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너희들이 보물이다.
봄 꽃 같이 밝고 맑은 이름,
아름다운 아들, 딸들아!
생명은 함부로 버릴 수도, 스스로 포기할 수도 없는 가장 소중한 보물이란다.
학교도, 공부도, 그 어떤 금은보화도… 부모님이 주신 생명과 맞바꿀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없단다.
학교에 가는 게 왜 지옥 같고,
휴일이면 맘 편히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할 수 없고,
엄마, 아빠, 언니, 누나, 형, 동생과 재미있게 놀 수도 없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에 하하 호호 깔깔, 낄낄거릴 수도 없는 세상…
너희들 가운데 열 중 아홉은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낀다지?
대체 너희들을 괴롭히는 그 못된 괴물이 누구란 말이냐?
‘입시?’, ‘성적?’, ‘외모?’, ‘폭력?’, ‘욕설?’, ‘가난?’
그런데 그냥 심심해서 장난으로 했다구?
재미 삼아 무심코 던진 조약돌에 맞는 개구리는 곧 죽음이란다.
봄 꽃처럼 활짝 피워 오른 아들, 딸들아!
이제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렴
고민이 있으면 엄마, 아빠와 함께 풀어보렴
고통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해보렴
괴롭히는 친구한테는 ‘안 돼! 멈춰!’라고 당당하게 말해보렴
비록 오늘 삶이 힘들더라도
먼 훗날 싱그러운 봄 꽃으로 피워 오를 수 있다는
그 믿음, 희망, 꿈을 간직하자
그리하여 온 가족이 함께 함박웃음 꽃을 터뜨리는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자
#1. 지난해 12월 대구에서 한 중학생이 학교폭력으로 고민하다가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자살한 이후 같은 지역에서만 8명의 학생이 잇달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서울 등 전국적으로는 12명의 학생이 자살을 했다. 이처럼 언론에 보도된 것 외에도 많은 희생이 더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급기야 왕따 당한 인천의 한 초등학교 5학년 학생(11)은 교실에 불을 질렀다. 친구들이 “돼지” “더럽다”라고 놀려 학교에 가기 싫었다는 게 이유였다. 이 학생의 집에서는 이혼을 준비중인 부모가 자신의 양육문제로 다툼을 벌이자 길에서 주운 라이터로 교실에 불을 지른 것이다. 사건이 일어난 뒤 교사와 상담한 학생은 “엄마와 함께 살고 싶다. 전학 가고 싶다”고 말했다. 소년은 만 14세 미만인 형사 미성년자여서 법원 소년부로 보내졌다.
#2. 학교폭력 왕따 문제가 세상에 뜨거운 화제를 던지면서 널리 회자되고 있다. 문제해결을 위한 백가쟁명(百家爭鳴)식 발언만 어지럽게 춤을 출 뿐 이렇다 할 묘약(妙藥)은 없다. 그야말로 백약(百藥)이 무효(無效)인 난감한 상황이다
“교장이 바뀌어야 학교가 산다니까요. 학생 상담할 시간이 어디 있어요? 교육청에서 내려오는 공문 처리 때문에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구요.”
올해 초 학교폭력 예방 세미나에 참석한 고교 여교사가 절규하듯 던진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학교폭력이요? 제로 토러런스(Zero Tolerance)! 즉 불관용(不寬容) 원칙으로 엄하게 다스려야 돼요. 폭력은 절대 용납하면 안 돼요. 나중에 자칫 조폭과 연계되거든요. 독일에서는 학교폭력을 매우 엄하게 다스립니다.” 독일특파원 출신 전직 언론인 Y씨는 불관용 원칙을 강조했다.
“학생들이 죽어나가는데 전교조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종북(從北), 이념교육을 시킨다면서요. 막스-레닌의 공산주의가 실패로 끝난 지가 언젠데 다 떨어진 사상과 철지난 이론을 가지고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겁니까. 빨갱이 만들 일 있어요.” 현역 보수 언론인 K씨의 말이다.
“가정교육이 문제이지요. 특히 국, 영, 수 점수 높이기에만 목을 매는 부모들이 더 큰 문제입니다. 맞벌이 하면서 아이들과 충분한 대화가 없는 데 어떻게 인성교육이 됩니까.”
“어른들이 더 큰 문제이지요. 우리사회에서 본(本)을 보고 배울 수 있는 어른들이 별로 없잖아요. TV를 보면 성공했다는 재벌, 국회의원, 고위공직자, 공기업 CEO, 판검사, 유명인들이 처신을 잘못하거나 부끄러운 일에 연루돼 줄줄이 잡혀가는 모습이 많이 나오잖아요.”
40대 학부모 M씨와 K씨는 ‘아이들은 부모의 등을 보고 배운다’면서 피폐해진 가정과 붕괴된 사회에 대해서 분노를 나타냈다.
