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진의 탄생과 그 배경
‘일진은 왜 생겨나는 것일까.’
이 궁금한 화두를 놓고 고민하던 차에 인터넷 토론방에 올려진 한 고등학생의 진단과 해법이 색달라 좀 긴 이야기이지만 대부분 소개해본다.
△ 대통령은 학교폭력의 원인이 게임중독이라면서 게임산업에 관련해 엄청 비난을 했다. 그런데 게임중독이 학교폭력의 주 원인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 학교폭력의 원인은 게임중독이 아닙니다. 바로 사회 구조 탓입니다.
△ 공립중학교 시절에는 지금 같은 일진도 많이 봤습니다. 일진 애들이 하는 짓은 애들 때리고 돈 뺏고 하는 거죠. 일진애들의 특이한 행동 두 가지를 봤습니다.
1. 피시방을 가지 않는다는 겁니다.
2. 일진애들은 주로 비슷한 곳에 거주한다는 사실입니다.
먼저 1번과 관련, 학교 근처에 PC방 두 개가 있습니다. 저는 한 곳을 자주 다니는 편이었고, 가끔 다른 곳도 갔습니다. 시험이 끝났을 때 그리고 중3때 11월 일찍 기말고사 보고 고등학교 들어갈 준비할 때입니다. 그런데 일진들은 단체나 개인이나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의아했습니다. 특히 흡연구역이 있어서 공개적으로 흡연하기 쉬운 곳이라고 가정할 때 그렇죠.
그들은 오토바이 타고 놀러다닌다고 합니다. 일진애들의 심리는 같은 또래 학생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하는 것에 대한 자족감을 느끼는 것이죠.(담배, 술 등) 얘네들이 인생이 힘들어서 어른들처럼 하겠습니까. 또래에 남들이 안 한다는 것에 매력을 느껴서죠. 그렇다면 일진애들이 게임중독이라고 볼 수는 없구요. 게임중독이면 일진애들끼리 놀러 다닐 시간은 더더욱 없습니다. 오히려 게임중독은 일반학생들 중에서 밤늦게까지 게임하고 학교에서 맨날 자는 애들이 더 많지요.
2번과 관련해서 일진들의 생성원리입니다. 중학교에 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이 있는 B지역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건 일진애들은 전부 A지역에 산다는 것입니다. A지역은 소형 개인주택이 많고 빌라가 많습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별로 좋은 동네는 아니죠. 집값도 B에 비하면 싼 편입니다. 반면 B지역은 아파트가 주를 이룹니다. 집값도 상대적으로 꽤있는 편이죠. 한마디로 A, B지역에 사는 것의 차이는 부모의 경제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두 가지 가정을 할 수 있죠.
1. 빈곤한 편이라 일진이 된 것이다.
2. 일진이었는데 빈곤해졌다.
상식적으로 2번은 말이 안 되죠. 1번의 추측이 당연한 겁니다.
그렇다면 왜 부모의 경제력이 낮으면 왜 일진이 될 확률이 높을까요?
먼저 일진애들이 하는 짓부터 감상해보시죠.
1. 빵셔틀
2. 노스페이스 비싼 것 입기(일면 등골브레이커)
3. 애들 때리고 다니기
첫 번째로 빵셔틀이란 일진애들이 자기의 하인 취급하듯 매점 가서 빵 사오라고 시키는 겁니다. 보통의 경우 간접 금품갈취가 일어납니다. 뭐 오백 원 주고 천 원짜리 빵 사와 하는 식으로요. 가끔 못할 때는 폭력을 당하기도 합니다.
일진애들이 왜 이런 짓을 할까요? 게임을 많이 해서 게임같이 자기 대신 할 수 있는 아바타 대리인을 실제로 만들고 싶어서? 게임중독과 연관시키기엔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지요. 가장 간단한 이유는 귀찮아서겠지요.
“나는 이런 힘과 권력을 가지고 있어”라고 인증하고 표시하기 위함입니다. 자기자랑과 동시에 자족감을 주는 거죠.
