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진은 일진회(一陣會)의 준말로 학교에서 가장 힘이 세고 싸움을 잘 하는 학생폭력집단이다. 1980년대까지는 서클로 통하던 학생 폭력집단이 일진이란 이름으로 바뀌었다. 1986년 일본에서 ‘이지메(いじめ)’, 즉 집단 따돌림과 폭행으로 중학생 집단자살이 잇따라 사회문제가 되었다. 이런 일진이 일본 폭력만화와 영상물을 통해서 우리나라에 유입된 것이다.
일진회는 다른 학교들과 연대를 구축하기도 하고, 시나 도 단위로 지역연합을 결성하기도 한다. 초등학교 3~4학년부터 고등학교까지 연계된 연합조직이 있다는 것이다. 청주 팸(패밀리)의 경우,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대학교-성인 조폭까지 연결된 대표적인 일진연합이었다. 이진(二陣) 위에 일진(一陣)이 있고 그 위에 특진(特陣)이 군림하는 위계질서가 분명한 서열화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학생폭력이 조직화, 범죄화로 진행되면서 전국적으로 그 심각성이 도를 더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20만~40만 명으로 추산되는 일진회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인 학교폭력, 왕따의 주범이다. 그러나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연계된 일진의 전모를 모두 파헤치기란 어려운 문제이다. 또 여러 학교까지 강력한 연대를 이룸으로써 조직화되어 있다는 점이 문제의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따라서 일반 학생들은 감히 이들에 대한 험담이나 알고 있는 정보를 말하려 하지 않는다. 보복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일진들은 자연히 조폭 흉내를 내면서 끼리끼리 힘 자랑하기 일쑤이다.
왕따 폭력의 상징인 ‘빵셔틀’, ‘숙제셔틀’, ‘가방셔틀’뿐 아니라, 집단구타와 성폭행 등이 일진들에게 의해서 이뤄진다. 일진들은 또 ‘감정빵’(그냥 기분 나쁘다)이나 ‘물갈이’(서열 정하기) 등의 폭력을 통해서 위계질서를 잡는다.
교과부가 뒤늦게나마 일진 숫자파악에 나섰다. 2012년 1~2월 전국 1만1363개 초중고교를 대상으로 실시한 학교폭력실태조사에서 중학생 3명 중 1명(33%)은 “우리학교에 일진이 있다”고 응답했다. 초등학생 4~6학년(23.7%), 고교생(11.6%)에 비하면 폭력수준이 훨씬 높은 편이다. 최근 학교폭력으로 중학 2학년생이 자살한 경북 영주의 한 중학교는 “일진이 있다”고 대답한 학생이 68%로 전국 중학교 가운데 21번째였다.
이번 조사에서 “학교폭력을 당했다”고 응답한 학생은 16만7000명. 그러나 학교명예와 관련 낙인(烙印)효과가 있다면서 답변이 없었던 143개교와 소극적으로 응답한 학생들이 많음을 볼 때 훨씬 더 많은 일진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교과부는 설문지 회수율이 10% 이하인 1900개 학교에 대해서는 다시 설문조사를 한다는 방침이어서 일진의 숫자와 폐해사례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교내에 일진 같은 폭력조직이 있다는 응답이 50% 이상 나온 학교는 전국에 464곳이다. 초등학교가 101곳, 중학교가 343곳, 고등학교가 19곳, 특수학교도 1곳으로 집계됐다. 조사결과, 일진이 있다는 응답비율은 특별시와 광역시 지역은 24.6%, 시 지역은 24.2%, 군 지역은 17%였다. 16개 시도 가운데 일진이 있다는 비율이 가장 높은 강원도에서는 원주시, 춘천시, 강릉시 순이었다.
3월 말 경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수원, 광주, 안성지역에서 10대 청소년에게 폭행, 협박, 갈취를 한 학교폭력 가해자 286명 중 H군(19) 등 5명에 대해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G군(17) 등 47명은 불구속 입건했다.
구속된 H군은 수원역 인근에서 P군(17) 등 2명을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가진 사실을 알고 “신고하기 전에 합의금을 가져오라”고 협박해 50만원씩 모두 100만원을 빼앗는 등 2010년부터 6번에 걸쳐 139만 원 상당의 금품을 상납 받고 폭행했다. 불구속된 G군 등은 수원시 한 모텔방에 동네 후배(16)를 붙잡아 놓고 강제로 술을 먹인 뒤, 자기 소변을 컵에 따라 마시게 하거나 담뱃불로 눈썹을 지지기도 했다.