#3. 공교육이 붕괴됐다는 소식은 꽤 오래 전 이야기이다. 교사들이 학생지도에 손을 놓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 지 오래됐다. 이 틈에 학생지도 사각지대에서 학교폭력은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존엄한 생명이 하나 둘씩 사라져가는 가운데 얄팍한 상술이 가미된 광고가 뜬금없이 나왔다.
“요즘 학교폭력 때문에 난리야. 그 집은 괜찮아?”
“순창의 이름으로 학교폭력 널 용서하지 않겠다.”
대상그룹의 ‘청정원 고추장’의 광고 내용이다. 이것은 세상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광고주가 내놓은 마케팅 홍보전략이기 전에, 학교폭력이 그만큼 전국민의 관심사가 됐다는 방증(傍證)이기도 하다. 대상그룹은 사회공헌차원에서 6월에서 11월까지 판매되는 순창고추장의 수익 중 2%를 청소년폭력예방재단에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말 못 말리는 재벌 공화국이다.
#4. 학교폭력과 관련, 한일 협조체계가 보도되는 것도 사태의 심각성을 말해주고 있다. 왕따 문제로 사랑하는 자식을 잃은 일본인 오사와 히데아키(68) 이지메(いぐめ) 피해자 연합 대표와 김종기 청소년폭력예방재단 명예이사장이 손을 맞잡고 학교폭력 예방활동에 힘을 합치기로 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올해 초 대통령도 나섰고, 국무총리도 목청을 높였고, 교과부-행안부-법무부-문화체육관광부-여성가족부 등 관계 장관들도 일제히 ‘학교폭력과의 전쟁’에 나섰다. 학교폭력 왕따 문제는 이제 외교, 국방 안보, 경제 문제 등과 같이 국가경영의 중차대한 정책 어젠더(agendar)로 떠올라 전국민의 관심사가 되었다.
지난 봄날, 이명박 대통령이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이 제대로 작동되는지 살피기 위해서 부랴부랴 경기도의 한 중학교를 방문하던 바로 그 날. 보란 듯이 한 학생이 투신자살했다. 경북의 한 중학교 2학년생은 ‘내가 죽으려는 이유는 학교폭력 때문이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학교폭력이 기승을 부리는 것과 관련, 전문가들 가운데는 무한 경쟁에서 뒤쳐진 ‘좀비들의 반란’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최고점수와 최고등급 강요에 학습부진 탈락자들은 좀비로 탈바꿈해서 반란을 일으킨다는 이색적인 이야기다.
태어나서 죽을 때가지 등급으로 분류되는 게 우리 사회다. 교육 당국의 점수등급, 학부모의 경제등급, 학생의 성적등급에서 모자라거나 떨어지면 곧 인생 패배자, 루저(loser)로 취급 받는다. 학교폭력과 왕따 문제도 따지고 보면 이 등급 서열화에서 밀려난 소외계층이 기성세대를 상대로 벌이는 ‘좀비 활극’이 아닐까.
2012년 2월 6일 청와대에서 필자에게 보내온 메일이 도착했다.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로 시작되는 메일은 제 83차 대통령 라디오, 인터넷 연설이었다.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지난 12월 대구의 한 중학생이 학교 폭력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있었다. 사건 직후 정부가 즉각 대책을 내놓지 않은 것은 학교폭력 근절을 일회성이 아닌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였다. 정부 대책에 앞서 국민적 공감대를 충분히 이루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 그 동안 피해학생, 가해학생, 부모와 담당교사, 그리고 일선 교사와 교육단체 인사들을 두루 만나 원인과 해법이 무엇인지 많은 의견을 들었다.
△ 청소년상담센터 위(Wee)센터를 방문했을 때 학교폭력으로 9년 넘게 고통 받는 한 학생의 사례를 접했다.
△ 역대 모든 정부가 사교육비를 줄이는 데만 힘을 쏟으면서, 정작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현실을 너무나 몰랐던 같았다.
△ 또한 문제를 알면서 방치하는 경우도 많았다. 적극 대응해온 학교도 있었지만, 많은 학교가 학교 평가에 불이익 받을 것을 우려해서 문제를 감춘 예도 있었다.
△ 아이들은 싸우면서 자란다고 하지만, 요즘 학교폭력은 휘두르는 연령도 낮아지고 그 정도가 심각하다.
대통령 연설문의 골자는 대략 위와 같았다.
‘상호간 소통(疏通)이 잘 되면 형통(亨通)이요, 불통(不通)이면 고통(苦痛)’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우리시대는 본질적으로 비극(悲劇)의 시대인가. 광복 후 67년 동안 ‘빨리빨리’ 문화가 지배했고, 그 덕에 산업화와 민주화가 가장 빨리 이룩되는 압축성장(spurt growth)의 달콤한 열매를 얻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경쟁에서 뒤쳐진 사람들의 뼈아픈 고통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학교현실도 마찬가지이다. 성적순으로 줄을 세우는 데서 인격이 결정되어진다면, 이건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비극의 시작인 셈이다.