부모의 경제력이 상대적으로 높다면 아이가 부모의 위치와 상태, 재산 등을 보고 또 자기가 거기서 충분히 혜택을 입으면 스스로 자족감을 느낍니다. 내가 이미 만족되어 있는데 남들에게 자랑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부모의 경제력이 낮다면 아이들은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낍니다.
자기가 해달라는 거, 이런 것 못해주죠. 아이는 자연스레 주눅이 들고 자족감도 낮아집니다. 게다가 초등학교를 거치면서 자신보다 상대적으로 잘 사는 집이 엄청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이런 감정은 더 격해집니다.
그래서 이러한 감정이 주로 쌓이거나 격화되는 게 중1~중2시기입니다. 만약 자신이 힘이 있거나 힘이 있는 애의 친구라면 그것을 이용해 자신보다 상대적으로 경제력이 높은 애들이 모여있는 학교에서 자신들의 힘을 애써 과시하려고 하는 거죠.
노스페이스 계급별 표도 그러한 사고에서 나온 겁니다. 60만원 이상 형형색색의 노스페이스 패딩은 주로 일진애들, 그 중에서도 상위 권력층이 자주 입죠. 그 이유는? 난 이 정도 가격의 패딩을 간단히 입을 수 있는 경제력이 된다는 것을 겉으로 나마 자랑하고 싶은 겁니다. 자족감이죠.
애들 때리고 다니는 것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죠. 정말 일반학생들을 싫어서 괴롭히고 못살게 굴까요. 아닙니다. 학교 내부 집단에서 현실에서 내가 누리지 못한 권력과 힘을 누리고 싶고, 그걸 공개적으로 표출하고 싶은 거죠.
지금 저는 등록금만 1년에 400만 원 하는 사립고를 다니고 있습니다. 이 학교에서는 학교폭력이 거의 없다는 것도 게임중독과 학교폭력이 상관없다는 것의 증거가 되겠죠.
제가 보았을 때 우리 학교는 외고나 하나고 이런 공부 잘 하는 얘들이 학군과 학교수준을 감안하고 비싼 돈 감안하고 다니는 학교는 아닙니다. 부모님들이 학교 분위기 좋은데 보내면 자식들이 공부 좀 하지 않을까 해서 비싼 돈 감안하고 보내는 학교입니다. 그런데 학교폭력의 주 원인이 게임중독이라면 우리 학교의 거의 없는 학교폭력은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방학에는 거의 게임에 찌들어 사는 얘들도 많고, 게임하고 늦게 자서 맨날 조는 애들도 있는 편이고, 항상 학교 근처 PC방 가면 얘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학교폭력은 거의 없죠. 결론적으로 학교폭력과 게임중독은 별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학교폭력은 현실에서 누리지 못하는 힘과 권력을 학교라는 집단에서 이루고 싶은 아이들의 욕망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런데 학교폭력은 이런 애들의 처벌을 강화한다고 끝낼 수 있는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에 학교폭력이 그렇게 많이 일어나는 이유는 우리 사회에서 경제력이 낮은 사람들이 많고, 그런 사람들이 살면서 많은 제약과 설움을 받고 이게 자식들에게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경제력이 낮으면 누릴 수 있는 혜택과 보상은 적고, 잃을 것과 불가능은 많습니다. 경제력 있는 부모들이 자식이 사달라는 거, 해달라는 거, 사줄 때 그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래서 학교폭력은 매우 해결하기 어렵고 정치적으로 많은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꼴을 보세요. 학생의 의견을 물어보기 보다는 어른들끼리 판단하고 어른들끼리 이익 두고 싸우고 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정부기관이나 언론에서 학교폭력 해결한답시고 효과도 없는 게임업계 규제 늘려 게임업계랑 소송하고 싸우고, 그 사이에 학교폭력은 진전되고 늪에 빠져 해결도 안 되면 그때는 어떤 원인을 탓하시렵니까.
