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VIP 인터뷰 - 장사익

category 문화산책 2016. 8. 9. 19:17

Review (장사익)

 

 

“콩나물 대가리도 공부 안 한 지는 ‘후루꾸’에유, 그냥 기생이지유.”

 

연이틀 3000석의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입추여지 없이 관객들로 꽉 차 … 그의 인기비결은 무엇인가?

 

 

 

 

 

 

 

 

 

세검정 장사익 집 서재에서 필자와 함께.

 

 

 

 

 

장사익의 글씨, '모래알같이 많은 사람들 하필 이면 당신'이라고 썼다.

 

 

지난 10월 30일(목)과 31일(금) 3000석의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이틀 연속 6000석이 매진된 거였다. 만만찮은 가격의 티켓이 불티나게 팔려나간 것이다. 울산(11월 15일), 대구(11월 21일), 광주(12월 4일), 대전(12월 12일), 부산(12월 19일), 김해(12월 25일) 등 지방공연도 매진사례 행진이다. 관객은 대부분 50대 베이비부머부터 60, 70대 실버세대가 주류를 이룬다.

불황을 모르는 ‘소리꾼’ 장사익(64)의 연속 대박행진의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스스로를 낮추는 법을 안다.

‘콩나물 대가리’도 공부 안 했고, 스스로를 ‘후루꾸’라고 낮추는데 왜 중장년팬들은 그에게 열광하는 것일까. 따지고 보면 ‘가왕(歌王)’ 조용필도 음악대학 언저리에도 가보지 않았다. 장사익은 관객들이 원하는 바의 것을 잘 알고 있다. 그것은 곧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소통능력으로 발군의 센스라 아니할 수 없다.

60~70년대 ‘잘 살아보세!’를 외치며 산업현장에서 뛰었던 산업역군들의 애환과 정서가 듬뿍 묻어있는 민초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관객들이 “아, 그 노래...바로 내 인생이지.”라는 공감대를 이끌어낸다.

생활고로 우여곡절, 우왕좌왕의 한 시대를 마치고 45세가 돼서야 비로소 자신의 길을 찾았다. 시골(충남 홍성군 광천포구)에서 아버지가 불었던 태평소를 다시 찾아 불기 시작했다. 93년 전주대사습대회에서 태평소를 불어 상을 받았다. 또 전국민속대회에서 대통령상도 받았고 금산대회에서 장원도 해봤다.

후배 뻘인 김덕수, 이광수를 찾아가 “나 시켜만 줘. 아마추어니께 돈 안 줘도 좋아.”라고 청을 넣었고 사물놀이패가 됐다.

“농악판에서 막걸리 뒤풀이 때 간들거리는 유행가 한 자락 뽑으면 판이 뒤집어졌지유. 제가 기생이었서유. 저는 지금도 어느 자리건 노래하는 기생이에유.”

그의 노래가 술술 흘러나오게 된 것은 40대 초반 낙원동 음악학원을 드나들면서 남진, 나훈아 등 톱스타들의 가요를 모조리 섭렵했던 내공이 체화(體化)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시골에서 상경, 선린상고를 졸업한 뒤 보험회사에 들어갔다가 군대(문선대 근대) 제대 후 회사에 재취업이 안 되는 바람에 그의 떠돌이 인생역정이 시작됐다. 보험회사, 가구업체, 자동차수리업체 등 ‘낯선 동네’에서 일하는 게 성에 찰 리가 없었다.

그의 이와같이 숨은 신화는 스토리텔링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그의 노래를 듣고 전율을 느꼈다거나 눈물콧물 짠 사람들이 많아졌고 그 입소문은 방방곡곡으로 널리 퍼져나갔다.

94년 45세 나이에 홍대 앞 예극장 무대에서 데뷔식을 치렀다.

“워치 게들 알고 왔는지 첫날 400명, 손님 일인당 만원씩 받으니 께 꽤 되더라구요. 올타, 이게 행복이구나! 무릎을 쳤지유.”

그의 노랫가락은 민초들의 애환만 보듬어 담는데 그친 게 아니었다. 그는 인생과 자연의 섭리, 깊은 철학을 논하는 시인들의 시를 가져다 노래로 불렀다.

김춘수, 정호승, 기형도, 마종기 시인들의 시를 노래로 만들어서 부름으로써 소수 마니아들의 전유물인 시를 대중화시키는데 한몫 했다. 같은 노래도 그가 한번 쓰윽 비틀면 전혀 다른 맛을 내는 창조물이 되었다.

화려한 장미에 가려져 숨겨진 찔레꽃에 더 향기가 있다는 내용의 ‘찔레꽃’은 자작시에 곡을 입힌 것이다.

그는 자신이 할 줄 알고 좋아하는 것을 찾아냈다. 그리고 동반자를 잘 만났다. 피아니스트 임동창, 기타 김광석, 모듬북 김규형, 트럼펫 최선배 등은 그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최고봉들이다. 20년 동안 변치 않고 동행한다. 그리고 현대적 재즈 뮤지션 4명, 타악 3명, 해금 1명, 아카펠라 6명 등 현대와 전통이란 이질적인 요소를 잘 버무려내 창조적 융합의 무대를 이뤄낸다.

깊게 패인 주름진 얼굴에 흰색 한복, 꾸밈없는 소탈함에 관객들은 진정성마저 느낀다.

‘님은 먼곳에’ ‘빛과 그림자’ ‘귀천’ ‘하늘가는 길’ ‘꽃구경’ ‘과거를 묻지 마세요’ ‘타향살이’ ‘봄날은 간다’ ‘달맞이꽃’ 등 그가 부르는 주옥같은 노래는 슬프고 애절하고 눈물겹다. 우리네 한(恨)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서 중독성마저 강하다.

정호승 시인의 시 ‘허허바다’는 마침 세월호 사고를 연상시켜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살아도 산 것이 없고/ 죽어도 죽은 것이 없네/ 해미가 깔린 새벽녘/ 태풍이 지나간 허허바다에/ 겨자씨 하나 떠 있네’라는 노랫말에 “야~ 야~”라며 허공에 외치는 고함은 차라리 진혼가(鎭魂歌)에 가깝다. 그는 이미 미국, 일본, 캐나다 무대에서도 팬들의 박수갈채를 받은 바 있다.

 

 /김동철