학교폭력 왕따 문제는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식의 대책보다는 학교 현장의 문제를 적극 찾아서 해소하는 근본적인 사전 예방 시스템이 갖춰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교사들의 역할이 중차대한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데 그 심각성이 있다.
제도가 아무리 훌륭해도 그것을 운용하는 교육부 관리와 현장의 교장, 교사들이 소극적이고 무책임하게 움직인다면 백약이 무효인 것이다. 그 동안 교사들이 학교폭력과 왕따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할 의지를 가지고 덤벼들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학생인권조례 등으로 학생 체벌권이 없어진 일부 교사들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방관자적인 태도를 취했고, 골치 아픈 문제에는 아예 눈을 감아버리기도 했다. 이 꼴 저 꼴 안 보고 어서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마침 ‘때릴 수 있는 권한’마저 빼앗겼다면서 대거 명예퇴직을 신청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만 것이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10대들의 비극이 끝을 보이지 않는 가운데 조마조마한 마음은 불안감으로 소리 없이 증폭한다. 이렇다 할 대책도 없이 어두운 커튼이 드리워진 곳에서는 애잔한 장송곡(葬送曲)만 울려 퍼지고 있을 뿐이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벌어지고 있을 학교폭력과 자살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따돌림사회연구모임 교사들이 밝힌 대로, 학교폭력의 본질은 일상성, 집단성, 관계성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에 맞는 대응책이 나와야 할 것이다.
즉 가해학생의 경우, ‘사소한 장난’이라고 치부해서 죄의식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게 문제이다. 사소한 장난으로 피해학생이 느끼는 부담의 차이는 개인차에 따라 다를 것이다. 또한 일진 등에게 폭행을 당했을 때 또래 집단 앞에서 창피를 당했다는 자존감의 상처와 굴욕감의 정도도 느끼기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이와 함께 따돌림을 당하지 않으려고 폭력무리에 끼어드려는 심리는 자기방어의 마지막 수단이다.
따라서 전문 상담가의 학교배치와 함께 인성교육과 법 교육을 시켜야 할 것이다. 성적과 진학만을 위한 기존의 성적지상주의 현실에서는 언제 어디서 터져나올 지 모르는 게 학교폭력이기 때문이다.
“어른은 학교 실상을 잘 몰라요. 선생님들은 아예 신경을 끊거나 입 다물고 있고… 학생들이 얼마나 입시중압감에 시달리는지 아세요. 폭력 왕따 문제 다 입시스트레스 때문에 생기는 거라구요.”
한 여고생의 피맺힌 절규이다.
자아정체감이 형성되지 않은 10대를 소위 질풍노도(storm & stress)의 반항기로 규정한다. 아직 매사에 옳고 그름의 판단력이 부족한 시기이다. 한창 푸르른 꿈을 키우고 정성껏 가꾸어 성공하는 인생으로 다가 가야 할 때, 과도한 학습부담으로 불안과 우울에 심성마저 망가져 간다면 상급 학교 진학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학교가 ‘범생이’와 일진 ‘짱’만이 기억되는 물신주의(物神主義)의 양극화 현장이 돼서는 더 이상 존재가치가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학교가 사회 양극화 현상의 실험실일 수는 없다. ‘빨리 가려면 혼자서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같이 가야 한다’는 말이 유독 생각나는 요즘이다.
PS: 필자는 10여 년 전, 사춘기 성장통(成長痛)을 겪었던 두 자녀를 둔 아버지로 그 즈음에 청소년지도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조선, 중앙일보 등 언론사에서 다년간 근무하면서 청소년들의 행태와 습성을 관찰할 기회를 가졌다. 또 명지대 교육대학원과 사회교육대학원 등에서 현직교사와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청소년 심리를 지도했다. 현재는 이순신 리더십 포럼을 운영하며 이순신 장군의 충효리더십을 전파하고 있다. 한국언론재단 NIE 특임 강사로서 일선 중고교 학생들에게 신문 읽기와 창의적인 글쓰기, 신문 제작체험, 진로적성 및 인성강화교육 등에 힘을 쏟고 있다. 필자는 언론인 출신으로 이 책을 위해서 신문 보도 등을 두루 참고했음을 밝혀둔다.
‘누구나 한번 실수는 있을 수 있지만, 두 번 세 번 실수를 반복하면 결국 바보가 된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한, 꿈은 반드시 이뤄진다.’ 이 두 가지는 필자가 청운(靑雲)의 꿈을 가진 청소년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이다.
이 책을 쓰는데 많은 도움을 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유재식 이사님과 미디어교육팀 여러분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또한 고학(苦學)으로 해외유학중인 아내와 청소년문제에 대해서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두 자녀, 김슬아와 김석환에게 진정한 고마움을 전한다.
2012년 11월 심상제(心想齊)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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