학교폭력은 한국에서 경제력이 낮은 사람들이 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반영한 일입니다. 근절하고 해결한다는 것은 이런 사람들이 받는 설움과 고통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겁니다. 가난하더라도 자기 자식한테는 최소한 뭔가 해줄 수 있고, 빈자(貧者)와 부자(富者)간에 위화감(違和感)이 조성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 그 매우 어려운 일을 달성해야만 학교폭력은 그 때 없어질 것이라고 봅니다.
위와 같은 주장을 한 고등학생은 PS(추신)를 통해서 “내일 학교가야 하는데 갑자기 화가 나서 새벽 1시까지 글을 쓰네요. 긴 글을 읽어주신 분 감사 드립니다”고 밝혔다.
위 학생의 의견을 요약해보면, 학교폭력은 학생의 부적응이나 잠재적인 폭력성이 일차 문제가 아니다. 가해자 한 사람의 잘못으로 몰아붙이기엔 너무나 안이한 발상이다. 가해자를 둘러싼 가정환경과 학교환경, 그리고 사회 환경을 동시에 놓고 분석해야 할 것이다라는 주장이다. 여기에 필자는 인성교육 시스템의 부재(不在)를 덧붙이고자 한다.
광화문에서 ‘죽음의 입시경쟁교육 중단’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1인 시위를 한 고교 자퇴생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교과부에서는 학교폭력의 원인이 입시경쟁과 학벌사회가 조장하는 부산물인데도 웹툰과 게임의 책임으로 돌리는 데서 절망을 느꼈다. ‘지잡대’(지방의 잡스런 대학)를 가는 것은 곧 인생의 패배자로 낙인 찍히고 이제 학생들은 동료가 아니라 성적에 따른 등급(1~9등급)으로 구분되는 경쟁자이며 폭력의 원인은 거기서 찾아야 한다”고 했다.
성적지상주의에 빠진 공부벌레들은 ‘공부만이 인생의 행복을 보장해주는 유일한 구원의 메시아’라고 믿고 있는 반면, 가정형편상 학원이라도 가지 못하는 학생들 가운데 힘이 센 일부 학생들은 금품갈취, 폭력이라는 막장 경험을 서슴지 않는다. 이마저도 어려운 형편의 학생들은 고스란히 부모의 무능과 가난을 대물림 받게 될 것이다.
이런 사각지대에 있는 학생들의 가정문제를 살펴보고 앞으로 꿈을 상담해주는 참스승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 이 지경이 되지 않았을까. 지난 97년 IMF 경제위기 때 수많은 가장들이 실직의 아픔을 겪었다. 그리고 경제문제로 인한 가정불화로 이혼이 많아졌다. 이런 사회경제적인 상황으로 인해 조부모 슬하에서 자라는 조손(祖孫) 가정 청소년들이 대거 나타났다. 돈도 없고 빽도 없어 사교육도 못 받고 내팽겨쳐진 사각지대의 청소년들은 누가 어떻게 돌봐야 한다는 말인가.
학업부진으로 학업과 담을 쌓은 이들에게 교사는 분노의 대상이요, 꼴 보기 싫은 ‘잔소리꾼’쯤 되지 않을까.
‘아이는 어른의 뒷모습을 보고 배운다’고 했다. 그리고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라고도 한다. 학교는 사회의 양극화 현상이 고스란히 접목돼 탐욕으로 가득 찬 어른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그대로 베껴놓은 듯 하다.
사회지도층의 부패와 탐욕적 이기주의, 재벌 2, 3세의 골목 서민상권 침범, 전교조의 이념적 정치공세 몰입, ‘나꼼수’ 등 무책임한 정치 선동꾼들의 막말잔치, 국회의원들의 거짓말과 몸싸움, 최루탄 투척 등 보고 배울 점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정의와 인권을 앞세운 진보당의 부정선거 자행 및 북한 인권 눈감기 등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인 자세, 이권 사업에 관여 뇌물을 받아 챙기는 공무원의 부패, 교장 등 교육계 지도층 인사들의 업자와 결탁 횡령, 공교육을 포기하고 학원에 학습권을 넘겨준 교사들의 직무유기, SKY대학 위주 출세 제일주의,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의 반란, 저출산-고령화 사회의 확산위기, 경제양극화 심화, 복지 포퓰리즘 남발 등은 우리 사회의 추한 자화상이다.