또 경기도 광주지역에서 12명 규모의 일진 모임인 ‘천공’을 만든 R군(17)은 시내버스 안에서 M군(17)에게 “문신을 해야 하니 3일 안에 돈을 모아오라”며 20만원을 빼앗는 등 2009년부터 400여 차례에 걸쳐 620만 원어치의 금품을 빼앗았다. 이들이 만든 천공 모임은 광주, 성남지역 초중학교 일진 중 ‘짱’을 뽑는다면서 각 학교를 찾아가 12번에 걸쳐 원정폭력을 저질렀다. 경찰은 죄질이 비교적 가벼운 234명에 대해서는 각 학교에 통보 조치했다.
경남 마산에서도 또래 중학생을 상습적으로 폭행하고 금품을 갈취하거나 가출 여중생을 성폭행한 4개 불량서클 고교생 등 67명이 검거됐다. 이렇듯 10대들의 난폭한 불법행동은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난감하게 만들고 있다.
문재현 마을공동체교육연구소장은 “학교폭력이 많이 드러나는 곳은 인구 10만~20만 명의 중소도시가 많다”고 했다. 이런 중소도시의 학생들은 지역의 주도권을 놓고 세력다툼을 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와 같은 폭력을 막기 위해서는 지방 중소도시의 청소년 문화 인프라를 확충시켜서 이들의 욕구불만을 해소하고 높아진 기대감을 충족시켜 나가야 한다는 해법도 나오고 있다. 그렇지만 지방의 경우와 대도시의 일진그룹은 이미 체계화되어 있어 교묘하고 은밀하게 폭력이 자행되기 때문에 눈에 덜 띨 뿐, 적발된 사건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교과부가 전국 1만1363개 초중고교 학교폭력 현황을 공개한 결과, ‘학교폭력을 당했다’고 응답한 17만 명의 학생들 가운데 47%가 지목한 장소는 학교 안이었다. 학교 안에서도 교실(25.3%), 화장실 또는 복도(9.1%), 운동장(5.1%) 순이었고 그 외 학교 내 장소가 7.3%였다. 학교 밖은 온라인과 휴대전화(7.7%), 등하굣길(5.7%), 학원이나 학원 주변(3.2%), 오락실 PC방 노래방(2.9%) 등이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교실 폭력이 가장 심각한 경우로 떠올랐다. 공부하는 교실이 폭력의 행사장이 됐다면 교사와 동료 학생들은 과연 무엇을 했다는 말인가. 일부 교사들의 직무유기와 대다수 학생들의 방관자적 태도가 문제로 꼽히는 대목이다.
지난 4월 23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사진 3장은 학교 안이 ‘무법의 해방구’로 탈바꿈한 현장을 보여준 것이어서 충격적이었다. 학생 일탈행위를 다룬 각각의 사진들은 남녀학생들이 운동장에서 버젓이 담배를 피우고 있고, 남녀 학생 한 쌍이 한가한 곳에서 서로 부둥켜 안고 있었으며, 교실에서 유유히 담배연기를 내뿜는 모습으로 포착되었다.
“교실에서 일진이 공격 목표를 정해서 왕따를 시키면 다른 아이들은 일진의 위세에 눌려서 왕따 행위에 동참하는 분위기가 만연되어 있다”는 게 서울 K고 생활지도 교사의 말이다. 일진으로부터 다음 번의 왕따로 지목되지 않기 위해서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참여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일진 가운데는 싸움만 잘 하는 경우 외에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회장이나 반장 타이틀까지 가지고 있으면서 아이들을 괴롭히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은 또 다른 충격이다. 물론 흔한 케이스는 아니지만 힘과 공부라는 두 가지 권력을 손에 다 쥐고 있는 ‘절대 권력자’는 분명 ‘우리시대의 일그러진 영웅’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 말 경찰에 붙잡힌 경기도 한 중학교의 S군(15)은 교실에서 아이들 뒤통수를 치거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거나 하는 ‘사소한’ 폭력을 저지르다가 점점 그 강도가 세어지면서 핸드폰을 빼앗고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급기야 교실이나 화장실 등에서 약한 왕따 후배를 불러서 자위행위를 시키는 엽기적인 일까지 시켰다. 후배들을 야산으로 집합시켜 뺨을 때리고 배를 차고, 쓰러지면 무릎으로 얼굴을 가격했다. 이른바 닉킥이다. 가출한 여학생을 성폭행했으며 약한 아이들로부터 ‘상납’을 받기도 했다.
경북 영주 중학생 왕따 자살의 경우, 가해자인 J군은 10여명의 ○○패밀리를 결성하고 자신보다 힘이 약한 학생들을 무릎 꿇리고 때리거나 침을 뱉기도 했다. 그리고 돈을 빼앗아 담배 심부름이나 아이들끼리 머리박기를 시켰다. 또 운동장에서 아이들을 벤치에 앉혀놓고 껴안고 뽀뽀하기도 했다. J군은 일진들이 놀아주지 않자 ○○팸을 만들어서 대장 역할을 하면서 10명의 ‘꼬붕’(부하)을 거느렸다.
