조기 레임덕 조짐을 발견할 수 있다.

9급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 노량진 학원가를 전전하는 수많은 공시족들이 ‘안정된 밥벌이’를 찾아 헤맬 때 공무원 시험에 인성을 필수과목으로 넣어서 추진했더라면 꽤 많은 박수를 받았을 것이다. 공무원은 전봇대나 손톱 밑 가시 같은 규제를 철폐하는 데 힘을 쏟아야지 규제카드를 가지고 업자나 국민들을 상대로 갑질을 하는 1%가 아니다. 공무원의 영어는 public servant. 공적인 심부름꾼이라는 공복(公僕)과 같은 뜻이다. 안정적으로 먹고사는 문제도 중요하지만 공복으로서 먼저 인성교육이 시급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