그래서 이 시대는 총체적으로 부패공화국, 즉 ROTC(Republic Of Total Corruption) 사회이다. 부정과 부패가 만연하고 책임 있는 교육 정책 당국자들과 교장, 교사들은 눈치보기에 급급 직무유기를 자처한다.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이기주의의 팽배로 상생, 동반, 배려의 문화는 실종되었다.
이런 마당에 어린 청소년들이 어른들로부터 보고 배울 게 뭐가 있겠는가. 꼴불견, 몰상식, 부조리한 어른들이 보여주는 성적만능주의, 속물주의(俗物主義), 황금만능주의 의식과 행태가 고스란히 어린 청소년들에게 학습되고 있다. 상대를 배려하고 더불어 같이 살고자 하는 선진국민 의식이 결여된,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이기주의 팽배와 천민자본주의(賤民資本主義)만이 판을 치고 있다.
남과 같이 더불어 살아가는 공간에서의 에티켓, 예를 들어 지하철에서 큰 소리로 전화 걸기와 버스 좌석 2개를 혼자서 차지하는 욕심 및 남이야 어떻게 되건 간에 나만 잘 살면 된다는 극단적인 욕망의 이기심 등이 선진국민의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이 사회의 사각지대에 속하는 약자그룹인 다문화가정, 탈북자가정, 조손(祖孫) 가정, 한 부모 가정 등은 어두운 그늘의 뒷전으로 밀려나 있는 게 오늘날 현실이다.
다문화가정의 경우 동급생들은 피부색깔이 다르다고, 부모가 한국말을 잘 못한다고, 교사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다”고 내치는 이런 배타적인 현실에서 학교폭력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것은 뜬 구름 잡기에 불과할 것이다.
필리핀 부모를 둔 아이가 동급생으로부터 ‘전따’(전교생에게 왕따 당하는 학생)를 당하자, “이 아이의 엄마는 피부색깔은 달라도 영어는 잘 한다”고 하자, 그제서야 왕따 괴롭힘을 멈췄다는 이야기는 씁쓸할 따름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대도시보다 외부문화에 대한 배타성이 강한 지방의 중소도시, 군, 읍, 면 단위에서 더 심각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증언이다.
2년 전 지방에서 일본인 남학생이 왕따를 당하다가, 이듬해 학교의 일진 학생에게 붙어서 다른 학생을 괴롭히는데 앞장섰던 예를 들어보면 왕따의 악순환은 그 끝이 없어 보인다. 베트남, 필리핀, 스리랑카 등 아시아 지역 다문화 가정 자녀들이 수천 명씩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있고 동남아 출신 엄마의 자녀 가운데 성장해서 군 복무 중인 청년도 있다. 이들을 포용을 하지 않으면 나중에 얼마나 큰 사회적인 비용을 떠안아야 할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불합리한 대학입시제도 때문에 당사자인 학생은 물론 학부모, 교사, 교육관리들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고 살고 있는가. 우울증 등 정신병, 자살, 폭력과 왕따 등 가해범죄가 늘어나는 이유 중 하나다. 그리고 성적만능주의로 양성해 놓은 인적자원이 변화무쌍한 이 사회에 얼마나 생산적인 기여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이다. 소위 SKY대학을 졸업하고도 사회진출이 잘 안 되는 교육시스템, 하물며 ‘지잡대’(지방의 잡스런 대학) 출신은 아예 설 땅조차 없는 현실. 대학생 등록금 1천만 원 시대에 부모들의 등골이 휘는 비정상적인 사회, 신(神)도 가고 싶다는 대학교직원 사회의 급여 대비 일의 비효율성에 알바 청년들은 절망하고 있다.
‘지잡대’는 안 가는 게 효도하는 것이고 결코 출세의 사다리를 잃어버리고 말 것이라는 절망감! 그러다 보니 학부모들은 학교를 출세의 장으로 간주, 빚을 얻어서라도 사교육을 시키고, 남들보다 뒤떨어지는 꼴을 볼 수 없는 과열 상황으로 달구어진다.