자살사건이 발생하자 팸의 일원이었던 학생들은 작심하고 털어놓아 비로소 그 실체가 밝혀졌다. 자살한 L군은 자살직전 “내가 죽고 난 뒤 장례식에 오면 죽는다”고 평소 원한을 풀어놓았다. 1년 이상 만성적으로 폭력에 시달렸고 학교 심리검사에서 ‘자살 고위험군’으로 판정을 받았던 L군에 대해서 학교는 무관심했다.
영주교육청 Wee센터(학교폭력 위기상황에 놓인 학생들을 상담하는 곳)가 권하는 대로 한 차례 정신과 병원에 갔고 그 뒤로는 원예치료만 받았을 뿐이다. 학교폭력근절종합대책 일환으로 복수담임제를 도입했지만, 2명의 담임교사 또한 L군이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교육청의 지시사항이 일선 학교에서 먹혀 들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학교폭력 가운데는 성추행이나 성폭행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서울 강서구 중학교 P군은 일진들이 여학생들이 보는 가운데 P군의 바지를 내리고 성기를 잡아당겼다고 했다. P군은 일기에서 ‘니들이 인간이야’ ‘미쳐버리겠다’고 괴로운 심정을 털어놓았다. P군은 1년 동안 같은 반 친구들에게 148번의 폭행과 가혹행위를 당했다며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과한 법률 5조 2항에 따르면 ‘성폭력은 다른 법률에 규정이 있는 경우 이 법은 적용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해 성폭력사건은 학생부에 기록되지 않는다. 그런데 ‘사소한 폭행’은 학생부에 기록이 가능하다. 그래서 일선 학교에서는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성폭력이 2007년 298건에서 2009년 381건, 2010년 575건으로 3년 만에 1.9배 늘어났다. 성폭력 유행도 집단 성폭행을 하거나 자위행위를 강요하거나 수치스러운 사진이나 동영상을 촬영해 인터넷에 유포시키는 것이었다.
폭력의 강도가 높아진 학생들 가운데는 성 상납이나 여자친구 소개 등을 빌미로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올해 4월 서울 중랑구 한 초등학교에 중랑구 지역 중학생 일진 30여명과 노원구 지역 일진 20여명이 ‘맞짱’을 뜨기 위해서 모였다. 중랑 지역 중학교 일진 L군(14)이 노원지역 여중생 P양(14)과 인터넷 메신저로 채팅을 하던 중 “너의 거기를 보여달라”고 하자, 화가 난 P양이 ‘싫다’고 하면서 시비가 붙었다. P양은 이 사실을 노원구 일진 J모군(14)에게 일렀다. L군과 J군 사이에 입씨름이 벌어졌고, 결국 만나서 ‘맞짱’을 뜨기로 한 것이다.
싸움 당일 초등학교에는 양쪽 일진 80여명이 모였고, 학교주변에도 40여명이 진을 쳤다. 다행히 주민이 경찰에 신고를 했고 해산된 뒤 인근 다른 학교로 몰려갔다. 졸업한 선배 일진들도 구경을 나왔다. 저녁 무렵 학교에 남아있던 교사가 발견, 경찰이 출동하는 바람에 이날 싸움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와 같이 특정한 사안을 놓고 대립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조선일보 4월 20일자 보도에 따르면 이 학교에서는 점심시간에 1~3학년 수십 명이 운동장 한복판에서 원형으로 둘러서서 손뼉을 치며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중 1학년생 두 명이 주먹다짐을 하는 것이었다. 한 학생이 피를 흘리고 옷에 뻘겋게 피가 묻어날 때가 돼서야 싸움이 끝났다. 그때까지 교사 누구도 싸움을 말리러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학교폭력으로 한 학생이 자살한지 바로 며칠 후 대낮에 학교에서 짱을 가리는 주먹다짐이 벌어진 것이었다.
이 학교에서는 매년 3월 학기초에는 각 초등학교 짱들이 자기들끼리 서열을 가리기 위한 싸움을 벌였다고 한다. 서열이 정해진 뒤에도 자기의 등급을 높이기 위해서 싸움이 학기 내내 이어진다고 했다.
“일진 선배가 싸움을 구경하다가 ○○가 이겼다”고 하면 끝이 나는 것이다. 서열을 가리기 위한 학교폭력은 결국 힘이 약한 아이들에게까지 악영향을 미친다. 일진그룹에서 밀려난 학생들이 자신보다 더 약한 학생들을 찾아 괴롭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학교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섞여 쉽게 분간할 수 없는 상황이 대부분이다.
중학교는 양육강식의 ‘정글의 법칙’이 통용되는 ‘해방구’이다. 둘이서 싸움이 붙었을 때 누가 먼저 ‘선빵’(먼저 주먹을 날리는 것)을 날리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법보다 주먹이 앞서는 세계이다.