서열화와 경쟁을 강조하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이 교육열에도 고스란히 반영된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남보다 우위에 서기 위해서는 공부를 잘 하거나, 싸움을 잘하거나 해서 ‘절대권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일진들은 과거처럼 싸움만 잘하고 교실에서 잘 섞이지 않는 ‘비주류’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는 ‘주류문화’가 되었다는 게 한 전문가의 말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남을 밟고 일어서야 한다는 탐욕의 이기주의가 사회 양극화 현상을 똑 닮았다.
학생들에게 ‘제2의 교복’으로 불리는 노스 페이스 패딩점퍼가 학생의 계급이 되고 있다. 얼마 전 서울에서 중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가출해 떼로 몰려다니며 학교 주변에서 수십만 원대의 노스 페이스 패딩점퍼와 손목시계를 포함해 1000여 만 원대의 금품을 빼앗은 혐의로 청소년 20명이 무더기로 경찰에 검거됐다. 학교와 학원, 쇼핑몰 주변에서 폭력을 휘두르고 금품을 빼앗은 Y군(17) 등은 훔친 오토바이를 타고 요란한 굉음을 내며 ‘광란의 질주’를 서슴지 않았다.
노스 페이스 패딩점퍼는 학교 내 계급의 상징이다.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엔 ‘노스 페이스 계급지도’가 돌아다닌다. 계급지도에 따르면 25만원인 ‘노스 페이스 눕시1, 2’는 가장 낮은 계급인 ‘일반’이나 ‘찌질이’들이 입는다. 32만원인 ‘노스 페이스 패딩 800’은 ‘중상위권’의 것이다. 47만원인 ‘노스 페이스 써밋’은 “찌질이들은 뺏길까 봐 못 입는 옷”이라는 설명이 붙어있다. 69만원대인 ‘노스 페이스 히말라야 다운파카’, 그것도 빨간색 옷은 일진 중에서도 ‘짱급’이 입는 옷이다. 47만원인 ‘노스 페이스 써밋’부터는 비싼 가격에 부모의 등골을 휘게 만든다는 ‘등골 브레이커’라는 신조어로 분류된다.
겉으로는 노스 페이스로 계급을 형성한다면 속으로는 몸에 문신을 그리는 일진들이 늘어나고 있다.
중학교를 중퇴한 C군(17) 등 두 명은 서울 서초구 일대 학교 주변에서 후배 21명으로부터 체크카드를 빼앗아 장당 40만원씩 받고 보이스피싱(전화사기) 조직에 팔아 넘긴 혐의로 경찰에 구속됐다. 이들은 모두 문신을 했다. C군은 상반신 전체에 총천연색으로 일본 도깨비 문신을 했다.
경기도 동두천과 서울 사당동의 무허가 시술소에서 1000만원을 주고 등부터 양팔과 복부까지 연꽃과 귀신 그림을 새겨 넣었다. 키가 170cm인 C군은 “덩치가 작다고 무시당했는데 문신을 하니 갑옷을 입은 듯 힘이 몇 배는 세진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또 “요즘 우리 또래 잘 나가는 애들은 거의 다 문신한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조폭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문신이 최근 퇴학을 당하거나 가출한 10대는 물론, 중고교 일진 사이에서 은밀하게 유행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 K고 3학년 S군(18)은 서울 역삼동 무허가 시술소에서 오른팔 어깨부터 팔꿈치까지 문신을 했다. 편의점 알바를 하면서 마련한 40만원을 비용으로 썼다. “재학생인 만큼 교복 와이셔츠 바깥으로 비치지 않기 위해서 옷을 더 입거나, 팔에 토시를 끼면 선생님이 눈치를 채지 못한다”고 했다. 경찰 추산 서울에만 5000여명의 불법문신 시술가(타투이스트)가 있다고 한다. 문신은 의료법상 의료행위로, 의사면허 없이 하는 시술은 불법이다. 경찰은 상당수의 타투이스트 지망생들이 청소년들에게 시술을 해주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일부 일진들이 사채놀이를 하고 있어 성인 조폭을 똑 닮아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금액은 크지 않지만 이와 같은 사채놀이 학습을 통해서 훗날 ‘바늘도둑이 소도둑이 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되는 대목이다.