일진들은 2월말부터 3월초 학기가 시작될 때까지 1학년 신입생 가운데 일진으로 가입시킬 학생들을 찾는다. 일단 점이 찍힌 학생들은 서열 정하는 ‘물갈이’, ‘신고식’, ‘후배 터치’ 등의 훈련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4~5월은 학교별, 지역별 일진연합 조직의 결투 기간이다. 지역 내 학교별로 서열을 가리는 ‘맞짱’을 통해 이기는 학교가 지는 학교를 지배한다. 지역별 짱이 정해지고 또다시 맞짱을 통해서 우열의 확실한 구조가 가려진다. 철저한 양육강식의 정글세계라 아니할 수 없다.
일진이 되려면 또래 가운데 덩치가 커서 지목당하거나 싸움에서 이기면 된다. 선배 일진은 하늘처럼 모셔야 하고 ‘지시사항’이 떨어지면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 2학년 일진이 1학년 일진에게 “조용하게 돈 걷어와라”고 하면 1학년 모든 아이들에게 돈을 조금씩 빼앗아 선배에게 ‘상납’하는 구조이다. 만약 이를 지시사항을 완수하지 못했을 때는 가혹한 매가 기다렸다.
대구의 한 중학생 S군은 입학한지 3주 만에 2학년 일진의 호출을 받았다. 선배들은 잔뜩 겁을 먹은 S군에게 “덩치가 제법 크니 앞으로 1학년 일진이다”면서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졸지에 일진이 된 S군에게 동급생 누구도 싫은 소리를 하거나 대들 수 없었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서 선배 일진으로부터 지시사항이 떨어졌다. “조용히 돈을 걷어오라”는 것이었다. 선배에게 절대 복종하는 상명하복(上命下服)의 일진세계에서 지시사항에 대해서 완벽하게 일을 처리해야 했다. S군은 동급생들에게 돈을 조금씩 빼앗아 선배 일진에게 상납했다.
일진들은 자신들만의 은어(隱語)를 만들어서 집단결속의식을 강화하고 있다. ‘○○빵’이란 용어가 많은데 여기서 ‘빵’은 폭력을 뜻한다. 그냥 기분 나빠서 다른 학생들을 심리적으로 괴롭히는 ‘감정빵’, 담배로 몸을 지져 상처를 내는 ‘담배빵’, 칼로 몸에 글짜나 상징을 그리는 끔찍한 ‘칼빵’ 등이 있다. ‘일락’은 ‘일일 락카페’의 준말로, 락카페를 통째로 빌려서 함께 술을 마시며 노는 것이다.
‘찐’은 일진과 같은 말로, ‘일짱’은 일진 중에서 싸움을 가장 잘 하는 학생이다. ‘찌질이’는 일진은 아니지만 일진 행세를 하는 학생. ‘양(養)’은 일진 선후배 사이에 맺는 관계로 ‘의(義)’나 ‘빽’도 비슷한 뜻이다. ‘다굴’은 ‘밟는다’와 비슷한 뜻으로 여러 명이 한 명을 집단으로 괴롭히는 것으로 ‘다구리 붙다’는 집단 패싸움을 말한다.
“나 어제 일진한테 민주화 당했어.”
청소년이 많이 찾는 모 인터넷 사이트에서 한 중학생이 올린 글이다. 이들에게 민주화란 일진에게 폭행을 당했거나 돈을 뜯겼다는 은어이다. 또 외모가 유별나게 못생긴 친구한테도 ‘민주화됐다’는 표현을 한다. ‘제 멋대로 생겼다’는 뜻을 내포한다.
민주화라는 뜻은 선생님이 학생들을 자주 혼내거나 통제할 때도 ‘무자비하게 민주화 먹인다’는 뜻이기도 하다. 은어는 또래의 특정집단이 결속을 강화하기 위해서 자기들만 알 수 있게 쓰는 말로서 이들 사이에서 자연스런 현상이다. 하지만 가장 소중한 사회가치인 민주화가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면 민주주의도 부정적인 색깔로 왜곡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또 특정지역을 왜곡시킬 소지가 큰 것으로 지적된 것은 ‘전라도 홍어 또는 전라디언(전라도와 인디언의 합성어)은 믿을 수 없고, 경상도 과메기 또는 경상디언(경상도와 인디언의 합성어)도 비열해서 친구들이 싫어한다’는 것이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후에는 시험 스트레스를 푼다는 이유로 “약한 학생들에게 시비걸기, 돈을 갈취하는 ‘삥뜯기’ 등이 자주 발생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여름방학, 겨울방학 기간에는 지역 연합의 물갈이가 진행되고 학교별 일진 간의 우열을 새로 정하게 된다.
빼빼로데이, 밸런타인데이 등 선물을 주고받는 기념일에는 특히 금품갈취가 다반사로 이뤄진다고 한다. 그리고 졸업식에는 ‘졸업빵’으로 야산이나 노래방에서 후배들을 폭행하는 행사가 벌어진다. 이와 같이 일진들은 학교 행사에 따라 정해진 스케줄을 운영한다.
특히 수학여행 때는 일진들이 물 만난 고기떼처럼 극성을 부리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평소에는 수업이 끝나면 일진들의 영향권 밖으로 벗어나는 것이지만, 보통 2박3일, 4박5일 등 수학여행의 24시간 하루 종일 가해 학생들과 같이 지내야 하기 때문에 왕따들의 고통은 이만 저만이 아니다. 술, 담배 셔틀은 기본이고 술이나 담배를 강제로 권하고, 옷을 벗겨 성추행을 하거나 춤을 추게 하는 이벤트도 벌어진다고 한다.
어른보다 더 커진 덩치이지만 그에 따른 정신적인 미성숙기인 중학생들은 소위 질풍노도(storm & stress)의 사춘기로 통한다. 좌충우돌,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이나 방향감각을 잃어버린 야생마 같기도 하다. 그리고 불안, 우울 등 통제 불가능한 심리적 격랑의 바닷속에 던져진 ‘고아’와 같은 존재이다.
충분한 영양의 공급으로 청소년기의 2차 성징(性徵)이 초등학교 고학년(4~6학년)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그에 따른 정신적 성숙도가 낮아진 상태에서 불균형과 부조화로 불안감을 느끼는 시기이다. 또한 청소년기에는 뇌의 전두엽(이성적 판단력 관할)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해서 본능을 담당하는 변연계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 따라서 ‘본능의 뇌’로 불리는 변연계에서 나오는 감정, 성욕, 식욕 등을 잘 통제하지 못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애들은 싸우면서 큰다”는 말은 폭력에 정당성을 부여함으로써 악용될 소지가 매우 크다. “힘 자랑 하고 싶어 애들을 괴롭혔다.” “장난인 줄 알았다.” “(괴로워하는 게) 재미있어서 그냥 해봤다”는 게 많은 가해 청소년들의 공통된 말이다.
교사나 부모들 또한 청소년 사춘기 심리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모자라다 보니 어떻게 통제하고 지도해야 하는 지 대해서 허둥댈 수밖에 없다. 자살 등 대형사고가 터진 뒤에야 비로소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되고 후회를 하는데 이미 때는 늦은 것이다.
이와 관련 대안교육 전문지 ‘민들레’의 현병호 발행인은 “싸움에 대해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괴롭힘을 당하는 것이다”는 색다른 의견을 내놓고 있다. 그는 “괴롭힘을 당하면 증오심이 쌓이고 이 증오심이 아주 왜곡된 형태로 나타난다. 즉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괴롭힐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교사의 통제밖에 있는 가출, 중퇴생들이 학교 폭력의 근원지라는 진단이 경찰청으로부터 나왔다. 경찰청에 따르면 가출청소년(14~19세)의 수는 2006년까지 9390명이었는데 2008년 1만5000명을 넘어선 뒤 2011년 2만 438명으로 급증했다. 교육청 자료도 학교생활 부적응, 품행 불량 등으로 학업을 중단한 학생 수는 2012년 2월 기준 중학생이 1만6320명, 고교생이 3만 3782명에 달한다.
빌린 돈 10만원을 갚으라는 친구를 목 졸라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K군(16)도 몇 달 전 가출해 PC방을 전전하며 살고 있었다.
2011년 3달 동안 가출했다는 S군은 학교에서 일진 짱으로 통했다. 가출한 친구들과 어울려 모텔과 찜질방 등을 전전했지만, 가출 1주일째부터 돈이 떨어졌고 배가 고프자 인근 학교나 학원가로 가서 학생들로부터 돈을 빼앗을 수밖에 없었다. 이 돈으로 방값, 밥값, 담뱃값, 술값을 쓰고 나면 또 돈이 떨어졌다.
서울 서초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U군(18)은 키 182cm에 몸무게 90kg의 건장한 체격의 소유자였다. 고교 2학년 때 자퇴한 U군은 서초구의 중, 고교생 사이에서는 ‘짱중의 짱’으로 통했다. U군은 서초구 일대 중고교 재학생과 자퇴생 등 10여명을 모아 행동대원을 두고, 그 아래 50여명의 중고교생 조직원을 움직여 조폭의 두목행세를 했다. U군은 서울 일대를 구 단위로 나눠 행동대원에게 중고생을 상대로 점퍼, 티셔츠, 시계, 스마트폰 등을 닥치는 대로 빼앗도록 했고, 저항하면 가차없이 폭력을 휘둘렀다.