수법은 1000원을 억지로 상대방 손에 쥐어주고 내일까지 2000원을 갚으라는 것이다. 다음날 2000원을 갚으려고 하면 만나주질 않는다. 그리고 나서 ‘돈을 제때 갚지 않았으니 10만원을 내라’고 협박하는 것이다.
현금 대신 문화상품권을 이용하기도 하는데, 5000원짜리 문화상품권을 주고 내일까지 1만원을 내놓으라고 한다. 만약 안 가져오면 10만원으로 불어나는 식이다. 이처럼 일진들의 사채놀이 때문에 수만 원에서 수십만 원의 빚을 지고 고통 속에서 방황하는 어린 학생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갑자기 부모에게 용돈을 높여달라고 하거나 또 다른 아이의 돈을 빼앗을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여학생 일진의 경우 스타킹 셔틀이나 레깅스 셔틀도 서슴지 않는다. 우산을 항상 가지고 다니다가 비가 오면 상납해야 하는 등 약자 괴롭히기는 끝이 없는 것 같다.
‘가진 자는 남의 것을 빼앗아 더 부유하게 되고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긴다’는 이른바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의 마테복음 효과가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아버지는 나를 있게 해준 생물학적 남성일 뿐이다”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아버지와 자녀들과의 대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또 OECD국가 중에서 이혼율이 가장 높은 우리나라는 분명히 어른들의 인성에도 문제가 있음을 나타내주고 있다. 나를 내세우고 상대를 포용하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결별은 곧 자녀들에게 치유할 수 없을 정도의 깊은 상처를 남겨준다. 여기서부터 가족의 해체와 가정의 파괴라는 비극의 씨앗은 뿌려진다고 보면 될 것이다.
범죄학에서 생애과정이론적 접근방식에 따라 국내 강력범죄자들이 어떤 공통 경험을 가졌는지를 살펴보면 가정사의 불행이 범죄로 이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경기대 이수정 범죄심리학 교수가 강력범죄 발생 건수가 많은 수원지방법원에서 최근 3년 간 살인, 강도, 성범죄 등으로 재판을 받은 159명의 성장배경, 학교생활 등을 조사한 양형조사보고서와 사건 판결문을 통해 분석한 결과이다. 강력범죄자들의 가정사는 찌든 가난과 가족간 대화단절 등 불행 그 자체였다. 부모의 이혼, 외도, 학대, 알코올 중독, 정신질환 등을 경험한 강력범죄자는 66.7%였다. 또 부모의 직접적 신체, 언어적 폭력과 방임 등의 학대를 받았던 이들은 34.7%로 2010년 국내 한 부모 가구비율 9.2%보다 높았다. 알코올 중독 부모를 둔 이들도 15.7%였다. ‘아이는 어른들의 뒷모습을 보고 배운다’는 말이 더 무겁게 다가오는 느낌이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또래 중 짱이었던 일진 A군(17)은 다른 학교 싸움꾼들을 모아 불량서클을 만들고 조직폭력배 예행연습을 했다. 동급생과 후배, 행인들을 상대로 갈취와 폭행을 일삼았다. 평소 꿈꾸던 조폭의 일원이 된 학생은 불법게임장 종업원으로, 노점상으로 일을 했지만 수입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결국 조직에서 탈출, 숨어있다가 학교폭력 단속 경찰에 잡혔다.
“정장을 입고 고급 승용차에 오르는 자신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고, 막상 몸으로 체험해보니 그 조직은 기대 이하였다”고 털어놓았다. 또 “또래들과 만든 불량서클 생활도 회의가 든다”고 말했다. 비열한 조폭을 미화하고 피 튀기는 폭력을 정당화하는 홍콩 느와르(noir)식 일부 액션 영화가 청소년들의 인성에 미치는 역기능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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