가출 후 이렇다 할 생계유지수단이 없는 이들은 당장 돈 문제에 직면하고, 학교 인근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돈을 빼앗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다. ‘생계형 폭력’은 학교 다닐 때보다 폭력의 강도가 강해지는 경향이 있다. 원조교제나 범죄조직에 포섭되는 등 성인폭력 대상자로 전락하는 안타까운 경우가 많다는 게 경찰청 관계자의 말이다. 따라서 학교폭력 대책과 동시에 가출, 퇴학청소년 문제도 같이 종합적으로 다뤄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대검찰청이 매년 내놓는 ‘18세 미만 소년 범죄자 교육 정도’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경찰에 입건된 전체 소년 범죄자(만 18세 미만) 8만 9776명 중 2만 1143명(23.5%)이 초중고교를 중퇴했거나 상급학교에 진학을 하지 않은 청소년들이었다. 이들은 전체 학생 중 1~2%에 불과하지만 소년 범죄자 4명 중 1명이 중퇴생이다. 2006년 10명 중 1명 꼴이었던 것이 5년 만에 배로 늘어난 것이다.
서울지역에서 학교를 그만둔 학생은 1만 4035명이지만 이들이 갈 수 있는 대안학교, 쉼터 등 대안 시설 정원은 1000명이 채 안 된다. 이러다 보니 일정한 장소에 정착을 하지 못하고 바깥으로 나돌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그동안 교육당국과 학생인권을 신주단지 모시듯 했던 전교조는 과연 제 역할을 다했다고 할 수 있을까.
학교의 법과 도덕이 무너지다 보니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폭력문제의 해결사로 나서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이 와중에서 서열에 따른 양육강식의 양극화 현상마저 벌어지고 있다.
서울의 K고교 1학년 P군은 길거리에서 인근 H고교 2학년 3명과 시비가 붙었다. “쳐다보는 눈빛이 기분 나쁘다”는 이유에서 였다. 일차 폭행을 당한 뒤 길거리에서 만날 때마다 여러 차례 집단 폭행을 당했다. 견디다 못한 P군은 평소 알고 지내던 H고교 3학년 일진 P군에게 폭행사실을 털어놓았다. P군이 나서서 “내가 아는 아이이니 건드리지 마라”는 말을 들은 2학년생들은 더 이상 P군을 괴롭히지 않았다. 또 경기도 일산의 P중학교 2학년 L군은 학교복도에서 3학년 학생들과 어깨가 부딪쳤다. 3학년 학생들은 L군을 피멍이 들도록 집단폭행을 했다. L군은 같은 아파트에서 친하게 지내던 3학년 일진 T군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더 이상 폭행은 없었다.
이렇듯 일진은 학생들의 폭행문제를 교통정리하는 새로운 권력으로 자리잡았다.
학교폭력, 왕따 피해자학생들이 교사나 전문상담가에게 털어놓지 않는 이유는 “말해봤자,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불신에서다. 오히려 연줄을 닿아서 일진에게 피해호소를 하면 그때서야 문제가 깔끔하게 해결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해결됐다고 해서 모든 게 없었던 것으로 되지는 않는다. 혜택을 받은 만큼 더 잘 해줘야 하는 부담이 돌아오게 마련이다. 거리의 상인이 보호비 명목으로 조폭들에게 상납금을 마치듯이 ‘빵셔틀’이나 ‘숙제셔틀’, ‘가방셔틀’ 및 심심치 않게 용돈조달 등 온갖 수발을 해야 할 각오를 해야 한다. 마치 ‘공짜점심은 없다’는 비정한 비즈니스 세계를 연상케 한다.
여성가족부가 중고교생 1만5954명을 대상으로 학교폭력실태조사를 한 결과, 학교폭력 피해 후 대처방법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는다’가 32.5%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그 다음으로 친구가 26%였으며 선생님께 알린다는 응답은 19%로 가장 낮았다. 더욱이 부모에게 폭행당한 사실을 알리면 해결이 되기는커녕, 자칫 했다가는 부모가 학교로 찾아와서 따지는 등 물의(?)를 빚을까 봐 참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란다. 이렇듯 부모가 학교에서 한바탕 난리를 친다면, 오히려 피해학생은 ‘부모에게 고자질하는 찌질이’로 찍혀 오히려 지속적인 괴롭힘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하급생의 금품을 갈취하다 ‘부모에게 일렀다’며 보복폭행을 한 사건도 일진 조직이 저지른 일이었다.
서울에서 벌어진 학교폭력 피해학생 할머니의 몸서리쳐지는 기억도 빼놓을 수 없다. 할머니는 손자 친구가 “욕을 하면서 밟아 죽여버리겠다”고 했는데 “눈빛이 짐승 같았다”고 털어놓았다. 손자 L군(15)은 부모가 10년 전 이혼하고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동생(12)과 함께 살고 있었다. 태권도장에서 만난 동급생(15)들은 자신들의 그룹에 끼워줬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L군을 폭행을 했다. 이유는 길거리에서 담배 피우다가 ‘짭새’(경찰관을 비하하는 은어)에게 한 소리 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정부에서 조손(祖孫)가정에게 지원하는 꿈나무카드(무료 급식카드)를 빼앗고, L군의 집에서 금팔찌와 목걸이도 가져가 팔아서 PC방에서 써버렸다. 이들은 집 담을 넘어 현관문을 밀고 들어오다 할머니가 “무슨 짓이냐”며 머리를 밀자 “확 밟아 죽여버린다”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폭언을 해댔다. 그리고는 L군을 강제로 끌고 나가서 인근 아파트 주차장에서 집단 폭행, 코뼈가 부러지는 전치 4주의 상처를 입혔다.
2010년부터 2년 동안 대구의 한 특성화고에서 벌어진 학교폭력은 가히 조폭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3학년 선배 2명이 2학년 P군 등 후배 3명이 실습을 마치고 샤워하는 중 뜨거운 물을 틀어놓아 화상을 입게 했다. 이듬해에는 3학년이 된 피해자 P군 등 3명은 1년 후배 3명을 불러 깊이 1m, 폭 1.5m 가량의 구덩이를 파도록 한 뒤 후배 1명을 안으로 밀어 넣고 목만 내놓은 채 흙을 덮었다.
경찰 조사결과, 이 학교 산업기계과 학생들은 이처럼 조폭을 연상케 하는 각종 폭력을 수년간 대물림해왔다. 선배들은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후배들을 기중기에 거꾸로 매달거나 땅에 묻었고 가혹행위를 당한 학생들은 또다시 자신의 후배들에게 똑같은 이유를 들어 앙갚음을 해왔다. 또 연못에 집어 던지거나 살아있는 개구리를 입에 넣기도 했으며 학교 운동장에서 ‘멍멍’ 짖으며 기어가게 했다. 샤워실에서 피해자들의 몸에 소변을 누는 등의 성추행도 서슴지 않았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정부 입장에서는 당장 급한 불을 꺼야 하는 책임감에서 경찰동원 등 공세적 대책을 강화하고 있지만, 학교 폭력 왕따 문제는 근본적으로 장기적인 계획 아래 치밀하게 연구돼야 할 과제이다.
정부가 내놓은 ‘일진 경보제’와 경찰서별 전담 경찰관제의 도입 등과 같은 대책으로는 학교 폭력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힘들 것이다. 지난 1995년에도 이와 비슷한 일진소탕령이 있었지만 유아무야 흐지부지됐다. 또 2005년에도 일진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학교폭력 예방대책 5개년 계획’을 발표했지만 무용지물이 되었다.
올해 2월에도 정부에서는 총리, 교과부장관, 법무부장관, 등이 학교폭력근절대책을 발표했다. 2011년 말 대구에서 왕따 폭력에 시달리던 중학생이 자살하는 등 전국적으로 피해가 잇따르자 내놓은 대책이었다. 주요 대책으로는 크게 △피해학생 보호 △가해학생 처벌 △교사지도 등이었다.
특히 눈길이 가는 것은 학교폭력 가해학생 처벌수위는 한층 강화되었다는 점이다. 폭력을 일으키는 즉시 학교장 판단에 따라 출석 정지된다. 출석정지 기간 제한(연간 30일) 폐지(유급가능)이고, ‘학교폭력을 신고했다’고 피해학생을 보복할 경우 가중처벌을 받는다. 또 학교 폭력내용은 생활기록부에 기재된다.
교사지도와 관련해서는 학교 폭력 은폐 시 교장, 교사는 중징계 대상이다. 중징계 내용을 보면 금품수수, 성폭력 등 교육계 4대 비리와 동일한 수준으로 간주해 중징계(정직, 해임, 파면)를 내린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복수담임제 도입이다. 피해학생 보호에서는 피해학생과 가해학생 동일 학교 진학금지, 피해학생 치료비 우선 지원, 학교 폭력 신고 번호 117(문자신고 #0117)로 통합, 경찰동행 등이다.
이와 같은 대책이 발표된 지 2개월 만에 경북 영주에서 중학 2년생 왕따 문제로 투신자살하자 대통령은 이천의 한 중학교를 불쑥 방문해 “폭력 가해학생은 엄벌에 처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학교폭력은 정부의 대책과 아무 상관없다는 듯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일선 학교 교사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학교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것이다. “학생인권조례의 시행으로 교사의 학생 체벌권이 없어진 마당에 무슨 무기(?)를 가지고 학교폭력, 왕따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냐”면서 대통령과 정부의 엄벌주의에 대해서 회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번에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었지만, 사전 예방책은 손도 못 대고 사후 대책에만 집중한 나머지 성공확률이 아주 줄어들었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정부가 이번에 일진 숫자를 파악하는데 주력했지만 처벌에 초점을 두고 있는 이상, 일진의 소탕(?)은 무위로 돌아갈 공산이 크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격인 처벌위주 정책보다 보다 근원적인 원인을 찾아서 미리 예방하는 프로그램이 절실한 시점이다.
교과부 장관이 일선 학교장을 상대로 강의를 하고, 경찰서장이 학교를 방문해서 예방교육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문제는? 왜 학교폭력이 발생하는지?”에 대한 가해자, 피해자의 심리 및 환경 연구와 일선 교사들의 폭력예방에 대한 인식과 해결의지 검증, 폭력을 하면 어떻게 사람이 망가지는지, 부모와 형제에게 미치는 악영향과 폭력행사에 따른 법 조치 등 예방책 강구가 급선무일 것이다.
중학교 일진 출신인 고교생 M군(17)은 “중학교 때 돈을 뺏고 아이들을 때리고 했지만, 선생님으로부터 지적당하고 야단을 맞은 기억이 없기 때문에 나중에는 행위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무감각해진다”고 말했다. M군은 또 “학교가 강력하게 의지를 가지고 덤벼든다면 해결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교사들의 회피와 무관심을 꼬집었다.
최근 언론에 보도된 사건만 보더라도 학교폭력은 가정을 파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 딸은 왕따, 아들은 일진,,,,어느 엄마의 절규’라는 기사를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지방도시에 사는 어느 40대 중반 학부모의 자녀이야기였다. 첫째가 왕따에 시달리다 중학교 졸업하고 고교진학 포기한 채 홈스쿨링(집에서 공부하는 것)을 했다. 둘째도 왕따를 당해 대안학교로 갔다가 그만두고 또래보다 1년 늦게 일반 중학교에 들어갔다. 아들은 학교생활을 잘 하는 줄 알았는데 일진이었다.
첫째 딸이 초등학교 입학한지 1주일 만에 “선생님이 무섭고 학교 가기가 싫다”고 했다. 담임선생님을 만난 엄마는 “한글을 못 떼고 들어온 아이가 셋인데 그 중 한 학생이다”라는 말을 들었다. ‘학습부진아’로 낙인이 찍혔던 것이다. 둘째는 “전학생 때문에 스쿨버스가 좁아졌다”는 구박을 받다가 대안학교로 옮겼다가 다시 일반학교로 들어갔다. 셋째 아들은 중학교 1학년 2학기부터 말투며, 눈빛이며,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느껴졌다.
“너희 학교도 일진 있니?”라는 엄마의 물음에 “일진 아무나 되는 거 아니야”라는 답변을 들었다. 일진이 대단한 존재라는 뜻이었다. 가족회의 때 첫째 딸이 “너는 누나들이 괴로워하는 거 못 봤니? 일진은 사람이 할 일이 아니야”라면서 눈물을 흘렸다. 부모는 아들에게 “서열이 가장 높은 아이에게 찾아가 ‘나는 빠지겠다’고 말하라”고 했다.
엄마는 아이 셋을 키우기가 너무 힘들어서 한때 우울증이 왔다고 고백했다. 부부는 학교에 찾아가 “우리 애가 일진이라고 해도 교사는 ‘우리 학교엔 그런 거 없다’고 했다. 아들이 적어낸 명단을 내밀어도 설마 얘들이 신문에 나는 그런 일진이겠느냐”는 대답만 들어야 했다.
교사는 다음 날 아들을 불러 “네 말 때문에 여러 사람이 곤욕을 치를 수 있다”고 했단다. 엄마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놓았다. 오늘날 학교의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어언 40여 년 전인 1970년대 초 전국의 수재들이 모인다는 고교에서도 힘깨나 쓰는 부류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 열혈남아에게는 반드시 지켜야 할 룰과 동급생 간 의리가 있었다. 절대로 약한 동급생들을 괴롭히지 않고 다만 학교를 지킨다는 명분이 있었다. 즉 타 학교와 운동시합이 끝난 뒤 애교심(?)이 철철 넘쳤던 나머지 자기 학교 학생을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혹 시비가 벌어지면 타 학교 폭력서클과 뒤엉켜서 힘을 겨루던 경우가 더러 있었다. 이런 서클 출신들 가운데 뒤늦게 철(?)이 들어 교장선생님도 됐고, 큰 사업가도 됐고, 유명한 정치인이나 대학교수도 됐고, 공인회계사로 돈을 많이 번 사람도 있음을 목격하게 된다. 그때는 청소년기 힘과 주체할 수 없는 기(氣)가 넘치는 혈기왕성한 성장통(成長痛) 쯤으로 이해됐었다.
당시 교감선생님이 한 말이 생각난다.
“공부만 하는 이 녀석들을 운동장에서 맘껏 뛰게 해서 남는 힘을 쏙 빼놔야 하는데…” 교감선생님의 처방은 옳은 것이었다. 공부벌레들에게 운동을 시켜 넘치는 에너지를 소진시킴으로써 사춘기에 속에서 타오르는 반항심과 학업 경쟁의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버려야 한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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